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카치카 Mar 14. 2022

어릴 적 추억 속 내 부모를 들여다보게 되는 나이




내 어릴 적이 그리 오래 전인 것 같지 않은데 

초등학생 시절 친구네 집 앞에서 ㅇㅇ야~ 놀자라고 소리쳐 불러냈던 기억을 떠올리니 퍽 오래전 일 같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살았던 집은 골목 중에서도 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 있는 빌라였다. 18평 남짓의 집에서 다섯 다족이 옹기종기 살았는데 그때의 그 작았던 거실만큼 내 몸집도 작았기에 그 좁은 거실에서도 나는 마당처럼 뛰고 굴러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이면 우리 빌라, 이웃 빌라의 사람들이 집 앞 담벼락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과일을 나눠먹으며 늦은 밤까지 무더위를 식히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옆 빌라의 한 소녀가 가진 최신 컬러 찰흑 세트로 요리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생각을 떠올리면서 그때는 어려서 몰랐던,  지금에서야 가슴을 건드리게 다가오는 일들이  함께 떠올랐다. 나의 아빠는 동대문의 의류부자재 회사에서 일을 하셨는데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금 커다란 마대자루에서 검정 그물 같은 끈들을 꺼내 일정 길이로 재단하는 일을 엄마와 했었다.  퇴근 후 회사에서 받아서 하는 부업이었던 셈이다. 어릴 적 내게는 이 풍경 익숙했기에 특별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끈들이 뜨거운 전기 날에 잘려나갈 때의 냄새가 기억에 난다. 부모님은 집안에 탁한 연기와 냄새가 가득 찰까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두고 일을 하곤 하셨다.


오늘 밤, 서른다섯의 나는 침대에 누워 타샤 튜더의 책을 읽으며 한껏 마음의 여유를 다시금 되찾으려는데 왜인지 문득 어릴 적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퇴근을 하고도 집에 와서 부업을 했던 나의 부모님의 하루들. 밤 10시에 모든 게 끝나면 눈을 붙이고 다시금 출근을 반복했던 그들의 고단했던 날들.

그때 내 부모의 나이는 고작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지만 아이 셋의 부모였었다.


반면 나는 그들이 무거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나이에 보통은 6시 정각에 퇴근을 하며 취미와 여가, 배움과 여행을 누렸음에도 힘들고 지친다며 회사를 떠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늘 되새기며  퇴사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거지?라는 혼란이 들기도 하고 나태인지 여유인지 모를 그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나의 현재와 나의 부모님의 인생을 비교하니 갑자기 모를 죄책감 같은 기분 들어 그 늦은 밤 침대에 누워 구직 사이트 어플을 켰다. 동시에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나약한 것은 아닐지, 혹은 지금 이 모든 것들이 투 정인건 아닌지 싶은 의문도 들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우연히 침대에서 책을 읽다 떠올린 내 어릴 적 추억 속에서 내 부모의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곤 마음이 울컥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길었던 그날의 밤을 보내고 엄마와 통화를 하며 그날 밤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의 시대와 너희의 시대는 너무 달라. 우리가 산 방식을 너희들에게 맞다고 말할 수 없지. 

그리고 우리는 내 자식들이 우리와 같은 삶을 살기 또한 원하지 않아.그러니 네가 지금 그렇게 여유를 누리는 것,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어가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곳에서 너만 행복하다면 돼"


엄마의 말에 나의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열심히 하루를 살아온 나의 부모는 나의 자식들은 덜 힘들게 살기를 바라며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비해 수월한 삶을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그때의 힘든 삶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엄마는 늘 영상통화를 할 때면 며칠 전에도 물었던 말이지만 매번 묻는다.



"거기서의 생활은 어떠니? 힘들지 않아? 그래 네가 잘 맞는다면 다행이다. 네가 행복하면 돼".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살이의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