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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6. 2022

취향 기록, 1월

1월의 내가 듣고 읽은 것



음악




LEISURE

작년 말에 추천받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운명처럼 만나게 된 밴드다. <덕통사고당했다>와 같은 맥락인데 취통사고..?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이후로 눈 뜨고 감을 때까지 하루 온종일 듣고 있다. 내 일상 배경음악이 되어버렸다. 얼른 앨범 또 내주라! 일해라!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음악적 취향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LEISURE라고 말할 테다. 듣자마자 내 취향을 그대로 가져다 음악으로 구현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이전에 그들의 취향이겠지만)


나는 사실 음악은 좋아해도 그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진 않는 편이다. 노래는 알아도 가수는 잘 모르는 그런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구글링으로 간략한 기본 정보를 수집했다. 그중 하나는 뉴질랜드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 장르는 'Soul, R&B, POP, Experimental rock, Alternative'라는 것. 맞다. 나는 Alternative 장르를 사랑한다. 뉴질랜드라니, 뉴질랜드 밴드는 처음이네. 아 뉴질랜드 여행 가고 싶다!


모든 앨범의 모든 노래가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꼽아보자면, 흠. <Got It Bad>, <Too Much of a Good Thing>, <Dipping & Diving>, <Be with You>, <Mesmerised>를 꼽겠다. 특히 <Got It Bad>는 정말 정말 매력적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들어봐! 실시간으로 홀리는 느낌.






Kanye West (Donda)

칸예 웨스트도 마찬가지로 추천받은 플레이리스트에서 듣고 깜짝 놀랐다. 원래도 이 사람이 누군지, 어떤 스타일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Jail>을 듣고 너무 놀랐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당장 떠오르는 비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입체적으로 잘 묘사된 등장인물과 같은 느낌..?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노래 중에 가장 예측이 되지 않는 다채로운 구성이다. 


다만 글을 쓰면서 구글링을 해 보니 앨범 출시와 관련해 잡음이 좀 있었던 게 눈에 띈다. 호평보다 혹평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대체로 곡에 대한 부분보다는 사생활 관련, 피처링에 참여한 라인업과 관련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썩 유쾌하진 않지만, 노래만 놓고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취향에 들어맞았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좋았던 곡은 <Jail>, <Junya>, <Jonah>, <Jesus Lord>, <24>, <Ok Ok>였다.






Jazz (Chat Baker)

원래도 재즈 장르를 좋아하긴 했는데, 딱히 선호하는 아티스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 영화 <Rainy Day in New York>을 봤는데, OST가 죄다 재즈곡이라 너무 좋았다. 제목 그대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비가 내리는데, 비 내리는 도시 전경과 재즈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냥 원래 존재하고 있던 공기처럼 찰떡이었다. 


특히 극 중 티모시가 피아노를 치면서 직접 노래까지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이 곡이, 이 연출이 너무 좋았다. 왜 노래도 잘 부르지? 배우들은 참 다재다능하다. 어떤 곡일까 궁금해 바로 찾아보니 Chat Baker의 <Everything Happens To Me>였다. 원곡도 너무 좋았지만, 티모시가 부른 버전이 뭔가 풋풋한 느낌이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음반으로 내줬으면 좋겠다. 


OST 수록곡 중 <I Fall In Love Too Easily>도 너무 좋았다. 둘 다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가 참 좋다. 요즘 안 그래도 재즈바에 가서 라이브로 듣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더더욱 부추기는 곡이었다. 








마음의 여섯 얼굴, 김건종

최근에 북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책이다. 사실 표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손이 가지 않았는데, 부제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가 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표지가 참 아쉽다. 책 내용을 전혀 유추할 수가 없음. 마음=레몬인가.


