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을 해보고 싶은 소망은 언제부턴가 나의 상사병 같은 지병이었다. 처음 해외에서 생활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에 대한 열정에서 넘쳤을 때였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써 살아가는 게 내 맘 같지 않았다. 숱한 야근이 기본값처럼 설정되어 있었고 그마저 야근에 대한 보람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날이 많았다. 당연히 보상은 없었다.
매일 피로에 지치고 한두 군데씩 망가져가는 몸만 남을 뿐이었다.
클라이언트 혹은 디자인 결정권자의 ‘한번 보고 결정할게요'라는 말 뒤에 수 많은 디자이너들이 대안을 만들며 날을 샜고, 그 노력들은 몇 분, 몇 초 만에 버려지기도 했다. 대기업에서 관리자로써 일을 했을 때도 야근은 줄었지만 조직 내 갑부서 혹은 임원들의 한마디에 몇 달간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은 내가 일했던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디자인 회사들도 비슷한 생리로 돌아가고 있었다.한국에서의 디자인 가치가 상승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로써의 대우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디자이너로써의 삶에 불만이 쌓여가면서 해외의 디자이너들의 작업환경이 궁금해졌다. 디자인 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은 디자이너들이 다른 대우를 받을까? 거기도 디자인을 무슨 사전 무료 서비스처럼 요구할까? 여기처럼 무임금 살인 야근을 시킬까? 이해관계가 다른 부서들 사이에 디자인에 대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이런 궁금증들은 나를 해외 경험에 대한, 구체적으로는 디자인 산업이 발달한 영국에서의 디자이너가 되기를 소망하게 하였다.
그렇게 나는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일 년 반 정도 준비를 했다. 퇴근을 하면 시간을 쪼개 틈틈이 영어공부를 했다. 다만 그 당시 내 나이에 지원할 기회는 단 두 번 뿐이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기회들은 복권 당첨운처럼 모두 낙첨으로 떨어졌다. 두 번째 기회까지 떨어졌을 땐 상실감이 컸다. 2:1쯤의 경쟁률에서 나는 선택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노력보단 운이 필요한 모든 일은 역시나 나에게 주워지지 않는다는 걸 한번 더 확인했다.
이미 마음은 회사로부터 떠나 있었고 쌓여있는 불만을 안고 회사를 더 다닐 용기도 없었다. 영국을 가지 못하게 됐을 때의 대안을 미리 세워두긴 했었는데 하나는 영국이 아닌 워홀이 가능한 유럽권 나라로 가는 것과 다른 하나는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독립할 것이었다.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한 다른 유럽권은 체류 기간이 대부분 일 년이었기 때문에 단기의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영국이 아닌 곳은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였다.
'그냥 퇴사하고 여행이라도 갈까? 혹시 알아 내 앞에 어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지. 근데 그렇다고 다시 돌아왔을 때 뭐가 달라져있을까?'이런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꼬리를 물어 매일 밤잠을 설쳤다. 그러던 와중 회사에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승진과 함께 연봉이 인상되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의 상황들과 감정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쉽게 무엇하나 선택하지 못하는 여러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퇴근 후 만난 선화가 내 고민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이거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를 위로하려 한 말은 아니였다. 선화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건조하기까지 한 말투로 자기의 생각을 툭 내뱉었을 뿐이었다.
아..? 선화가 말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몰랐다.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연봉을 선택하면 해외로 나가려는 꿈은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고,해외를 나가면 연봉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정말 선화의 말이 맞았다. 두게다 이루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선화와 이야기를 한 그날 밤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됐다.
영국을 못 가는 대안으로 세워뒀던 모든 것을 이루기.
그 날 이후 다시금 마음을 잡고 회사를 다녔고 나아진 경제력으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은행의 도움만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얻어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일을 멈추고 스페인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해가고 있다. 둘 다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선화의 말이 그 당시에는 좀 더 멀리 있을 줄 알았는데 영국행을 실패하고 작성한 리스트의 목표를 이루는데는 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 보자 라는 마음으로 다시 내디뎠던 걸음은 내 목표가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때론 불가능해 보인 일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마을을 다시 부여잡고 다니던 회사에서는 영국 워홀을 준비하며 했던 영어공부 덕에 해외 프로젝트를 도맡게 되어 1년간 해외를 오가며 일을 했다. 영국은 아니었지만 그 경험 또한 내가 원했던 새로운 환경에서의 디자이너로써의 새롭고 값진 배움을 얻었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한 후의 시간들은 미처 몰랐던 나의 많은 모습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내면적으로 단단해졌으며 스스로를 믿게 되었다. 그 덕에 34살이 되어서도 나는 퇴사라는 선택을 과감없이 하고 스페인으로 떠나왔다.
앞 선 경험들은 나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실패는 바꿔 말하면 새로운 기회이다. 4년 전 영국에 갔다면 또 다른 삶이 펼쳐졌겠지만, 영국을 가지 못해 펼쳐진 이 길에 위에서 지금 나는 후회가 없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건 새로운 길을 걸어갈 기회니까. 애초에 실패라는 말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 뿐일지도 모른다.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된 지 8개월째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 중 하나였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흐를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다. 잠시 멈춰 서서 내 앞의 놓인 수많은 갈래의 길들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고민 끝에 선택할 그 길은 또다시 후회하지 않은 길이 될 것임을. 그렇기에 즐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이 시간을 즐기고 나를 들여다보며 계속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