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만난 데 키리코와 형이상학 회화
봄날이 5월 광장에 있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 나는 늦은 오후의 광장을 바로보고 있었다. 문득, 매일 보던 저 산타 크로체 성당의 하얀 대리석 벽이, 그 앞에 놓인 단테의 동상이 강렬한 햇빛 아래 낯설게 느껴졌다. 뭔가 공포스런 분위기에 당황하며, 나는 꼰 다리를 펴고 곧은 자세로 다시 앉았다. 광장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순간, 이런 몽롱한 분위기를 미리 들려 준 형이상학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를 떠올렸다.
1910년의 어느 가을날 오후, 전쟁의 감운이 도는 유럽의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황량하기 그지 없는 이 광장에서, 데 키리코는 병에서 이제 막 회복된 몸으로 앉아 있었다. 그에게 죽음이란, 그것은 공포의 공간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은 더욱 죄여 왔고 오후 해가 길게 늘어진 광장에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문득 현기증처럼 그에게 이상한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그런 눈으로 낯설어서 더욱 멀어지기만 하는 광장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조르조 데 키리코가 그의 <형이상학 회화>를 탄생시킨 시작이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 (1888~1978) Giorgio De Chirico
: 형이상학 회화를 만든 이탈리아의 근대 화가이다.
오늘은 이탈리아 근대 회화 중 기묘하고 신기한 작품을 그린 형이상학 회화 ' 데 키리코'의 이야기이다.
데 키리코와 형이상학 회화
"예술은 지고의 과업이며 삶에 있어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화면 속에서 공간과 사물의 익숙함과 낯선 느낌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아케이드 건물과 광장, 거리의 마차는 친숙한 것들이지만 그들의 기묘한 배치는 갑자기 처음 보는 것과 같은 낯선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거리의 적막함과 시간이 멈춘 듯한 늦은 오후에 늘어진 그림자와 기묘한 원근법은 현실 같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데 키리코의 그림들은 심리적이고 초현실적인 기운이 감돈다. 그림 속 풍경은 비어 있고 낯선 음침함이 있고 고독하다. 익숙한 것들을 어떻게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까? 데 키리코는 긴 세월 동안 미술이 질서와 균형을 추구하던 아름다움을 혼돈에서 오는 비애, 비애에서 오는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의 형이상학 회화의 시작은 1910년의 피렌체에서의 경험이었다. 그는 신경쇠약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었고, 회복되어 가는 어느 늦은 가을날 오후에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광장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광장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듯한 낯선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니체가 토리노의 광장을 지나가면서 느낀 것, “토리노에서 모든 것은 환영이며 정확하게 기하학적인 광장 너머로 우리는 무한한 것에 대한 향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존재를 영위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또 하나의 전적으로 다른 현실이 드러누워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의 이 경험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는데,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을 <수수께끼>라는 시리즈로 그렸다.
이 신비로운 그림들은 곧 ‘형이상학 회화’라고 불려지는데, 데 키리코 자신이 직접 붙인 명칭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뮌헨에서 미술 공부를 할 때 독일의 철학자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빠져 있었고, 그들처럼 세계를 보는 형이상학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형이상학 회화가 탄생한다.
형이상학 회화는 (메타 피지카) : 피지카(phisika) 즉, ‘오감을 통해 알 수 있는 세계’와 메타(meta) ‘저 너머’ 의 합성어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의 세계 저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는 미술로서 1910년부터 데 키리코의 작품에서 나오기 시작하며, 1918년 <Valori Plastici> 잡지에 카라와 조르조 모란디가 형이상학 회화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하나의 화파가 되었다.
1900년대 초의 이탈리아의 근대미술은 움베르토 보초니의 미래파와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 회화로 시작되었다. 당시 파리에서는 ‘속도’를 주제로 기계와 미래에 낙관적이었던 미래파나 인상파, 큐비즘이 근대 미술의 주류였지만 데 키리코는 ‘보이는 시각적 현상’보다는 ‘존재의 근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너머의 세계의 원리로 우리에게 표상될 뿐이라는 철학과 그 너머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죽음>을 탐구했던 독일 화가 뵈클린의 작품은 데 키리코 회화의 주제이다.
