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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카치카 Jun 02. 2022

8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새 한 달이다.

그리고 이제 또 돌아가기 전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한국에 온 소식을 듣자 주변에서는 매일매일 연락들이 왔다. 특히  5월의 한 달은 가족들과의 모임 아니면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매일의 시간이 빈틈없었고, 내 간도 술로 빈틈없이 매일 채워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이상하게 몇 주쯤 이렇게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몸이 피로한 것도 있지만, 무언가 심드렁한 기분이 마음 한편에 계속 있었다.


34년을 한국에 살다가 스페인에선 고작 8개월을 보내고 왔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스페인에서 온 친구, 스페인 이모가 되어있었다.

이전 같으면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씩 있었을 사람들과의 약속이 매일이 있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한국에 와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으로 ‘온 김에 이것저것 먹고 가야지, 만나고 가야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이곳에서 여행자처럼, 방문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이전처럼 지내다 가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다른 이 상황들이, 방문객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 상황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만남의 끝에 종종 ‘이제 또 언제보겠어’라는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니까.

심지어 나의 가족들 마저,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잖아’라는 말을 하면 짜증을 내기도 했다.


스페인을 가기 전엔 휴가날짜까지, 연인을 만나러 가기까지의 날들을 세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나의 가족이 나를 만날 날을 세고, 나도 스페인으로 갈 날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남은 날을 세고 있다.


내 삶은 이렇게 매일 날짜를 세는 날이 되는 건가 싶었다.

무언가 내 삶이 조각으로 흩어져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날은 흩어져 있는 나의 삶의 조각들이 행운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날 피로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던 오늘은  나의 오피스텔에서 이전과 같이

빛이 가득 들어오는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빵을 먹으며

음악을 틀어놓고 신이 나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 순간 지난 8개월간의 갈증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시 갑자기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여전히 온전한 내가 되어 마음을 둘 곳은 이곳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외국인, 한국에서는 방문객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여전히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받아주고, 나를 들여다보며 나와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은 여전히 이곳이였다. 긴장감이 풀렸다.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삶은 좋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한국에 와서 그래서 ‘어땠어 그곳은?’이라는 말에 좋았지, 너무 좋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하니까.


한국을 떠날 결심을 했던 이 공간에서,

내 세계와 같은 이곳에서 나는 돌아와서 1년 만에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말해준다.그리고 한번 시원하게 울었다.


‘1년 동안 수고했어, 잘했어’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며 여행을 다니고 스트레스 없던 하루를 보냈던 날들 속에서도 어찌 해외살이가 마냥 편하고 좋기만 했을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에 대해 마주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길 외면했지만 늘 가슴 한편 내 마음에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운 일이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기엔 두려워 흐릿한 안개를 걷지 않고 내버려 뒀다. 그리고 그건 여전히 똑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면

‘나도 모르겠어, 내년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라고 대답한다.


8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들여다본 나의 솔직한 마음은 여전히 아직은 한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어딘가에 마음을내려두지 못하고, 아직 그 사이의 나만의 세계인 이 작은 오피스텔에 두고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꽤 오랬동안 표류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아직은 표류하기를 바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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