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그런 날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 눈이 자주 마주치는 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나는 본래 주말에도 일하고 월요일마다 쉬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대체공휴일로 쉬는 날이라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나는 한 달 전에 한 라식수술에 대한 정기검진 차 신사역에 갔다가, 영등포 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을 조금 하고는 집에 왔다. 그 몇 시간 사이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몇 명 즈음될까? 대략 스무 명 즈음될까.
나는 일부러 누군가를 쳐다보는 편이 아닌데, 시력이 좋아진 뒤로는 누군가 나를 보면 자연스레 같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늘은 안과로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서 나를 유심히 보는 여자가 있었고, 신사역에서 신도림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탔을 때도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으며, 영등포의 타임스퀘어 안을 걸어 다닐 때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고, 교보문고를 빠져나오면서도 폴 바셋에 앉아 있던 남자와 몇 초간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분명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눈이 나빠서 알아채지 못하고 갈 길을 가기에 바빴을 텐데, 눈이 좋아지고 난 뒤로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그러니깐 나를)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왜 놀라냐면, 나는 누군가를 일부러 쳐다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성향 때문일까?)
이러한 모르는 타인들과의 눈 맞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눈을 마주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아주 가끔은 그렇게 눈을 마주치다 보면 서로 모르는 사이에 아는 사이가 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사람은 없다니. 사람들이 저렇게도 많은데. 오늘은 눈을 하도 마주친 까닭에 그런 생각이 곧잘 들곤 했던 것 같다. 계절이 기울고 있다. 집안 깊숙이 일직선으로 들어오던 해의 길이가 점차 짧아질 것이다. 그리하면 고개를 기울여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계절이 성큼 다가와 있겠지. 그 계절 안에는 의미 있는 눈 맞춤이 가능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