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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Jun 06. 2023

천냥 빚을 갚는 말, 천냥 빚을 지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 죽이는 말

많은 사람들은 내게 아들 셋 키운 사람 같지 않다고 한다. 왜 그렇게 느끼냐고 물으니 말이 세지 않아 그렇단다.(아들 셋 키운다고 말이 드세지나.. 찬성하지 않는다. 아들 키운 엄마들은 화통해지고 시원시원한 스타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나는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 고운 말을 쓰려하고, 내 말로 남이 상처받는 일은 없게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분위기에 적절치 않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언행에 늘 조심하는 편이다. '훗날 후회할 말은 일절 하지 말자'가 생활신조 중 하나다.


말은 무섭다. 말로 베인 상처는 칼로 베인 상처보다 깊을 수 있을 수 있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말실수가 큰 낭패를 불러오기도 한다.


내가 생각 없이 뱉은 말로 인해 생애 처음  낭패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던 때를 잊지 못한다.

내 나이 11살 때,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공무원 아버지덕에 전학을 자주 다닌 나는, 4학년  전에 살던 곳들보다 조금 큰 도시로 이사를 나온 지 몇 달 지나, 맘이 통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A)는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살았고, 꽤 친해진 어느 날인가 A의 초대로 집에 놀러 갔었다.


그 당시 유행어 중 하나가 "생긴 대로 노네" 였는데, 나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 유행어를 마침 친구집에 있던 A오빠를 향해 얘기했던 것이다. 못생겼다거나 웃기게 생겼다거나(굳이 생긴 걸 얘기하자면 잘생긴 오빠였다) 그런 의도를 전혀 담고 있지 않으면서, 생각 없이 딴엔 어떤 상황에 맞는다고 유머로서 유행어를 뱉었던 거였다.


그날 놀고 온 다음부터 A는 며칠 고민스러운 얼굴을 보이더니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은 엄마가, 우리 오빠에게 그런 말 한 너랑 놀지 말랬어. 그런데 나는 너랑 계속 친구하고 싶어서, 네가 이상한 애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고(공부 잘한다고 하면 많은 게 용서되던 시절) 성격도 좋은 애라고, 나쁜 친구 아니라고 말했어."


나는 그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랑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다니..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 왈가닥이긴 해도(초등시절만 왈가닥이었다고 생각한다^^), 행동 바르기로 학교나 동네에서 유명하면 유명했지, 그런 소리를 들을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당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좀 높았던 거 같다)

충격을 받는 나는 A에게 유행어를 생각 없이 따라 한 것임을  A엄마에게 꼭 전해주길 부탁했고, 그 후로 그 집에 다시 놀러 갈 때부터는 더욱 언행에 조심했었다.


그 후로 내가 전혀 말실수를 안 하며 살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 분위기 띄우자고 유행어를 함부로 뱉을 것도 아니며 , 상황에 맞게 말을 가려해야 한다는 것을 늘 상기하게 . 아들들을 키우면서도 나의 열한 살  실제사례를 얘기하면서 말조심을 할 것을 당부했다. 말로 천냥빚도 갚지만 천냥빚도 지게 될 수 있는 법이라고.




들은 말로 크게 상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사려 깊지 않게 뱉은 말로 인해 생긴 미움으로 오래 힘들었다.

2012년 여름, 그해 여름에 남동생은 암을 인지하고 한 달 반 만에 세상을 떴다. 친정부모님을 비롯, 네 남매가 결혼해서도 모두 같은 도시에 살며 정답게 지냈었기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생의 장례식날, 올케의 친구들이 왔다. 한상에 자기들끼리 마주한 올케친구들은 올케에게 남동생 사망보험은 들어있는지 물었다.. 안 들었으면 좋을 말을 가족 중 한 명이 듣게 되었고 나는 전해 듣게 었다. 


그래.. 궁금할 수도 있겠지.. 그런 궁금증이 마음에서 올라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궁금하다고 다 입밖에 내는가, 궁금한 건 그 자리에서 다 해결해 내고야 말아야 하는가. 11살 애도 아니고 어른이지 않는가.


장례식장에 남동생 가족이 있고, 겨우 마흔 넘은 아들을, 동생을 잃고 넋이 나가 있는 가족들이 들을 수도 있는데, 아무리 궁금해도 꺼낼 말, 안 꺼낼 말이 있고, 상황을 분별할 수 있지 않은가. 대체 애도를 할 마음이 없으면 장례식장을 오질 말 던가. 그 얕음에, 배려 없음에, 사려 깊지 못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올케가 남동생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에서 싹튼 원망이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올케와 친구들의 몇몇 행태로 촉발되어 미움으로 커졌고 한동안 힘들었다(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 성찰 후 풀었고, 지금은 올케와도 계속 연락하며 지낸다. 굳이 부연하자면, 올케와 남동생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아파트며 동생보험금 전액을 올케가 받는데 친정식구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말실수로 큰 교훈을 얻었고  말로 베임을 당해본 후 말의 위력이 큰 것을 절감했기에, 그 후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이 오해받지 않을 상황'이기만 하면 되도록 누구에게든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걸 믿으며,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크게 다친다는 걸 살아온 경험으로 안다.

온화한 표정과 말투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사람을 대해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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