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여담(飮食餘談) 1 - 샌드위치의 꿈
샌드위치는 봄과 닮았다. 봄 소풍 도시락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는 유난히 춥다고 되뇌던 겨울과 또 매년 사상 최고 기온을 바꿔나가는 여름 사이에 낀 신세 탓이다. 하여 요사이 봄은 샌드위치와 닮았다.
하지만 겨울 옷을 넣기 무섭게 반팔 옷을 꺼내 입게 되는 짧은 봄 날씨에도 꽃은 피듯, 샌드위치도 빵 사이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다른 음식이 된다. 오지 않을 것만 같다가 그저 스쳐 지나가버리는 봄이 있는가 하면 개나리, 벚꽃, 민들레, 유채꽃, 산철쭉, 목련 등 화련한 봄꽃의 기억으로 풍성하게 채워지는 때도 있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샌드위치란 음식의 정체성은 무엇을 끼워 먹느냐에 달린 셈이다.
18세기 영국 귀족 샌드위치 백작이 빵 사이에 끼워 먹은 것은 로스트비프였다고 한다. 영국의 대표 요리 중 하나다. 노름을 하다 샌드위치를 만든 장본인으로 지금도 입에 오르곤 하는 그의 본명은 존 몬테규. 그가 살던 곳의 지명이 영국 켄트 주의 샌드위치였고 샌드위치 백작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의 작위였다. 식사 시간을 놓칠 정도로 도박을 좋아했던 그는 급기야 배는 고파도 게임은 중단하기 싫어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었던 노름꾼으로 음식사(史)에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하지만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왕의 측근으로 권력을 남용하고 뇌물을 받았으며 공직을 팔기도 했다고 하니 그리 억울한 처사는 아닌듯도 하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이었던 그의 비리로 영국 해군 전력이 약해져 미국의 독립이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가 베어 물었을 최초의 샌드위치의 맛은 쉬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긴 시간 노름에 지친 주인의 건강을 걱정한 충직한 하인들은 성심껏 채소도 넣었을 것이고, 잘 익힌 로스트비프에서 나온 육즙이 빵에 스며들었을 것이며, 촉촉해진 빵을 입에 넣으면 고소한 고기의 맛이 왈칵 쏟아지면서 이어 갖은 채소의 상큼함이 개운하게 입안을 정리해주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따름이다. 샌드위치 백작은 그 한 입에 더 힘을 내 노름에 매진했겠지.
이렇게 샌드위치는 비록 도박판에서 세상에 처음 나왔지만, 지금은 만드는 사람이 빼곡히 정성을 넣으면 최고급 요리 못지않다. 결혼 전 아내는 집에서 하는 샌드위치 가게 일을 도왔는데 그때 먹은 샌드위치가 그랬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었고, 더 보탠 재료만큼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빵 사이에 끼워졌었다. 마음을 끼운 샌드위치라면 그 안을 어떤 재료가 채우고 있든지, 설혹 아무 것도 없어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영화 '빵과 사랑과 꿈'에서 마을 경찰서장 역의 빅토리오 데 시카는 길에서 빵을 먹고 있는 가난한 노인에게 묻는다. "빵 사이에 무엇을 끼워 먹고 있나요?" 노인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빵을 보여주며 "꿈을 끼워 먹지요"라고 답한다. 꿈이 사이에 든 샌드위치.
2018년 4월 봄, 북한에 가 공연 '봄이 온다'를 무대에 올렸던 남측 예술단이 탄 평양행 비행기에서 샌드위치가 제공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영화를 떠올렸다. 조용필이, 이선희가, 그리고 레드벨벳이 분단된 조국을 가로지르며 먹었던 샌드위치에는 뭐가 끼워져 있었을까. 그것은 봄이었을까,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