나는 평정심에 집착하는 편이다. 예전에 효리네민박에서 아이유가 이와 똑같은 말을 했는데 정말 공감됐다. 비슷한 맥락이었겠거니 싶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정말 댕댕이처럼 성격이 밝았다. 너무 밝아서 문제였다. 기분이 너무 좋으면 주체가 안 돼서 의도치 않게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물론 어린 나이였기에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의 나는 잘 알고 있지만. 그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실수를 겪으면서 훈련하는 경험을 거쳤어야 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그런 내가 용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실수들을 몇 번 겪다 보니 조금이라도 들뜨거나 우울해지면 또 실수를 저지를까 싶어 그런 감정을 경계하게 됐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 회로를 풀가동하는 식으로 훈련해 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감정 거세 수준 아닌가 싶음) 그러다 보니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대해야 할 문제를 이성적으로 대하고 그로 인해 마찰을 빚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마찰이라기보다는 적절치 않은 대처가 더 맞는 표현 같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매사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처리한다는 건 절대 절대 아님. 빈도 수가 줄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렇듯 나는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거나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것 같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 또한 마찬가지. 그나마 요즘은 MBTI가 생겨서 T성향 뒤에 숨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전엔 소시오패스냐는 말 진짜 많이 들음. 진짜 심각하게 그런가 싶어서 고민도 많이 했었다고..


아무튼 요즘 들어 특히나 이런 내가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지 않다. 슬프다. 화가 난다. 어이가 없다. 불쾌하다. 창피하다.' 등 단순한 감정 정도는 느끼고 자각할 수 있는데, 이보다 좀 더 딥하게 섬세하게 알고 싶다. 알아서 잘 대처하고 다루고 싶어졌다. 근데 막상 혼자 해보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통 모르겠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방법을 물어봐가며 꾸역꾸역 얻은 것들은 '감정에 집중해서 느껴볼 것', '일기처럼 글로 감정이나 생각을 써볼 것', '명상' 등이었다. 바로 시도해 봤지만 이거다! 싶은 방법은 없었다. 마치 탁한 바닷속에서 눈 뜨고 있는 느낌.. 너무 모호한 것.. (나만 이런 거야? 썸바디헲미) 


아무튼 이렇게 삽질하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 곧바로 정독 후, 인상 깊었던 몇몇 부분을 기억해 두고 싶어 적어본다. 조금 더 성장한 내가 나중에 이 글을 본다면 그땐 그랬지 싶었으면 좋겠다.



우울

서구 문명에서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성이 감정보다 강하다고, 감정은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생기는 어떤 부작용 혹은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이성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중략) 오히려 감정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직관을 가장 빠르게 직접 전달해주는 전령이며, 이성적 사유 자체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 29p 
해부학적으로 보아도, 우리 뇌에서 생각이 감정에 물드는 경로는 자연스럽고 풍성하나, 생각이 감정을 바꾸는 경로는 어색하고 빈약하고 부실하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우리가 우울하려고 마음먹어서 우울해지지 않았듯이, 우울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어서 우울해지지 않을 수도 없다. (중략)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감정에 명령할 수 없다.
- 30p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한다. 그래서 자기는 아무 문제없고 강하고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지만 있으면 다 된다고 큰소리치면서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중략) 이들은 정신분석가 오토 컨버그의 말처럼 '우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울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여본 적이 없기에 이들은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이를 느끼기 전에 밖으로, 정확하게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버린다. 그래서 그 감정을 받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어 놓고 자신은 텅 빈 상태를 겨우 유지하면서,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잘난 척한다.
-31p
이러한 관점에서 우울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시스템 간의 밸런스 문제로서,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연쇄반응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회복이 쉽지 않은 붕괴가 일어나기도 하지만(이것이 바로 우울이다), 반면 복잡계의 특성상 아주 작은 변화로도 시스템 전체의 큰 변화가 야기되기도 한다. 암담한 우울 속에서 우리는 작은 '날갯짓'들을 시도할 수 있다. 산책을 나가고, 일기를 쓰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움직임'들.
-43p
"인생은 물론 몰락의 과정이다."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초고에서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중략) 이렇게 살다가 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두 아들도 세상을 떠나고, 그렇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영화 <코코>에서처럼 현세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건 팩트라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면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잠시 나를 덮친다. 다행스럽게도 현실 감각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금방 카톡이 울려서, 밥때가 되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놓을 시디가 생각나서, 나는 그 '현실'에서 빠져나온다. 이렇게 건강한 과대성이 사라질 때, 우리는 진실을 만나고, 그 진실은 너무도 피할 수 없이 우울하다.
-51p



