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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5. 2018

이다의 이탈리아 예술 여행 1

피렌체의 3대 도서관 - 1편, 오블라떼 도서관 (피렌체에서 보내는 글들

쓰나미처럼, 어느 날 비행기에 실려 이탈리아로 날아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는 몰랐죠.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를..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혼자의 시간이 길어져 생각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의 냄새를 느낄수 있게 되었다는 것, 소소한 그런 일상을 나누고 싶어 브런치의 펜을 듭니다.


오늘이 첫 글이라 저를 먼저 이야기 드릴게요.

설레는 마음도 있고 누군가를 글로 만난다니, 일요일 아침 떨려버리네요..

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살고 있고 이태리 그림 복원을 오랫동안 배웠고 지금은 피렌체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배우며 이태리의 그림들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태리의 자연이 낳은 예술을 책장 넘기듯 기록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아는 세상은 공간적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이 다르므로 느끼고 아는 것도 다를 것이고 그래서 같은 그림도 다르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두 눈과 두 개의 귀로만 만나니까요. 글은 코를 쓰지 않고 입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눈과 귀가 가진 공간적인 제한성을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 있지요. 심장안에 담겨 있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사실 심장 뿐 아니라 머릿 속, 정신이라 불리는 곳에도 있습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 두 눈과 귀로 세상을 만나지만 영혼이 그것을 이해하는 근본적 힘이라는 뜻입니다. 

예술은 두 눈과 두개의 귀로만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흡사 슈퍼마켓에서 오늘 먹을 참치 캔을 고르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마음 속에 담긴 영혼이 그것을 만나게 해 줍니다. 

흔히, 예술과 조.우.하.다. 라고 하지요. 


지난 1000년 동안 이태리 예술을 이끌어 왔던 예술가들은 바로 이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귀가 따갑게 수많은 선생님들에게 '영혼'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시간이 최소한 10년이 걸렸습니다. 


영혼이란, 예술과 늘 함께 있었다...


작은 이태리 예술 여행의 시작을 피렌체의 3대 도서관에서부터 출발해 보고 싶습니다.

"왜 도서관이지?"

왜냐면, 그곳에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이태리의 도서관들은 녹색의 휴식 공간을 반드시 함께 갖고 있습니다. 눈과 귀로 읽은 글들은 그 휴식 공간에서 영혼과 대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렌체의 3대 도서관 - 1편, 고아원에서 도서관으로... <Oblate 오블라떼 도서관>

이탈리아에는 아름다운 도서관이 많이 있습니다. 저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만든 공공 도서관, 라우렌지아 도서관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어 준 것이고,

그들에게는 화려한 궁전보다 작은 도서관 하나가 더 소중하고 즐거운 장소였습니다. 

나무와 대리석, 작은 불빛과 낮은 발자국 소리.. 천장까지 닿아 있는 책장에 가득한 낡은 책들과 비밀이 담겨 있을 법한 굳게 닫힌 문, 길고 조용한 복도와 햇빛이 쏟아지는 창들... 이게 이태리 도서관의 모습입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붉은 돔 쿠폴라 뒤로 돌아 골목길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오블라떼 도서관은 피렌체의 시립 도서관, 누구나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쿠폴라가 보이는 멋진 3층의 카페테리아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이태리의 도서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래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물들로 가득한 이태리는 오래된 건축을 복원하여 옛 시간을 지켜가며 현대시대를 살아갑니다. 이 곳 역시 1287년에 만들어진 오블라떼 수도원을 내부만 복원하여 도서관으로 만들어서, 고풍스런 중세의 수도원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오블라떼 도서관에 들어서면 만나는 중앙정원


Chiostri(끼오스트리)라고 불리는 이 중앙 정원은 중세의 수도원 내부의 실내 정원입니다. 사각의 공간과 사이의 복도가 교회와 수도원 사이를 잇는 통로이자 그들이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장식을 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사각 형태의 이 곳은 오직 초록 잔디만이 있습니다. 가끔 중앙에 나무를 한그루 심기도 합니다. 땅에 대한 것이지요. 인간이 밟고 있는 공간으로서..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신과 인간이라는 주제는 이미 공간 차원에서부터 나누어집니다. 신만을 우러러본 공간이라기 보다는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가면 편안해 집니다. 색채 심리학으로 보았을 때 녹색은 기분을 평온하게 한다기에, 유럽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었던 Malatestiana 도서관은 아예 도서관의 벽을 초록색으로 칠했다지요. 


학생들은 저 공간에 앉아 쉬기도 하고 담배도 피웁니다. 누군가, 음악을 듣는 상상을 했지만, 한참을 친구와 통화하느라 떠들고 있는 녀석때문에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올랐습니다. 


