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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Dec 04. 2019

디즈니라 놀랐고 디즈니라 아쉬운

겨울왕국 2(2019)를 보고

개인적으로 극장에 가든 넷플릭스를 보든 새로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기대를 낮추고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보기도 전에 기대와 추측으로 형성된 허울은 많은 경우 실제 영화와 대조할 때 불협화음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의 경우, 후속작의 토대가 되는 전작을 알고 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당 수준의 기대가 쌓이게 된다. 특히 전작이 높은 평가를 받을수록 후속작이 느끼는 부담감은 가중되는데,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불리는 속편이 속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의 관점에서 겨울왕국 2(2019)만큼 부담이 큰 영화도 많지 않을 것이다. 개봉 후 몇 년이고 쌀쌀해지면 다시 들려오는 주제가 덕에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겨울왕국(2013)은 리메이크와 리부트가 범람하는 할리우드의 몇 안 되는 흥행에 성공한 오리지널 영화이며, 동시에 동화에 정치적 올바름을 도입하려 꾸준히 노력해 온 디즈니의 여정에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전편이 만든 높은 기대 속에서 확인한 겨울왕국 2(2019)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모든 방면에서 한걸음 더

영화는 세계관을 넓히는 동시에 주제 역시 확장시켰다. 왕국을 벗어나 이웃 부족의 숲과 바다로까지 나아가는 공간적 배경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조부 세대의 사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적 배경은 대부분의 사회가 가지고 있을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영화 속 주된 갈등의 중심에 놓인 댐은 두 주제를 집약하며, 선대 왕의 탐욕에 의해 세워진 댐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혜택을 받던 후세의 결단에 의해 무너진다. 이처럼 겨울왕국 2(2019) 속에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할 주체는 그 원인을 제공한 자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체관람가임을 감안하더라도 근래에 보기 힘든 바르디 바른 결말이다.


전편의 토대를 이루었던 페미니즘 역시 여전히 세련스럽게 다루고 있다. 특히, 감탄을 자아내는 엘사의 후반부 클라이맥스와 이를 위해 이전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은 주목할만하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소꿉놀이를 통해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 클리셰를 환기시킨 후 과감히 비튼다. 소임을 다하기 위해 거친 바다 앞에 선 엘사. 하지만 고난 앞에 선 그가 구하려 하는 것은 공주가 아닌 진실이며,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는 물의 정령을 탄 여왕으로 대체되어 드넓은 바다를 가른다. 이는 지금껏 디즈니가 재생산해왔던 젠더 이미지를 변주한 것으로, 여기에 세련된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탁월함을 더해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여왕-하기'와 '여왕'의 차이. / 이미지 출처: IMDb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대의 이야기로

가장 놀랐던 점은 그 보수적인 디즈니가 조금은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전편에 이어 지속적으로 젠더 이미지에 수정을 가하는 동시에, 가족이라면 무조건 온정적으로 대하던 기존의 태도를 바꾼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전작과의 비교를 통해 확연해진다. 겨울왕국(2013)을 페미니즘 텍스트로 읽는다면 엘사와 안나의 부모는 딸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기존 질서의 부합하는 프레임을 강요한 가해자에 가깝다. 하지만 전작은 시차와 클리셰를 적절히 활용해 영화가 본 궤도에 오르는 시점에 부모를 고인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퇴장시키며,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것을 교묘하게 방지한다.


하지만 겨울왕국 2(2019)는 악행을 일으킨 조부를 있는 그대로 악인으로 묘사하며, 나아가 주인공인 손주 세대가 타파해야 할 과거로 규정한다.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하던 가족의 그림자를 덜어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작에서 엘사와 안나, 두 여성의 연대는 자매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후속작에서 주인공의 자각과 결단은 가족의 상실에서 시작된다. 안나는 유일한 가족과 그에 버금가는 친구를 잃게 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를 잃게 돼도 그는 여전히 존재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그런 안나의 모습은 가족이라는 단위를 넘어선 이상적인 시민에 가까우며, 영화 역시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대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가족의 관계를 덜어내도 안나에겐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 / 이미지 출처: IMDb


끝내 모자랐던 한 걸음

현대의 가치에 맞는 동화라는 디즈니의 탐구 목표에 가장 가까웠던 영화, 겨울왕국 2(2019). 하지만 결말부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남아있기에 이를 해소하지 않고는 이 영화를 온전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변해도 디즈니는 디즈니인 것일까? 모든 방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던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러 또다시 보수적인 선택으로 회귀하며 걸음을 멈추고 만다. 과거의 과오라고 할 수 있는 댐은 무너지지만, 그 댐으로 인해 지탱되던 왕국은 벽돌 하나도 상하지 않는다. '옳은 행동'에 대한 디즈니스러운 동화적 보상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 예외를 두면서 지킬 만큼 이 영화에서 왕국이 중요한 존재였을까?


체제의 전복에 대한 기피는 디즈니의 보수적인 색채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회사인 픽사의 작품과 비교하더라도 그 색채가 진하다. 올해 개봉한 토이스토리 4(2019)의 경우 우디에게 장난감의 숙명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게 하는 획기적인 결말을 선택했고, 10년도 더 된 월-E(2008) 역시 우주를 떠돌던 인류로 하여금 안락함을 포기하고 우주선을 벗어나게 만들게 했다. 그에 비해 디즈니는 기존의 질서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결말부에 '같은 인종 간' '남녀' 연인 관계를 회복시켜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다시 등장시킨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끝내 모자란 한 걸음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월-E(2008)에서 진실의 자각은 기존 질서 파괴로 이어진다. / 이미지 출처: IMDb



디즈니라서 놀라웠지만 결국 디즈니라서 아쉬웠다. 디즈니 영화에서 영화 속 주제가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어찌 보면 예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안나의 솔로곡 <The Next Right Thing>의 가사 속 '너무 멀리 보지' 않고 '다음으로 옳은 일'을 하겠다는 선언의 방향성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한 발'에 그친 보폭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좁은 보폭은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던가? 100년 가까이 왕자와 공주 얘기를 하던 디즈니가 겨울왕국(2013)을 만든 후 6년 만에 겨울왕국 2(2019)에 도달했다. 성실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시대를 앞서 담론을 이끌고 있을 디즈니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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