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3대 도서관-2편. 국립 중앙 도서관 이야기
이탈리아의 예술은 도서관에서도 흘러 나왔습니다.
표지 그림은 베네치아의 화가였던 조르지오네의 1504년 그림입니다. <세 철학자>는 중세의 사상을 대변하는 노인과 이슬람 수학자와 고대 기하학을 되살리는 르네상스 젊은이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그림입니다. 중세와 동양의 철학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사색의 주제였습니다. 조르지오네의 감미로운 색채가 철학자들의 사색을 부드럽게 바라봅니다.
유독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선조들의 지성을 탐구하기를 즐겨 하게 되었는데, 고서들과 필사본들은 그들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서관은 그렇게 고대와 중세를 아우르는 시대 정신을 탐구하는 지성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탄생하게 되었지요. 그 유명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라우렌치아 도서관은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지성임을 보여주었지요. 당시의 이탈리아 지배자들은 학자를 최고의 연봉으로 대접하며 겸손히 선조들의 지성을 배워 나갔습니다.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이나 만토바의 곤자가 가문도 아예 동로마에서 그리스 교수들을 초빙해서 고전을 배우기에 열을 올렸다지요. 중세의 시 문학과 달랐던 고대 그리스 문학은 인간을 다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열어 주기도 했고, 고대 건축을 더욱 깊이있게 해석하게 되자 그림의 빈 배경이 더욱 단단히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은 이탈리아 지배자들이 만든 도서관의 책들로부터 하나씩 봉인이 풀린 셈이지요.
1400년대 이탈리아에서 도서관을 만드는 열풍은 가난하고 무지한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 되었습니다. 유럽 최초이자 이태리 최초의 공공 도서관으로 잘 알려진 Malatestiana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은 1454년에 이미 문을 열었으니까요. 그곳은 현재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체세나역을 지나는 길에 이 도서관이 생각나서 체세나 역에서 내려 가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1454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서관은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당시 사람들의 기쁨을 떠올리게 합니다. 녹색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걸 당시에도 알았기에 도서관의 벽은 침착한 녹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도서관은 촛불을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햇빛이 비치는 시간에만 책을 볼 수 있었으니, 겨울엔 무척 짧게 개방된 셈이지요. 서적을 쇠사슬로 묶어 보관한 최초의 도서관이라며 설명해주시는 분이 자랑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사람 엄지보다 작은 1897년 출판된 책이지요.
신분과 부에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그저 평범한 도서관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던 문화였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돈이나 신분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는 유럽의 현재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그 기준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로운 지적 탐구의 분위기는 신학과 과학, 시문학 분야로부터 출발하여 자연스럽게 예술의 수준을 깊이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귀하디 귀한 고전과 문헌을 무료로 개방했던 문화는 이탈리아 최대의 도서관으로 완성되기도 하였습니다. 피렌체에서 살던 평범한 금은 세공사가 이탈리아 최고의 도서관 탄생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피렌체에는 이탈리아 국립 중앙 도서관이 있습니다. 1911년에 지어진 사각형의 이 건물은 두오모의 둥근 돔이나 낭만적인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갖는 여성 스러움과는 좀 동떨어진 투박함을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피에트라 포르테라는 피렌체의 누런 색의 돌로 외관을 다듬은 탓에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같은 느낌도 듭니다. 아르노 강변 앞에 있어 강 건너 보드라운 토스카나의 언덕을 바라보며 잠시 나와 쉴 수 있는 현관에는 학생들이 종일 앉아있기도 합니다.
도서관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이지만, 사실 책을 보관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럽의 유명한 도서관들이 고대의 책들을 보관하고 보존하는 일에 가장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피렌체의 국립 중앙 도서관은 1975년 만들어진 로마의 국립 중앙 도서관보다 훨씬 먼저 세워진 탓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 곳은 6백만권의 간행지, 2백8십만권의 소논문, 2만5천권 필사본, 4천권의 15세기 이전 간행본, 3만권의 1500년대 책들, 1백만권의 역사 친필서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책장 길이는 135km로 매년 1,5km길이의 책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연구 필사본을 가장 많이 보관한 도서관으로도 유명하지요. 피렌체는 그가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천문학과 과학 연구에 생을 바쳤던 곳이었고 제자였던 비비아니가 스승의 귀한 책들을 메디치 가문에게 기증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해 내며 목숨까지 걸었던 갈릴레오의 진리 탐구 정신은 흔들림 없는 무게를 가진 도서관 외관과 많이 닮은 듯 합니다.
피렌체 국립 중앙 도서관은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시기에 피렌체가 이탈리아의 수도로 지정되었을 때부터 국립 도서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150년이나 앞서 한 개인의 노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안토니오 말리아베키 Antonio Magliabechi..
이 사람은 피렌체의 금은 세공사였다.
