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나무 1화 프롤로그 -나무로 살아도 괜찮아, 근데..(2편)
이 글은 1화 프롤로그 - 나무로 살아도 괜찮아, 근데..(1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의 유학생활은 나무로 살았던 삶입니다. 나는 숲을 보아야 했습니다.
나는 나의 유학생활을 후회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무로 살았기에, 나무로 사는 삶과 숲으로 사는 삶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후회스런 유학 생활이지만, 언제나 실패는 아닌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의 삶을 숲으로 살고 싶습니다.
나무로 사는 삶과 숲으로 사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그 첫 번째 의미는 작은 것들에 연연하여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작은 것입니다. 나는 작은 것에 상처받고, 인간관계를 끊고 우울증처럼 집안에 혼자 틀어박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단 한번만 오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따라 왕왕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위축되었습니다. 혼자 있는 게 편했기에, 이 넓은 유럽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건 한국 사람들과 이탈리아 사람들 모두 그렇습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작은 것에 연연하여 인연을 끊지 않도록 좋은 점을 더 많이 보고, 작은 허물을 덮어주며 더 많은 관계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그 두 번째 의미는 분명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어느 숲에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벌목도를 가지고 있었고 힘이 좋은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나무를 베어가고 있었습니다.
리더는 얼마나 남았는지 보기 위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무를 베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리쳤습니다. “모두 멈춰요! 우리는 지금 엉뚱한 방향으로 나무를 베고 있다고!” 그러자 저 아래에서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그들은 잘못된 방향인 줄 알면서도 계속 나무를 베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도구를 가지고 힘센 일꾼이 있으면 빨리 나무를 벨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도구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결코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갖고 일꾼이 좋아도 분명한 목표와 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는 미술에 대해, 이탈리아인들이 떠드는 저 말들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왜 이탈리아에 위대한 그림들이 많은지, 그 비밀을 알고 싶어 13년을 계속 공부를 했습니다. 인문학에, 과학에, 실습에, 가이드 일을 위해 역사까지.
그러나 나는 정작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처음부터 분명히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공부가 끝나면 다음 공부를 계획했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이 공부를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길어졌고, 어느 순간 뒤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며 앞으로 나아갔기에 나는 계속해서 전진해야 했습니다. 좋은 도구와 힘센 일꾼으로 어떤 목표를 위해 그런 것들을 연마하고 다듬는지 바른 방향으로 목표를 만들지 않으면 중간에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결승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나무 베기를 계속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그 세 번째 의미는, 숲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름답고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로 빛나고 싶었습니다. 나의 나무가 빛이 나도록 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잘 되도록 협력하지 못했습니다.
내 갈 길도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내심 남이 잘 되는 게 배 아프고 질투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며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늘 혼자 서 있는 나무였습니다.
혼자 서 있는 나무는 외롭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크더라도 사람들은 숲이나 공원에서 쉬지 벌판에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 아래서 쉬지 않습니다. 그저 멋있는 나무를 쳐다보고는 스쳐 지나갑니다. 숲의 나무들은 비슷비슷한 키와 일렬로 서 있는 모습에 어느 나무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있기에 초록이 펼쳐진 숲을 이루고, 새들이 여기 저기 날아오며, 나무의 꽃씨가 뿌려져 여기 저기 들꽃들이 함께 자라줍니다. 사람들은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나무숲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산책을 합니다.
사람들이 숲으로 찾아오면, 여러 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지만 더러는 나의 나무 아래서도 쉬었다 갑니다. 혼자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숲에 함께 있는 나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제 역할을 해 줍니다.
나는 줄곧 혼자 나무로 살았습니다.
남들과 비슷해지기가 싫었고 나만의 길을 고집하고 혼자의 생각을 하면서도 고집을 꺾을 줄 몰랐습니다.
나무로 사는 일은 고달프고 외롭습니다.
새들을 꼬시고 주변에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해 혼자서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 그늘 아래서 쉬게 할라치면 바람에 살랑살랑 잎사귀를 흔들며 유혹을 해야 하고 그가 쉴 수 있는 멋진 그늘을 가능한 오래 만들기 위해 햇볕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무로 사는 삶의 고달픔과 쓸데없음을 알았습니다.
숲에서 같은 형태의 나무 중 일부가 된다는 것이 나의 존재를 희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기쁨을 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는 숲으로 살며 후진국 이탈리아에서의 유학 생활을 더 멋지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려운 공부들을 뚫고 왔던 지난 시간의 숨참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무로 사는 인생의 고달픔을 배웠으니, 이제 숲으로 사는 즐거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만약 나무가 아닌 숲으로 살며 13년의 유학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은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숲 어딘가의 또 다른 나무를 만나 이탈리아의 숲을 떠나지 않았겠지요?
나무로 살았던 고달프고 외로웠던 지난날이 후회되면서도 나무로 살았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금이 벅차게도 감사합니다. 우리 삶은 뭐든지 다 잃거나 다 얻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인생에 했던 수많은 실수들이 그래서 늘 다음 생을 사는데 또 다른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 생에는 숲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나무로 살아도 괜찮아. 근데, 숲으로 살면 더 괜찮아 ~"
3개월 후면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문득 사진을 정리하다가,
힘든 시절이었다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에서 행복한 웃음을 발견합니다.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행복했던 시절을 복원하고자
<이탈리아 유학, 13년>을 시작합니다.
학교와 가이드일, 내가 겪은 일들을 담담히 적어가다 보면 지금 유학 생활을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응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