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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Jun 29. 2019

복수에 눈이 멀어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는 영화

존 윅 3(2019)을 보고

국내에서는 유달리 힘을 못 쓰지만 북미 지역에서 존 윅 시리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민 호감 배우 키아누 리브스에게 전례 없이 화려한 액션을 일임하고, 흔한 신파나 뻔한 클리셰를 쏙 뺀 존 윅(2014)과 존 윅: 리로드(2017)는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며 흥행을 일으켰다. 이번에 개봉한 3편 역시 개봉과 동시에 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북미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아쉽게도 북미 개봉일(2019. 5. 17.)과 국내 개봉일(2019. 6. 26.)이 차이나 국내 관객들은 한 달 넘게 기다려야만 했던 영화 존 윅: 파라벨룸(2019). 그렇게 만난 존 윅 3편은 기존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짙어진 영화였다. 시리즈 사상 가장 다채로워진 액션은 눈을 호강시키지만 그만큼 산만해진 서사는 몰입을 방해한다.



앞서 말했듯,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역대급으로 화려하다. 존 윅: 리로드(2017)의 결말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초반부는, 주인공이 파문되어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그에게 주변의 모든 사물을 무기로 쥐어준다. 특히 책과 칼을 사용한 초반 액션 시퀀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하며, 총기 위주의 액션을 선보인 기존 시리즈와도 차별되는 포인트를 만든다. 책을 활용한 액션 씬은 총기 못지않은 박력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존 윅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보여주며, 배경음악도 없이 칼 소리와 숨소리로만 채워진 두 번째 액션 시퀀스는 길이남을 장면으로 휘두르기부터 투척까지 도검류로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보여준다.


또한 액션 시퀀스들 간 연계성은 유려해졌고 그 사이에서는 위트마저 엿보인다. 칼을 들고 다가온 러시아 억양의 암살자를 러시아 민담집으로 살해한 존 윅은 곧바로 본인이 칼을 들어 다른 암살자들을 처리한다. 또한 오토바이 탄 암살자를 따돌리고 도주에 성공한 존 윅은 뉴욕에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본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또 한 번 도주한다. 또한 액션 신 간 완급조절도 능수능란하여 과도한 액션으로 인한 피로감을 줄인다. 후반부 최고 회의에서 파견된 정예 부대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정비 시간을 만들어 흐름을 긴박한 의도적으로 늦춘다. 또한 헤드샷으로 절제된 액션을 보여준 뒤에는 이어진 제로(마크 다카스코스)와 그의 부하들과의 전투 중에서는 칼을 사용하고 중간중간 대화를 섞으며 템포를 조절한다.


아쉽게도, 존 윅이 암살자들을 난도질하듯 작가들은 각본을 난도질해놨다. 이전 시리즈의 단순한 각본은 존 윅의 복수에만 집중하여 폭발적인 액션을 뒷받침했으나, 3편에 이르러서 각본은 난잡해졌으며 액션에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조악해졌다. 우선 존 윅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루스카 로마와 소피아(할리 베리 분)는 속편을 위한 등장 외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등장한다. 특히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등장했던 소피아는 결과적으로 결말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배역을 맡은 할리 베리 역시 시종일관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며 영화 중반을 지루한 신파극으로 만든다.


이처럼 각본이 이렇게 엉성해진 데는 1편부터 이어진 복수의 동력이 사그라든 것이 크다. 최고 회의라는 새로운 복수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설정이 난립하여 서사를 망치고 있다. 복수하는 사람과 복수의 대상만이 존재했던 1편과 최소한의 설정을 더하여 본래의 색을 잃지 않았던 2편은 한 눈 팔지 않고 복수를 위해 나아간다. 반대로, 복수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 존 윅: 파라벨룸(2019)은 사실상 2020년에 개봉할 속편을 위한 복수의 대상을 만드는 준비 단계에 가깝다. 물론 4편이 개봉한 후에 시리즈 전체 차원에서 재평가가 나올 수 있으나 독립적인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상당히 부족하다.



최소한의 구성으로 관객이 원하는 것을 여지없이 훌륭하게 해내는 훌륭한 오락 영화 존 윅 시리즈. 하지만 3편을 보고 난 지금 시리즈 전체와 4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계속 반복해서 제시되는 복수라는 주제가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자 비이성적인 행위. 복수는 지금까지 존 윅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액션에 집중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지만 스케일이 커진 지금도 그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복수의 대상이 정해지고 스케일도 한층 커진 지금, 전례 없는 액션의 현장을 다시 보여주게 될까? 결과는 2020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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