소박한 그의 집에는 낡은 가구 몇개 사이에 귀중한 필사본이나 도서, 서간, 간행물들이 3만권이나 있었다. 친구인 안톤 프란체스코는 그가 가난한 학생들과 신학생들, 사제, 학자들을 위해 이것을 사 모았으며 그들이 원할 땐 언제든지 찾아서 빌려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일생에 단 한권의 책도 쓰지 않았고 도서 목록따위는 만들어 본 적도 없지만 그들이 그의 집에 찾아와서 어떤 책을 부탁하면 산더미 같은 책들 사이에서 그걸 어김없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집은 작은 도서관이자 그는 인정많은 사설 도서관장이기도 했다.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3세 대공은 그를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장으로 채용했고 피티 궁의 또 하나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도서 목록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안토니오는 평생 혼자 살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책을 읽었고 1714년 그가 죽었을때 그가 평생 모은 3만권의 책을 시민들에게 기증하여 말리아베키 도서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국립 중앙 도서관의 시작이 됩니다.
평범한 한 시민이 만든 도서관, 그의 친구였던 안톤 프란체스코가 언젠가 그에게 물었다.
" 여보게, 왜 그리 저 비싼 책들을 사 모으느라고 애를 쓰나, 자네 낡은 침대나 좀 바꾸지 그래?"
"1년 전 쯤, 페데리코의 아들 다비드가 부탁한 <도덕론>을 어떡해든 구해주고 싶네. 그 아이는 앞으로 좋은 학자가 될 거야. 그 아이가 공부를 중단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단 말이지..."
지금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덕이 있는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원의 나라'다운 이탈리아의 열정이 그걸 한편으로 증명해 주기도 하지요.
1966년 11월 4일의 우울한 어느날,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고 빗줄기는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약 11일을 쉬지않고 내린 비로 피렌체는 물에 잠겨 마치 작은 베네치아처럼 보였습니다.
1911년 건축된 이 건물은 불행하게도 아르노강 바로 앞에 있었기에 지하 창고와 1층의 서간들은 온통 물에 잠기고 범람한 강둑에서 흘러들어온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아..........!!"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피렌체 사람들은 마냥 절망할 수 만은 없었습니다.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의 많은 성당 내부까지 비와 진흙이 밀어 닥친 탓에 온갖 예술품들이 물에 잠겨 도서관의 책들을 구해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책들이 손상되고 파손되었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때 많은 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유산은 곧 그들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다라고 호소하며 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파견하기도 하였지요.
이탈리아에 온 전세계의 자원 봉사자들과 이탈리아인들의 노력은 감동적인 것이었고 인류 문화 유산을 지켜내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현대 복원의 역사는 바로 이 피렌체의 홍수로 시작되었으며, 필자가 이탈리아에 와서 공부한 복원의 역사는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그 복원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홍수 때 피렌체의 복원을 도왔던 이들은 " 진흙속의 천사 Gli angeli del fango"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도서관 서적 복원은 현재에도 약 18000권이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소중한 보물처럼 아끼고 보존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도서 중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필사본들입니다. 도서관 내부로 우리를 안내한 직원은 필사본 하나를 보여 주었습니다. 빨간 벨벳으로 감싸고 은으로 만든 걸개를 달은 두꺼운 필사본은 한 귀족의 1400년대 기도서입니다. 은으로 만든 걸개에는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 금과 비싼 파랑 빨강 물감으로 장식한 양피지 책이다 보니 당시에도 이런 책은 너무 고가여서 일반인은 만져보지도 못했던 것들입니다.
이렇게 기도서나 성경 필사본을 위해 중세시대에도 그림을 그렸고 색을 연구했습니다.
르네상스와는 많이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르네상스의 그림 중 일부는 여전히 중세의 표식 그림들의 전통을 1500년대까지 계승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의 세계에 대한 중세 사람들의 상상은 그림의 추상성에 자유를 주었기에, 중세 그림은 딱딱한 그림이 아닌 상상의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그림들로도 학자들은 평가합니다.
중세예술에 대한 상당한 오해들이 존재하지만, 단순한 이 기도서 하나로도 숙련된 그림 솜씨와 추상적인 상징들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인류의 지성들이 탐구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그것을 보관하고 간직하고 있는 도서관들은 말없는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괴테가 38년동안 도서관장이었던 것처럼,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라는 명저를 남긴 야코프 브루크하르트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인류의 지성들을 만났습니다.
인류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에 대하여 쏟아낸 수천년의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길 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
그 시대 정신과 분위기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학생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털어 책을 사서 빌려주는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예술은 그래서 더욱 우리와 행복한 교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즈음, 도서관 직원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고 멀리 성당의 종소리가 정오를 알리며 울려 퍼졌습니다.
다음 편: 피렌체의 3대 도서관 -3편. 미술사 전문 도서관 Kunsthistorisches institut in florenz
(<이다의 이탈리아 예술 여행>은 매주 주말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