데 키리코의 아버지는 귀족 가문으로 그리스와 불가리아 철도 건설의 엔지니어였다. 그리스에서 태어났으며 18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죽고 이후 어머니와 남동생 안드레아와 살았다. 데 키리코는 유럽 전역을 다니며 공부하였는데, 8살부터 아테네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고 고등학생 때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와 음악을 배웠다.
1906년부터 피렌체 미술대학을 거쳐 1907년 뮌헨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그의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사상과 상징주의 화가인 뵈클린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철학만이 아니라 예술도 본질적으로 현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다. “라는 생각에 데 키리코는 동의하였다.
예술에 철학적 관점을 부여하고자 했던 데 키리코는 1911년부터 1915년에 파리에서 근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독창적인 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전쟁이었다. 당시의 유럽 분위기는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난 1914년을 전후로 암울한 공포 분위기가 가득했고, 군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데 키리코에게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죽음에 대한 데 키리코의 심리는 <죽음>을 그렸던 화가 뵈클린의 작품세계를 탐닉하게 하였다.
뵈클린이 누구냐면, 죽음에 대한 심리와 느낌, 신비로움을 그린 1800년대 중반의 독일 낭만주의 화가이다. 뵈클린은 모든 그림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며, 마치 한편의 시가 그렇듯 관람자로 하여금 생각을 일으켜야 하고, 또 한 소절의 음악 같은 감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처럼, 죽음은 우리의 현실 저 너머에 있다.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이처럼 알 수 없는 세계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어, 가상 세계인 현실이 실제 세계인 것처럼 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혹은 초현실인지 그가 천재라 하더라도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예술이 그려대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무의미해 보인다. 초현실적인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고전 미술이 추구해 온 질서와 균형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작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익숙한 시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질서’와 ‘균형’에 반대되는 ‘혼돈’과 ‘무질서’를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니체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세계란, 본능과 광기를 가진 인간이 이성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다섯 마리의 늑대가 산다. 그 늑대들은 이성이라는 철창에 갇혀서 뛰쳐나오기 위해 철창을 뒤흔들며 살고 있다. 늑대를 가둔 철창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억압할 뿐 아니라 예술가도 이성과 논리에 의해 억제되고 통제된다.
인간의 광기와 본능은 예술을 통해 존재 가치를 찾고 치유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니체는 인간의 본능과 광기의 훌륭한 치료제가 예술이라고 말한다. 이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의미는 “탁월하게 세계를 보는 인식의 한 형태”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탁월하게 세계를 본다’는 뜻은 정신적인 세계도 함께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니체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표상일 뿐이라고 했다. 시간과 공간, 인과성의 사슬로 엮여서 보이는 단순한 표상의 세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니체 역시 우리는 다만, 시간, 공간, 인과성과 성질이라는 형식의 틀 안에 있는 세계 안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세계는 지금 말한 형식의 틀 안에서 세계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이해하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시간과 공간, 인과성의 세계가 사슬처럼 기하학의 세계 안에 어떻게 갇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광장의 시계는 오후 2시 55분이다.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늦은 오후를 보여준다. 어느 시간이 진짜일까? 공간은 기하학적인 구조 안에서 단순화되어 있고, 시간의 사슬은 끊어졌다. 광장의 두 사람은 X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과성의 사슬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데 키리코가 그린 이 장면에서는 시간의 사슬이 끊어졌다. ‘익숙한 것들을 기묘하게 바꾸면 낯설어 진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형이상학 세계에 대한 탐구는 기묘한 원근법을 통한 공간의 왜곡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원근법의 세계는 데 키리코의 작품의 기본 배경이다. 현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 고전적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원근법으로 세계를 그릴 수 있다면, 현실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원근법은 왜곡되거나 자체에 신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원근법은 기묘하게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영혼이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마네킹이 나온다. 배경에는 그가 살았던 페라라의 르네상스 성이 보인다. 그것은 붉고 견고하다. 그러나 한쪽에는 연기 없는 굴뚝을 가진 공장을 함께 그려 넣어 시간의 혼란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왜곡된 원근법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원근법이 아니다. 소실점은 두 개이며 가파른 각도로 인해 화면은 불안과 일종의 공포의 느낌을 준다. 인과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큐브 장난감 조각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성의 사슬을 의도적으로 끊어버린 후 “자, 이제 너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표상의 세계 즉,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인과성의 사슬을 끊으면 표상의 세계 또한 사라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갖 익숙한 습관으로 보아왔던 우리의 인식체계를 깨끗이 지워버린 ‘저 너머’ 메타포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곳은 의도적으로 현실세계를 넘어선 저 너머의 형이상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페라라의 성이 이 왜곡된 공간 안에서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가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 느꼈던, 익숙한 공간에 대한 낯선 느낌과 니체가 토리노의 광장을 지나가면서 느꼈던 기하학적인 광장 너머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데 키리코가 형상화한 세계에서 말이다.