이태리 인들은 오래된 건물의 지붕을 잘 버리지 않습니다. 나무 서까래를 끼워맞춘 지붕은 튼튼하게 건물을 받쳐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모양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태리의 건물들은 보통 궁전이나 공공 건물은 둥근 돔 형태의 지붕에 석고를 발라 하얗게 마무리하거나 (이건 그곳에 천정화 장식을 하기 위해서지요), 일반적인 건물에는 나무 서까래를 보이도록 만들어서 집의 견고성을 눈에 띄게 합니다. 돌과 함께 나무는 건축의 중요한 재료인데, 시멘트보다 나무나 돌이라는 재료가 자연적으로 더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붕 아래 학생들은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오블라떼 도서관은 귀중한 고전 또는 고대 필사본등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공간으로 제공된 곳입니다.  가끔 숙제를 하거나,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들러 두어시간 책을 읽고 다시 하늘을 한번 보다가 조용히 3층의 카페에 들릅니다. 



이곳은 테라스 공간인데, 학생들은 대부분 여기서 공부를 하지요. 커피 한잔을 시키지 않아도 여기서는 종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3층의 야외 열람실에서 바라본 풍경.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를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책을 읽으며 바라볼 수 있는 도서관의 테라스에는 늘 학생들로 북적됩니다. 조용히 노트를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학생은 곧 시험을 앞둔 게 분명합니다. 노트에는 여기저기 형광펜 자국이 선명하고 구술로 보는 시험 방식 때문에 학생들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어디가나 끊이지 않고 지껄이는 이태리인들의 버릇은 학교가 키워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봅니다. 두 세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의논을 하기도 하지만, 이태리 도서관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학생들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 잠은 침대에서.. 이런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을 문득하며 텁텁한 입안에 여지 없이 커피가 생각납니다. 오후 4시.. 학생들도 하나 둘 카페로 갑니다.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는 활기차게 웃어주는 카페 아저씨가 인사를 건넵니다. 

                                                                                      " Buona sera (보나세라~)..


                           카페테리아에서 바라본 창 밖의 두오모 쿠폴라


크로와상 1,1유로, 카푸치노 1,5유로,  전망 십만유로~

오블라떼 도서관이 피렌체의 반짝이는 수많은 진주로 남아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공간입니다. 


초록의 잔디로 지친 우리를 맞이해 주고 

수도원의 오래된 영혼들이 떠돌며 지나간 역사를 속삭여 주는 공간, 

서까래 위에 얹어진 금 간 나무들은 우리가 굳이 완벽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하며 시간이 지나면 저 튼튼한 나무도 금이 가고 낡아지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나무로 살아갈 수 있다고 위로해 주는 공간,

그리고 고매한 고전은 졸음에서 인간의 정신을 깨우고 또 하나를 이룰 수 있다고 희망을 보여주는 공간,


오블라떼 도서관 3층의 카페에서 바라본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


1436년, 피렌체의 브루넬레스키가 저 돔을 완성해 갈 즈음에 사람들은 나무와 벽돌을 쉼없이 날라가던 지붕에 거대한 붉은 돔이 생긴 것을 보고 마치 토스카나의 언덕이 하나 내려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렌체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것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늘 설계도면을 감추며 비밀스럽게 다녔지만, 그가 꿈꿨던 피렌체의 돔 모양은 늘 두오모 입구에 걸려 있어서 피렌체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알수 없는 수학 공식이 끄적여 있었고, 콤파스로 여러 번 그은 둥근 선들이 고대의 기하학을 떠올리게 해 주었기에 뭔가 저 비밀스런 건축가와 두오모 성당 건축 책임자 들 사이에서 대단한 일들이 일어 나고 있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믿지는 않았습니다. 판테온을 뛰어넘는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선조들의 위대함을 모욕하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었고, 만약 실패한다면 이태리의 다른 국가들에게 충분한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무도 자랑하지도 희망하지도 않았던 그 돔,

 그것이 1436년 4월에 토스카나의 붉은 흙무덤처럼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될 피렌체 인들의 미래를 그 곳에 있던 누군가는 예감했습니다. 

수학이 자연의 재료들과 만났을 때, 저렇게 멋진 형태로 만들어 질 수 있다면, 

그 위대한 수학은 어디서 왔는가!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메오스의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에 대한 의심은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이 지붕으로 더욱 흔들렸습니다. 


도서관 창문으로 바라보는 쿠폴라는 수학으로 지어지는 건축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기하학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섭리를 도식화했고 

신으로 대변되는 둥근 원은 지붕으로 얹어졌고, 

그것을 얹은 건축가의 비밀은 지난 세기동안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작은 도서관에 앉아서 500년 전의 시대와 그 시대 정신을 만나는 카페에서의 휴식 시간은,

 여전히 이 도서관이 평범한 도서관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 피렌체의 3대 도서관 - 2편, 이태리 국립 도서관 Biblioteca Nazionale

(<이다의 이탈리아 예술 여행>은 매주 주말에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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