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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Sep 25. 2021

오징어 게임이 노잼이었다면 그건 아마

오징어 게임(2021)을 보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오징어 게임>. 한국어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있었나 싶다. 얼마 전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1위를 찍었다고 하니 진출 이후 몇 년 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린 넷플릭스에게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이는 구독자에게도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투자의 성공은 새로운 투자로 이어질 것이고, 막상 구독해두고 볼 것이 없어 헤매는 많은 이에게 조그마한 기대를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이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강새벽 역을 맡은 정호연 등 뉴페이스의 발견, 예고편을 압도했던 파스텔 톤의 색으로 쌓은 미장센 등 몇몇 요소는 눈길을 끌었지만 드라마 전체를 보았을 때 눈에 띄는 비범함은 없었을뿐더러 특별히 볼 것이 없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이 글에서는 1화를 떠올리며 왜 지루하다 느꼈는지를 설명해보려고 한다. 모든 드라마의 1화는 출사표이자 설명서이지 않는가? 게다가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도 피할 수 있으니 분석할만하다.



1화는 전반부에는 기훈(이정재 분)이라는 인물을, 후반부에는 미스터리한 오징어 게임에 초점을 맞추며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인공과 게임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인공 기훈은 상당히 평범한 인물이다. 노모에게 얹혀사는 빚쟁이 이혼남이라는 설정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은 시대일뿐더러, 다른 참가자가 등장하는 순간 특수성은 휘발돼 날아가고 오히려 평범함이 부각된다. 평범함은 흠이 아니다. 그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군상을 관찰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며 평범함은 무기가 된다.


정작 문제는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게임마저도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기훈의 말을 빌리자면 "아니 어떻게 사람이 죽는데" 평범한 게임이냐 할 수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죽음이 주요 인물의 퇴장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날파리처럼 산화하는 엑스트라의 죽음을 보라. 그들의 죽음은 주인공이 처한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하며 피를 좀 튀기는 것 외에 특별한 시각적 묘사조차 없다. 마지막에는 재즈 음악까지 버무려지며 경쾌하게까지 그려지는 학살극 속에서 죽음은 더 이상 특수 상황이 아니며 참가자의 빚더미 같은 기본 설정에 불과하다.


죽음이 평범해진 상황에서 남은 게임은 단순하기 그지 없고, 그 게임을 영상으로 담는 방식 또한 안일하고 지루하다. 양아치스런 첫 참가자의 클리셰 같은 죽음 이후 어떠한 참신한 연출도 없이 가다-서다-죽는다 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좀처럼 이어가지 못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쉬운 게임으로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게임 외적인 힘이 필요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 역시 동전 던지기라는 단순한 게임으로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지만 배우의 연기와 편집, 사운드의 힘을 빌려 가슴 졸이게 만드는 장면을 만든다. 물론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아카데미 작품상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저것이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평범한 주인공이 평범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것. 이것이 오징어 게임이 지루하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다. 주인공도 게임도 매력이 없고, 심지어 그것을 다루는 연출이나 편집은 안일하여 결국 지루하다. 그나마 시한폭탄 같은 다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군상극은 기대를 채워줬지만 이 드라마는 오징어 '군상극'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 아닌가? 주인공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를 더 갈고닦았어야 했다. 주인공이나 게임 둘 둥 하나라도 참신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데고 데어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한번 더 속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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