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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an 12. 2024

꼰대 생각 41: 선무당의 배움

드럼(Drum)을 배우러 다닌다. 배우러 다닌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이제 겨우 한 번 갔을 뿐이고, 내일이 두 번째이니 배우기 시작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쇼핑몰의 문화센터 강좌인데 일주일 한 번, 1시간씩 7주간 하는 과정이다. 지난주에 갔을 때 정박자 두 가지가 적혀 있는 악보를 받고 연습을 했다. 오른손+발/오른손/오른손+왼손/오른손 차례로 치는 아주 간단한 악보인데 쉽지가 않다. 생각과는 다르게 손발이 따로 놀고, 오른손과 왼손도 맘대로다. 집에 와서 매일 조금씩 소파를 두드리며 연습을 했더니 조금 나아진 느낌이다. 내일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할 건데 마음이 조마조마한다.


드럼을 진작 시작하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스럽다. 학교 근무할 때 배웠으면 중고 드럼 세트를 하나 사서 창고나 체육관에 두고 자주 연습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파트에 살면서 드럼 소리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연습하기가 마땅찮다. 더 일찍,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시작할 수도 있었다. 연합고사를 치고 마땅히 갈 대학을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 교육대학에 다니던 외사촌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다른 사람도 함께였다. 교육대학을 오라고 거들면서 하는 말이 대학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면서 입학하면 가르쳐 준다고 했다. 솔깃했다. 결국 교육대학에 입학하고 그룹사운드에도 들어갔지만 드럼을 먼저 시작한 동기가 있어 드럼은 쳐보지도 못하고 노래만 몇 번 부르다가 실력이 모자람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일본어 공부도 하는 중이다. 일본어 첫걸음(히라가나 가타카나) 쓰기 노트를 한 권 사고, 유튜브를 통해서 배운다. 히라가나는 이제 제법 익혀서 읽기까지는 할 수 있다. 히라가나 겨우 익히고 가타카나까지 하려니 뇌용량이 딸린다. 유튜브 강사 말이, 다 외우려면 힘드니 그냥 가타카나가 나올 때 익히면 된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매일 한 시간 정도 동영상을 보고, 쓰기도 해 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어는 개수가 많기는 하지만 복잡하지 않다. 한자 문화권이라 한자도 낯설지 않아서 좋다.


이집트에서 4년을 살면서 아랍어 글자는 예술 작품으로만 생각했고, 태국에 3년을 살면서도 그 고불고불 난해한 글자는 능력 밖이라 여겼다. 업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 몇 개와 간단한 회화로 버텼다. 배움이 어설펐으니 두 나라 말이 마구 섞여 별나라 말이 나올 때가 허다하다. 그 많은 시간과 그 좋은 환경에서 왜 열심히 배우고 익히지 않았을까 후회스럽다.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손발이 제대로 호응을 하고, 열 개를 배우면 한두 개는 기억을 하던 시절에 왜 배움을 게을리했을까? 후회는 속절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 생각하고, 느리지만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해 보는 수밖에.


드럼 배우러 간 첫날, 얼마나 배웠는지 모르지만 수강생 한 분이 배경 음악에 맞춰 드럼을 멋들어지게 친다. 선생님은 틀린 곳을 지적하고, 연주한 분도 쑥스러워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원더풀이다. 얼마나 배우면 저렇게 될까? 언젠가는 배경 음악에 맞춰 '두구두구 쨍쨍 쨍쨍' 연주하는 모습을 꿈꾼다. 가깝고도 먼 일본을 마음대로 여행하고, 맛집에서 원하는 음식을 척척 주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정박자 하나 제대로 못 치면서 콘서트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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