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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an 09. 2024

꼰대 생각 40: 패키지여행

우연을 기다리며

연말에 중국 상해(上海) 여행을 다녀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으레 해넘이를 가거나, 다음 날 해돋이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갔다. 해돋이를 보러 가기 위함은 아니었다.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여행상품 광고를 하는데, 비용이 항공료 정도밖에 안 되는 싼 가격이라 덜컥 신청을 했다. 직장을 잠시 쉬는 딸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이것저것 생각 없이 결정한 것이다. 


쇼핑몰에서 파는 여행상품, 즉 패키지여행이다. 2017년 캄보디아 여행 간 이후로 처음이니 햇수로 6년, 참 오랜만이다. 단체비자 발급비가 따로 들기는 하지만 여행사에서 모든 것을 해 주니 그냥 일러주는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비행기 예약도, 호텔 예약도, 맛집 찾기도,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거의 매일 가고 싶지 않은 쇼핑몰에 가서, 궁금하지도 않는 설명을 한두 시간 들어야 하고,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을 때는 가이드 눈치를 살피는 옵션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 옵션, 따로 돈은 내어서 하는 옵션 관광이 없다면 도대체 상하이까지 가서 어떤 관광을 하는 걸까 몹시 궁금하기는 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세상에는 싸고 좋은 건 없다. 


상하이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 터미널에서의 첫 미팅. 정해진 시간에 여행사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며 이리저리 눈치를 살핀다. 눈치를 살핀다기 보다는 슬쩍쓸쩍 탐색한다고 해야 할까? 여행사 데스크 한두 개아 아니니 모여 있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이 같이 여행을 가게 되는 사람일까 살펴보는 것이다. 미리 살피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알게 되는데도 그런다. 데스크에 직원이 나와 모이라고 소리를 치면 같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쪼르르 모인다. 명품으로 치장한 중년 부부, 연말 휴가를 받아 왔음 직한 젊은 부부, 은퇴한 후 매년 여행을 다니는 듯한 노부부, 시어머니나 장모님인듯 한 노모와 딸까지 삼대가 모인 4인 가족, 엄마와 십 대 딸 두 명인 가족 등 구성도 다양하다. 


3박 4일 일정동안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호텔이 묵고, 한 버스를 타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도 웬만해서는 통성명은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대화를 나누고, 어디서 왔는지 정도는 묻고 알게 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짧은 여행 동안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피하고 싶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다. 단체로 하는 여행이지만 가족만의 추억을 만들 시간을 서로가 존중하기 때문이다. 따로 또 같이, 아니 같이 또 따로다. 


돌아오는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고 헤어지면서 잘 지내시라, 또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될 지 모르겠다는 인사를 나누면서 명함 한 장 건네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하니 잘 참았다 싶다. 뜻하지 않은 소중한 인연을 잇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아쉬움은 막연한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새겨진다. 뜻밖의 우연을 기다리게 한다. 



#배정철의일상인문학 #꼰대생각 #상하이 #노랑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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