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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생각51_여행 맛, 음식 맛

by 배정철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 언어, 잠자리, 거리, 자연환경, 그리고 음식. 패키지여행을 가면 하루 세끼 꼬박꼬박 제 때 잘 먹여 준다. 아침은 호텔에서, 점심과 저녁 현지식이나 중식당,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많은 단체는 한국식당을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간다. 삼겹살이나 김치찌개 메뉴면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좀 다른 맛이 나더라도 외국이라는 걸 감안하고 감사히 받아들인다. 여행 중에 하루에 한 번 꼭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걸 홈쇼핑 광고에서도 꼭 집어 강조를 할 정도로 한국 사람은 유독 한국식을 좋아한다. 아니, 우리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겠다.


외국 여행 중에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건 비용이 많이 드는 선택이다. 물가가 한국보다 싼 곳도 한국식당의 음식값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20년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지내던 시기에 방학을 이용해서 동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열흘 정도 다녔는데,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식당을 찾아 1인분에 삼만 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었다. 어마어마한 가격에 손들 떨며 한국의 맛을 뱃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탈리아 여행 때는 하루 세끼를 피자와 햄버거로 때웠다. 레스토랑에 가서 알지 못하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두려웠고, 한국식당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햄버거와 콜라를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물려서 그만 먹자고 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피자는 유명하고 맛있다더니 현지에서 먹어보니 별 맛도 아니었다. 레스토랑 피자가 아니라 그런지 얇고 맛이 없었던 기억이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는 만 원짜리 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자유 여행은 하루의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것이 좋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먹고 싶은 걸 골라 먹을 수 있는 반면에 맛집을 찾아 낯선 음식을 직접 주문을 하는 건 부담스럽다. 그래도 여행의 재미 중에 그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 싱가포르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5가지‘, ’ 센토사 맛집‘, ’ 싱가포르 미슐랭 맛집’ 등 간단히 검색을 해 봐도 추천 목록이 줄줄이 나온다. 맛집을 못 찾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 ‘선택의 역설’에 빠지기 쉽다. 오늘 점심 메뉴로 누가 하나 꼭 집어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호텔 조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가가 비싼 곳이니 비용을 좀 줄이자는 생각과 커피와 빵만 있으면 되는 아침 식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머라이언 공원으로 조깅 겸 산책을 나가 토스트 박스(Toast Box)라는 체인점에서 카야 토스트와 수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양이 너무 적어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적게 먹고 어찌 사나 싶었는데, 둘러보니 둘이서 토스트는 하나만 주문해서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점심 식사는 보타닉 공원(Botanic Park) 보고 내려오는 길, 명품 가게와 몰이 즐비한 오차드 거리(Orchard Road)에 있는 맛집 Merci Marcel에서 베네딕트 에그(Benedict Eggs)와 앙구스 비프스테이크(Angus beef Ribeye)에 맥주 한 잔. 처음 주문한 음식(Beef tenderloin carpaccio)은 고기가 너무 얇다고 해서 메뉴를 바꾸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앙구스 비프도 칼로 썰기는 좀 민망할 정도였다. 아침 식사 때보다 밥값은 5배가 더 비쌌지만 가끔 이런 기분도 내는 것도 여행 맛이다. 저녁은 현지식, 호텔 건너편 길거리 맛집에서 반 미안(Ban Mian), 치킨 윙과 콜라 한 잔. 길거리 서민 맛집인 듯한데도 음식과 음료수 하나씩이면 우리 돈 만원이다.


결혼해서 몇 해는 아침은 꼭 국이 있는 밥으로 먹어야 한다고 간 큰 소리를 했는데, 요즘은 소심하게 주는 대로 먹는다. 가끔, 아주 가끔은 ’ 길거리 토스트‘를 만들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이쁜 짓도 한다. 외국 여행을 가면 뱀, 개구리, 메뚜기 등 한국에서 평소 잘 먹지 않는 것만 아니면, 시장이나 길거리 노점상 현지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현지 음식을 먹어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환경,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카야 토스트는 양이 너무 적고, 삶은 달걀보다 수란을 선호하는데 나처럼 한입에 톡 털어 넣는 게 아니라 조그마한 접시에 담아 간장과 함께 휘휘 저어 스푼으로 떠먹는다. 100년이 넘은 커피점 Bacha Coffee(실재론 2019년에 오픈)의 에티오피아 아이스커피는 너무 연하다. 적게 먹고 아껴 쓰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Merci Marcel의 베이컨은 너무 짠 걸 보니 소금 인심은 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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