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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_다케오 코스

책 읽는 마을, 다케오

by 배정철

일본은 참 가까운 나라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 거리다. 지리적으로는 그렇게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멀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적, 북한보다 더 멀다. 북한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하면 일본 응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고, 일본과 중국이 시합하면 일본보다는 중국을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과거의 일과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현재의 태도가 한국인들에게는 높고 두꺼운 심리적 장벽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2024년 기준으로 882만 명이나 된다(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322만 명). 한 달에 70만 명, 매일 24,000명 이상이 일본으로 간다는 얘기다. 연휴나 주말을 이용하여 단기간에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는 멀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다.


아침 6시 반, 청주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잠깐 졸고 난 사이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이륙에서 도착까지 1시간 15분 걸렸다. 입국 심사 과정은 가까운 이웃나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까다롭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종이로 된 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입국 QR 코드도 생성해서 신고해야 한다. 한국말을 잘하는 직원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기는 하지만, 입국 QR 코드 생성을 위해 기해야 할 것이 많아 번거롭다. 자주 오는 여행객은 익숙하겠지만, 오랜만에 일본에 온 나는 낯설고 약간 짜증스럽다. 다행히 최근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일 간의 입출국 수속을 간소화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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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오 코스>> 다케오 코스 12.1km / 4~5시간 / 난이도 : 중상

JR다케오온센 역→시라이와 운동공원(1.3km)→기묘지 절(2.5km)→이케노우치 호수 입구→보양촌모요오시(행사) 광장(4.0km)→산악유보도 종료지점(6.2km)→다케오시 문화회관(9.0km)→다케오 오쿠스(녹나무)(9.8Km)→ 다케오시 시청(11.3Km)→다케오온천 누문(12.0km)


이번 규슈올레 1차 트레킹의 첫 번째 코스는 규슈올레 중에서 최초로 탄생한 다케오 코스다. 다케오 코스는 JR다케오온센 역에서 출발해서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다케오온천 누문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에 가까운 코스다. 다케오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인구가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농업 중심의 작은 도시다. 작지만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온천과 400년을 이어온 도자기 공방으로 유명한 도시다. 다케오 온천은 에도시대 때, 상처를 입은 무사들이 이곳에 와서 치료했다고도 한다. 근처 우레시노시와 온천, 올레 등 관광 산업으로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최근에는 온천과 도자기 공방보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이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 도시에 있는 이 도서관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한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다케오온센 역까지는 80km 거리라 자동차로는 1시간 거리다. 하카타 역에서 다케오로 가는 기차 편이 여럿 있다. 가장 빠른 것은 특급열차(미도리·하우스텐보스)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케다 온센 역사는 최근에 신축을 했는지 규모도 크고 시설이 좋다. 역 뒤쪽 광장에는 주말 벼룩시장이 열려 사람이 북적이는데, 특히 빵을 파는 코너에는 길게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도착했을 때의 역 광장 벼룩시장과 <다케오시립도서관>, 그리고 장을 보는 큰 마트만이 예외였다.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올레 출발지임을 알려주는 간세를 출발할 때는 보지 못하고, 우레시노 코스까지 끝내고 구루메시로 이동하기 위해 역에 다시 왔을 때 역 구내 관광안내소 앞에서 만났다. 역 광장에 설치해 놓지 않은 건 완주증 발급을 위한 올래 패스 판매와 스탬프 관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제주올레는 출발지 표지판 옆, 코스 중간, 코스 도착지점에 간세 모양 몸통에 스탬프를 넣어 두고 여행자가 스스로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구비해 두는데 규슈올레는 좀 다른 모습이다. 역 앞의 큰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올레 길을 알리는 K모양의 화살표를 발견했다. 제주올레의 그것과 거의 같은 모습이라 왠지 반가웠다. 이 표식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올레를 즐길 수 있다.


시라이와 운동공원까지는 마을 골목길이다. 박스형의 작은 차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고, 개를 키우는 집은 거의 없어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길가에는 작은 휴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시라이와 운동공원의 넓은 운동장과 고즈넉한 숲길에는 운동하는 이도 걷는 이도 없다. 운동공원 전망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다케오는 누런 보리가 익어가는 우리의 농촌모습 그대로다. 슬레이트 지붕보다는 기와지붕이 많아 오랜 역사의 도시라는 걸 실감케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우리는 생김새와 사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


공원을 돌아나가면 이케노우치 연못(ikenouchi pond)을 만난다. 연못의 반대편에는 <사가현립우주과학관>이 있다. 가파른 산행이 어려운 분은 우주과학관 앞으로 나가는 짧은 B코스를 선택하면 되고, 다케오 코스의 진면목인 가파른 숲길을 걸으려면 우주과학관 뒤쪽 온드파크(ONDPARK) 단지 쪽으로 향하면 된다. 뒷숲은 나무가 높고 깊어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눅눅하고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반대편 내리막은 경사가 더 심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등산 스틱이 꼭 있어야 하는데, 가져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오르막 입구에 대나무 지팡이를 준비해 두었다. 산을 내려가서 반대편에 있는 바구니에 지팡이를 두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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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와서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다케오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요즘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온천이나 도자기 공방보다는 이 도서관이 더 핫하다. 우리나라 별마당 도서관도 이 도서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기념품 판매 코너와 서점이 있고 오른편으로 스타벅스가 있다. 어디까지가 서점의 책이고 어디서부터 도서관 장서인지 언뜻 봐서는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시립도서관이지만 스타벅스를 껴안은 츠타야 서점이 들어와 운영을 맡아하면서 시립도서관 운영비의 90%를 절감한다고 하니 이런 게 바로 혁신이다. 뿐만 아니라 1년 365일 휴관 없이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 것도 부러운 점이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은 입구와 2층 서가 끝쪽 두 군데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사람들, 2층 난간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 읽는 사람들, 둥근 벽면이 온통 책으로 덮힌 공간에서 책 읽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이 도서관 안에는 온통 책 읽는 소리만이 나직히 들릴 뿐이다. 그 소리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아주아주 작은 소리다. 나도 어느 구석에 앉아 종일 책을 읽고 싶어진다.


도서관 잔디밭에 앉아 마트에서 사 온 초밥을 먹었다. 시립도서관 스타벅스 커피는 좀 밋밋하다. 차 맛에 익숙한 이곳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것일까? 오늘 숙소는 1910년 문을 열었다는 <료칸 교토야>다. 객실에 다다미가 깔려 있고 온천탕이 따로 있는 곳이다. 숙소에도 관광객이 없어 넓은 온천탕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그 많은 한국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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