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살갑게 딸아 딸아 불러주는 아빠를 상상해 본다. 아마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지 싶다. 더 이상은 상상이 되지 않아 에잇 하고 다시 우리 아빠를 떠올려본다.
그도 그럴 것이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아빠와 성격이 똑같은 할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성장해 왔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바이다. 살갑지 않은 형누나들 사이에서 얼마나 치였겠으며 학창 시절 보리밥을 먹지 못해 수돗물로 점심을 겨우 때워 마른 몸매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 딸이 반에서 1등을 해도 한 번도 겉으로 시원하게 칭찬해주지 않았던 아버지. 하지만 나의 고집스러운 요구는 항상 들어주었던 아버지. 한창 기혼자였을 무르익을 나이에 외도도 해본 누군가에겐 매력적이었을 아버지. 엄마의 순종적이기만 한 내조를 몇십 년간 견뎌낸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동생이 그렇게 된 이후로 늘 믿는 대상을 달리 바꿔왔다. 정부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종교도 있었었고 흔히들 부르는 사이비도 있었으며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있었다. 최면술도 시도해 보았고 정말 귀신이 씐 사람과 정신질환자를 구별해 주는 대전의 어느 퇴마사에게도 찾아간 적이 있다. 아빠가 듣고 싶은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이제는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현재 아버지는 마지막 믿음의 종착역을 찾은 듯 보인다. 그 종교. 아니 사이비라고 부르겠다.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할 때마다 발끈하고 누가 봐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실 알게 될까 봐 두렵다.)
자식으로서 멈추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의 담판을 지으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를 멈추기 위해, 멈출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비장하게 마주 앉았다. 아버지의 눈은 젊은 날의 그 어떤 눈빛보다 강렬하게 삐뚤어져 있었으며 자신의 믿음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소심함도 내보였다. 나로서는 의외였다. 그는 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 자신이 온마음으로 믿고 있는 그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함을 왜 의식하는 걸까. 여기서 멈출 수 있게 할 희망의 실낱을 보게 될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더 강하게 밀어붙이자 몇 마디의 실랑이를 주고받은 끝에 그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옆에 있던 뜨거운 커피포트를 나에게 집어던지려는 시늉만 했으니 폭발은 아닌 것이다. 그래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성질대로 되지 않아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가 행사한 지난날의 폭력을 또렷이 기억한다. 긴 시간이 흘렀다. 나의 대사는 없었다. 그저 근원을 모르는 자신감으로 더 강한 눈빛으로 대적했고 엄마는 모성애를 발휘해 나를 온몸으로 막아내줄 태세를 취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전쟁의 서막이 울렸다.
이후 아버지와의 냉전이 몇 달간 지속되었고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