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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Sep 22. 2024

수유천을 오고 가는 장어들

수유천(2024)을 보고

흔히 한국에서 장어라고 불리는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내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삶의 시작과 끝에서 두 세계를 종횡하는 장어가 수유천(2024)에 반복하여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주인공 전임(김민희 분)은 매일 밤 학교로 돌아와 직조 작업을 반복한다. 한강과 중랑천을 거쳐 수유천으로 다가가는 그의 연작은 강의 원류를 찾고 있다. 매일 강에 나가 패턴을 포착하고 몸을 움직여 남기는 것이 그의 일과다. 전임의 작업이 근본으로 회귀하려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신비한 계시로 공대를 그만뒀다는 이야기와 우연한 인연으로 강사 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그의 설명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또 다른 주인공 삼촌(권해효 분)은 과거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십 년 전 이 학교에서 똑같이 촌극을 연출하였노라고 여러 번 말한다. 사연은 반복될수록 구체화하고 그의 동기가 후회임을 짐작하게 한다. 삼촌이 스무 살에 연출한 촌극은 망했고 첫사랑에게는 상처를 줬다. 다시 대학을 돌아와 과거를 만회하고자 하는 삼촌은 그를 똑 닮은 젊은 연출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실패는 세대를 거쳐 반복하고 동시에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가 된다. 영화 초반 시간이 정말 없다며 입을 모아 말하던 이십 대 초반의 학생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시를 지어 말한다. 그들에 비해 정말 시간이 없을 삼촌은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민물의 원류를 찾아가고 바다로 돌아가는 장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의 달은 하루하루 차오른다. 달은 윤회하는 영화의 흐름을 구성하는 또 다른 시간축이다. 장어의 생애는 바다로 돌아가는 순간 끝나지만 달의 모양은 순환한다. 영화의 등장인물을 나이 별로 분류한다면 세대 간에는 스무 해의 격차가 있고 가장 어린 세대는 두 무리의 군집으로 등장하여 각각 전 세대인 전임과 전전 세대인 삼촌과 교감한다. 엄기호의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2018)에서 저자는 고통은 나눌 수 없지만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그 사실만큼은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수유천의 세계 속 인물은 각자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게 되지만 적어도 그전 세대 역시 장어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물의 원류를 찾아가고 바다로 돌아가는 장어의 여정은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전임은 중랑천을 직조하고 수유천 작업을 시작하고 그 너머의 원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삼촌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새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장어를 먹다 원류를 찾아 떠난 전임은 삼촌의 부름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노라 고한다. 그가 걷는 계곡은 감독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에 계곡을 거슬러온 인물은 미소 짓고 있다. 우리는 이 삶의 의미를 득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마냥 비극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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