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교사의 외도
하지만 2급 정교사 취득이 가능한 교육대학원이 생각보다 매우 드물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나의 모교를 포함해 고작 2군데였다. 그래도 가깝고 일주일에 두 번만 수업 듣거나 주말 하루만 가면 되니 육아와 일, 학업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희망회로를 돌리며 서류를 차곡차곡 준비하며 면접장에 들어섰다.
첫 번째 학교에서의 면접날이었다. 면접대기실에서는 지원자가 역대급이라며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면접도 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교수님 학과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3명이서 동시에 면접을 보았다. 한 명은 나같이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원자인데 가정사의 아픔을 딛고 진정으로 배우고자 하는 분, 다른 한 명은 갓 졸업한 학과에서 커트라인에 걸려 아깝게 교직이수를 하지 못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과성적이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직장이랑 학교랑 거리가 있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다행히 집이랑 학교랑 가깝고 직장은 가까운 데로 옮기거나 그만둘 생각도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논문 주제 하나만 말씀해 보세요."
"... 유아 놀이 중심의.. 프로젝트 학습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뻔한 키워드의 두리뭉실한 대답)"
결과는 대기 5번.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 이후 대기는 1명도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두 번째는 나의 모교. 나름 사범대가 먹여 살리는 학교라 역시나 교육대학원의 경쟁률도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졸업한 주요 과목 학과보다 상담, 체육, 유아 등 임용 티오가 많은 과의 인기가 치솟았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남성분도 간간이 보이고 딱 봐도 유아교육과 학생이거나 야무딱진 사회생활을 하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도 보였다. 이건 뭐. 임용 2차 면접보다 더 치열하게 두꺼운 책을 너도나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두리뭉실하게 요약된 나의 히스토리와 교육관, 포부 등이 적힌 종이를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이번에도 3명이 동시에 면접장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교수님이 세분이서 아주 진지하게 옥석을 가려내고야 말겠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질문도 뽑기 형식이었다. 한 명은 어린이집 근무 10년 차 부장교사. 아주 딱 부러진 말과 경력으로 대답도 척척. 주눅이 들고야 말았다. 다른 한 명은 조금 더듬거렸지만 이번이 세 번째 도전임을 솔직히 밝히고 간절함을 내비쳤다.
드디어 내 차례, 뽑은 질문은 두 가지였다. 개인 히스토리 따윈 없었다. 학과 내용에 충실한 질문이었다.
"유아누리교육과정에 대해 말해보시오"
"아. 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앞 두 사람이 말했던 것을 토대로 짜깁기에 급조한 날림 대답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말해보시오."
"(허걱, 몬테소리라면 모를까 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네.. 사실은 제가,,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저를 뽑아만 주신다면.. 성실히 공부하겠습니다."
이게 아닌데..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저는 우리 대학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사범대학생이에요. 기본이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에는 꼭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학교를 빛내 볼게요.)
그랬다. 불합격이었다. 모교에서도 탈락이라니. 대학원 들어가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었나. 자만했다. 이쪽 분야에 경력이 많지도 그렇다고 학점 높은 갓 졸업한 학부생도 아닐뿐더러 절실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 못다 한 꿈을 완성하려 이래저래 찾다가 좋은 수를 찾은 마냥 자만심과 안일함이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사실 첫 학교에서 대기 5번도 나에게 과분한 서열이었다. 학교마다 면접이 다르거늘 첫 학교에서 비교적 수월했던 면접을 예상하고 또 2차 면접장에 들어가다니.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부실한 준비로 면접장에 들어갔는지. 다시 그분들을 보기 민망할 정도로 재지원할 생각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유아교육대학원 진학 실패는 나에게 쓴맛과 동시에 겸손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