별일 없이 산다. 브런치에 들러 한 번씩 자기 점검을 하긴 하는데, 별일 없이 평안하게 지내는 요즘 나는 글이 잘 나오지 않는다. 좋아해도 괜찮은 일일까?
바쁘게 지낸다. 미팅도 많고, 만나자는 사람들과 친구들도 많고, 지금까지 준비해 온 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언젠가 만나게 될 직원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지낸다.
집에 오면 우리 고양이 아가들도 챙겨줘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와인도 한 잔씩 즐겨줘야 하니 갈수록 인생이 너무 짧고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엔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함께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우리 다음 기수의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였는데, 긴 시간 공부를 끝내고 새롭게 도약하는 서른두 명의 동지들을 보니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은 인간이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함평에는 벌써 5월의 장미가 활짝 피어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던데 왜 나는 아무 성과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지 매일매일 좌절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항상 나는 제자리걸음인지, 남 탓과 세상 탓을 할 수도 없고 애먼 데 화풀이나 해가며 아픔에 무뎌진 시간들.
그런데 생각해보면 힘든 시간들을 보내온 지난 몇 년간 나에 대해 돌아보고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그릇을 키우고 삶에서 좌절을 견디어 내는 힘을 기르게 되지는 않았을지.
얼마 전까지 받았던 심리상담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어릴 때부터 너무 성취만 하고 살아와서 그동안 좌절과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을 기르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완벽주의 성향에 추구하는 목표도 높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높으니 그에 충족하지 못할 때 쉽게 자기 비하를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자기 비하만 멈추고 다름에 대해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보면, 어떤 상황이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마지막 상담 날, 나는 선생님에게 객관적으로 볼 때 저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라고 물었는데, 몇 번 못 봤는데 본인이 어떻게 아시냐며 나에게 스스로 어떤 사람인 것 같은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저는 사실 완벽하지도 않고 나약한 존재인데,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면서 사는 사람 같아요'라고.
요즘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 하루만 꽉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오늘, 지금 내가 만나는 일, 사람, 상황, 순간들만 두 손 가득 꽉.
이제야 어쩌면 런던에서부터 한국에 돌아와 패션 작업을 할 때처럼, 꿈꾸던 일을 하면서 살 때의 내 모습을 조금은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분간은 그저 나의 하루와 일상이, 지금처럼 평안하고 희망에 가득하길. 오늘과 지금을 가득 붙잡아가며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