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여담(飮食餘談) 2 - 봄날의 도다리쑥국
백석은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사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연모하는 대상을 찾아 먼 통영까지 왔지만 엇갈린 운명은 그들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통영에 사는 여인을 사랑했기에 그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읊었던 시인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인 백석이 신문사에서 일하던 1930년대 얘기다. 그 안타까움이 시심을 부추겼을까. 백석이 우두커니 서 있던 충렬사 앞 그 자리에는 지금 그의 시비가 서 있다.
이 시비에 새겨진 시는 '통영2'. 채 해소되지 않은 그리움을 안고 당시 백석이 향한 곳이 어디였는지 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조코 / 패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조코"라고 했다. 기왕에 통영까지 왔는데 싱싱한 해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복, 해삼, 도미, 가자미, 파래, 꼴뚜기(호래기). 죄다 바다 내음 흠뻑 느끼게 하는 안주들이다. 젊은 날의 백석도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이 안주들에 한 잔 술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석은 '통영-남행시초2'라고 제목을 붙인 시에는 "통영장 낫대들었다 / 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함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 화륜선 만져보러 선창에 갔다"고 썼다. 장에서 술 한 병 사서 바다가 보이는 부두로 간 시인의 걸음걸음은 여느 취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통영항에 내리쬐는 봄 햇살을 느끼며 술 한 잔 기울였을 백석의 마음 역시 겨우내 봄을 기다렸던 여느 상춘객들의 들뜬 마음처럼 조금은 누그러졌을 게다.
지금도 통영에 가면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 백석의 시어가 된 전복, 해삼, 도미, 가자미가 즐비하다. 그 신선한 맛에 한 잔 곁들이다 보면 어느새 봄기운과 통영의 맛에 흠뻑 취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 없다. 봄에는 통영만의 해장 음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2'에서 백석이 '가재미의 생선이 조코'라고 썼던 그 가자미의 맛이 오늘날 봄이 되면 이곳을 붐비게 하는 일미다. 바로 봄 도다리다. 우리가 봄에 도다리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는 '문치가자미'다. 엄밀히 말하면 도다리라는 생선은 따로 있다. 하지만 최근 어획량이 적어 문치가자미가 도다리로 통용되고 있다.
이 문치가자미를 된장과 함께 끓이면서 봄에 돋아나는 해쑥의 향을 더한 것이 통영의 음식 도다리쑥국이다. 문치가자미가 살이 오르는 때는 5월 이후지만 3~4월에 많이 잡힌다. 때문에 이때는 탕으로 먹기 적당하다. 여기에 봄이 제철인 해쑥을 넣어 맛을 더했으니 도다리쑥국을 먹기는 이맘때가 딱 좋다. 봄이 제철인 것은 도다리라기보다 도다리쑥국인 셈이다.
도다리 살은 담백한 맛으로 혀를 휘감고 해쑥의 향은 후각을 자극한다. 다른 재료를 더하지 않아도 잘 우러난 국물 역시 겨우내 닫혀 있는 가슴을 뚫는다. 이 한 그릇을 먹는 것으로 이제 비로소 봄이 왔다고 여기게 되는 이유다. 연신 후루룩거리며 먹다 보면 백석이라도 된 것처럼 절로 시흥이 생긴다. 지난겨울 그토록 춥더니 이제 봄이구나. 봄날 다 가기 전에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그곳, 통영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