이제, 데 키리코의 세계는 고독한 세계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창조하는 공간은 고독과 침묵이 있다. 황량한 광장에는 무생물들이 놓여 있다. 마네킹이나 대리석 조각 상들은 생명이 없는 육체를 가졌다. 마네킹은 형태의 본질인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만 만들어진 채 시간과 공간,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인과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가 뒤섞이고, 공간은 익숙한 원근법을 넘어서 왜곡되고 기이하게 꾸며졌다. 이제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절대 고독의 상태가 되었다.
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인간은 충동에서 벗어난 본질의 세계를 비로소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예술은 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탄생한다. 얼기설기 엮어진 세상의 현상들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
예술은 그렇게 ‘관조적으로 사물의 본질만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독도 능력이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얼마나 고독해지느냐 하는 능력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데 키리코의 작품 속에는 이러한 절대 고독의 세계가 있다. 우리는 이 신비로운 세계가 너무 낯설어 초현실적 세계라고도 여긴다.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하여 초현실주의자들이 데 키리코의 작품에 열광했던 이유이다. 물론, 초현실주의자들은 이 신비한 세계로 출발하는 지점이 데 키리코와는 완전히 달랐지만 말이다.
잘 연구되고 왜곡된 원근법으로 그려진 광장은 끊어져야 할 공간에 대한 모티브이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시대가 다른 중세의 성과 연기 없는 굴뚝은 시간의 혼란과 정지를 의미하며, 무생물적 존재들, 마네킹과 대리석 조각 상들은 인간적 의지나 충동이 제거된 존재들을 의미한다.
이것들을 한데 모아 인과성이 전혀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리면 그것들로 인해 우리에게 나타났던 표상의 세계도 사라지며 우리를 인식 너머의 낯선 세계로 이끌어 가는데, 그곳이 형이상학의 세계이다.
데 키리코는 왜 형이상학 세계를 그리려고 했을까?
그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었다. 1910년대의 유럽은 전쟁의 분위기로 암울하고 우울하였다. 누군가는 미래에 대한 낙관론자로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존재의 근원을 찾아 암울한 현실에서부터 도피하고자 하였다.
데 키리코는 후자를 택한 것이다. 니체가 그의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였다.
니체에게 이성을 통해 볼 수 있는 이 세상은 아폴론적인 것으로 질서와 균형, 정적인 곳이다. 곧,인간이 본능과 광기를 가둔 철창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세상은 인간의 본능과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인간의 본능과 광기를 이성이라는 철창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폐쇄적인 것에서 해체되면 인간은 삶의 공포나 불합리, 진리를 통찰하게 되는 관조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현실 저 너머의 세계는 죽음의 느낌처럼 신비롭고 음산한 분위기를 가진 공포감을 주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태도를 통해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술이 이러한 관조적인 태도를 찾아주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예술을 통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존재의 신비로움을 바라보는 것으로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재편한 예술가였던 데 키리코는 철학보다 예술이 왜 우위를 차지하는지를 형이상학 회화로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예술가는 철학을 극복한 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