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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11. 2023

제32화 우리네 산과 닮은 발카르세 계곡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오 세브레이로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6일 차(26일 차)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29.74km / 9시간 11분

- 누적 : 659.7km / 799km

#숙소 : Albergue Casa Compelo 2인실, 55유로

-싱글 침대 2개와 욕실이 별도로 있다.


스페인 하숙 촬영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평화로운 작은 도시다. 도시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도시가 마치 숲 속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찍부터 프랑스 순례자들이 정착해 ’프랑스인 마을‘이라는 의미의 비야프랑카와 원래 이 지역의 이름인 비에르소가 합쳐져 현재의 도시 이름이 되었다.  


비야프랑카 성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왼쪽에 산티아고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1186년 아스토르가의 주교가 교황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건축하였다고 하며, 성당의 북쪽 전면에 <자비의 문, Puerta del perdon>이 유명하다. 병이 나서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마치지 못한 순례자가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를 마친 자들과 같이 이 세상의 죄를 면제받은 전대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성당이 운영되지 않고 폐쇄되었다.


해가 지기 전에 잠시 산책을 나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곳인  '산 니콜라스 엘 레알(San Nicolás El Real)'이라는 알베르게를 가 본다. 이곳은 수도원을 알베르게로 사용하는 곳인데,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출연한 삼시세끼 유럽 버전인 <스페인 하숙>을 촬영하던 곳이다. <스페인 하숙>은 나영석, 장은정 PD가 제작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2019년 3월 15일부터 5월 24일까지 오후 9시 10분에 방영되었다. 유럽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며 식사를 대접하는 콘셉트이다.

건물 외관은 고풍스럽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좌우로 긴 회랑이 있고, 중정은 카페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다. 프로그램 방영 후, 많은 한국인들이 찾았다고 하는 데 사용후기는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드 버거가 있구나

오늘 코스는 프랑스길의 첫 번째인 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코스 다음으로 힘든 코스라고 한다. 배낭 하나는 동키로 보내고 숙소 뒷문을 나와 비야프랑카를 빠져나간다.


07:05. 출발이 좀 늦었다. 숙소 직원도 친절하고, 삼겹살과 포도주로 저녁도 잘 차려 먹고, 6인실이지만 2인실 공간처럼 된 곳을 배정받아 좋았는데, 베드 버거(Bed Bug)가 문제였다. 새벽 1시쯤 잠에서 깼다. 온몸이 가려워 잠을 설쳤다. 불을 켜고 한 마리 잡고,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면서 더 큰 놈을 한 마리. 이곳에 사는 놈들인지 다른 곳에서부터 딸려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베드 버거의 실물을 보고야 말았다.

아침 기온은 어제와 같은 14도로 표시되는데도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가 차다. 겨울날씨인가 싶을 정도다. 배가 고프면 더 추운 법이니 마을을 빠져나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간다. 날씨가 쌀쌀하고 몸도 가벼운 아침이라 발걸음이 빠르다. 5km를 걷는데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차도와 분리된 인도를 따라 걷는 길이라 어두워도 걷기에 좋다.


우리네 산과 닮은 산

4.5km 가서는 차도를 건너 우측 페레에(Pereje)에 마을로 들어선다. 길 양쪽으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왼쪽 아래에는 개울물 소리가 맑다. 어느 집 수탉이 목청을 돋우어 긴 소리를 뽑아낸다. 마을에는 폐가들이 많고 사람 흔적이 있는 집이 드물다. 여기뿐만 아니라 순례길 곳곳의 작은 마을의 상황이 비슷하다. 노인들만 남고 젊은이들은 도심으로 다 빠져나간 건지,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줄어서인지… 인구폭발을 걱정하는 때가 언제인지 싶다.


마을 끝에서 다시 차도를 건너간다. 길을 따라 쭉 와도 만나는 길인데, 마을을 둘러 돌아온다. 7.8km에 트라바델로(Trabadelo) 마을, 여기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입구에 큰 카페도 있어 순례자들이 아침 식사 겸 휴식을 취한다. 배낭에서 과일을 꺼내 한 두 개 먹고 다시 출발. 마을을 나가서는 다시 차도를 건너고 도로와 분리된 길을 따라 5km 가면 여러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3성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 휴게소가 나온다.

바로 앞쪽이 라 포르텔라(La Portela)다. 자그마한 순례자 석상이 사람들을 반긴다. 라 포르텔라를 지나 길 오른쪽 알베르게 바에서 파는 추로스가 맛있다고 해서 들렀더니 오전 9시 넘은 시각인데도 역시나 아직 영업 전이다.


길 왼쪽 아래로 개울물이 빠르게 흐르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산 쪽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네 산에 있는 산사로 가는 고즈넉한 길과 닮았다. 이 길이 감옥계곡이라는 명칭을 가진 험하고 좁은 발카르세(Valcrce) 강의 계곡을 지나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그렇지가 않다. 카페와 슈퍼마케도 여럿 있는 베가 데 빌카르세(Vega de Valcarce), 길가 바에서 파스타로 점심을 먹은 루이텔란(Ruitelan), 소들이 한가히 풀을 뜯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에레리아스(Herrerias)를 걸으면서 우리의 농촌 풍경을 떠 올리게 된다.


오르고 또 오르면 오 세브레이로

에리리아스부터는 오르막이다. 여기서부터 7km 산행을 해야 한다. 순례객 중 많은 이들이 오르막 코스 전인 빌카르세나 에레리아스에서 쉬고 다음날 산행하기도 한다. 에레리아스에서 말이 있는 걸 보았는데, 이 말은 순례객을 태우고 오 세브레이로까지 오른다고 하다(요금은 50유로). 이집트 시나이에서 모세산(시나이산)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성지순례자들이 낙타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라 화바(La Faba) 안내판이 보이는 초입 길은 너무 이쁘다. 황톳길에 숲길이다. 아스팔트 오르막을 한 시간을 걸어온 터라 이 길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파른 산행 코스가 기다린다. 그늘진 숲길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를 몇 번하고 난 뒤 마을에 도착, 길가 샘물이 너무 차고 시원하다. 여기 표지석에 산티아고까지 165km라고 적혀 있다. 레온에서 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정확히 같은 지점이다.

다시 산길, 한 시간을 더 올라가면 오 세브레이로 가기 전의 마지막 마을, 라구나(La laguan)다. 카페를 겸한 알베르게에서 맥주 한 잔. 이 산길에 택시가 두 대나 지나간다. 타고 싶은 유혹을 겨우 뿌리치고 마지막 힘을 낸다. 중간에 갈리시아(Galicia) 주 경계 표지석이 있다. 길의 좌우 모두가 산들과 계곡, 푸른 하늘 아래 숲과 목초지, 집 몇 채가 모인 작은 마을들. 땀 흘리며 걸어온 보람이 있다.


드디어 1330m 고지의 오 세브레이로다. 오늘 밤에는 편한 침대에서 코도 마음껏 골며 늦은 아침까지 푹 자야겠다.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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