사랑

바디우 말마따나 타자가 없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있고 그중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은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중략) 사랑은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감정이라 우리 안에서 생겨나지만 우리는 이를 어찌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거나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마음먹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 201p
우리가 자라 성인이 되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 뇌의 세 가지 시스템이 모여서 사랑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세 가지는 바로 성욕, 낭만적 끌림, 애착이다.
(중략) 포유류의 삶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담당하는 이 세 시스템이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는 소위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이 세 시스템 각각의 역할과 반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흐름들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다.
- 208p
아직 내 것이 아니기에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그래서 정말 간절하게 그립고 강렬한 욕망. 이러한 깊고 지독한 갈망은 목표 추구와 연관된 도파민 시스템이 담당한다. 시스템이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지향하기 시작하면 지독한 갈망은 다른 욕구들을 집어삼킨다. 마치 중독자가 하루 종일 도박만을 생각하듯, 알코올만을 생각하듯, 집요한 욕구가 일상을(그리고 도덕과 규범을) 지워버린다.
- 219p
질리언 로즈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와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계선 주변에서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중략) 상대의 처분에 내 존재의 의미가 결정될 수 있는 극도로 수동적이고 그만큼 위험한 자리에 머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강해야 한다. 
- 225p



맺음말 중, 정상과 비정상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외향적이다. 숫자에 밝고 영리한 선택을 하면서 성공해가지만, 그늘이 없고 어둠이 없다. 그래서 삶이 없다. 이들은 영리하고, 분위기 파악도 잘한다. 어두운 충동에 굴복하지 않고, 남이 무엇을 원하거나 싫어하는지 잘 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굴복하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충동과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컨트롤한다. 가치관과 행동과 욕구가 잘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하지만 깊게 출렁이며 삶을 채우는 내면이 부재하기에, 그 공허를 채우고자 더 큰 성공을 꿈꾼다. 그리고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도 없다. 지나친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순간. 삶에서 그늘이 사라지면서, 삶 자체의 질감과 두께가 사라지는 지경. 이 지경에 도달한 사람들을 우리는 멀리서 부러워한다.
(중략) 저 얄팍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이 저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떠넘기는지. 그리고 그들도 깊은 공허에 부딪혀 몸서리치는 순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삶이란 참 어렵다. 병리가 깊어지면 고통과 만나는데, 너무 정상적이어도 정상이 아니다.
- 238p



느낀 점을 조금 더 덧대자면, 51p를 본 순간 너무 놀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어렸을 때부터 '막연한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고 너무 아득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고 두려운 그 느낌. 신체를 움직여야만 그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아서 결국 머리 한편에 처박아 둔 그런 생각이었다. 요즘은 워낙 현실에 치여 살아서 자주 찾아오진 않지만.


201p에서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라고 일컫는 것 또한 인상 깊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해봤을까? 수동적인 것이라니! 내 감정은 내 것이기에 능동적인 것이라 생각했는데 충격이다. 새로운 관점임.


책 내용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내용은 238p였다. <영리하고, 옳은 선택을 하고, 어두운 충동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굴복하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모든 충동과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컨트롤한다. 가치관과 욕구가 잘 통합되어 있다>는 내가 되고자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게 지나친 정상이라니. 삶의 그늘이 사라지면서 삶의 질감과 두께가 사라지는 지경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았다. 그리고 정작 내면은 공허하다니. 내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현재 내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았다. 불안과 우울을 없애고 통제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는데, 지나친 정상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 그나마 지금이라도 깨닫고 직면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삶의 질감과 두께가 두꺼운 사람이 되어야지. 적절한 그림자도 챙기고. 그림자도 나라는 걸 유념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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