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규슈올레_야메코스

친절한 일본인이 많은

by 배정철


<< 야메코스>> 11.0km 난이도:하

야마노이공원 -> 도난잔고분 (0.6km) -> 이누오성터(1.3km) -> 야메중앙대다원 (3.4km) -> 이치넨지(절)(6.4km) -> 에사키식품 (7.3km) -> 마루야마즈카고분(8.1km) -> 야메재활병원 앞 (9.2km)-> 이와토야마역사문화교류관(11km)


종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라 걱정되어 잠을 설쳤다. 비가 와도 트레킹을 할 수 있게 판초우의도 준비를 해 두어서 크게 걱정은 없지만,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새벽에 창밖을 내다보니 비는 온다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이슬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정도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듯한데도 우산 쓴 사람이 적지 않다. <토요코인호텔>은 무료 조식서비스가 좋다. 한국에서 지방 강연 때 가끔 이용하는데 한식은 물론이고 빵과 샐러드 등 나름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다. 오늘 이곳의 아침 메뉴는 삼각김밥이다.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오렌지 주스와 커피도 준비되어 있다. 삼각김밥을 서너 개 가져와서 먹는 사람도 있다. 나이대는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고 정장 차림의 회사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여행보다는 출장 온 사람이 많은 듯, 등산복 차림의 우리가 눈에 띄고 어색하다.


오늘 트레킹 할 야메코스의 시작점은 <야마노이 공원>으로 쿠루메 시에서 20km 남쪽에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금방이지만, 요금이 많이 나오니 일단 버스로 가서 택시를 탈 계획이다. 야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버스는 호텔 건너편 <니시테츠쿠루메역> 건물 1층 버스정류장에서 탈 수 있다. 마침 등교시각이라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작은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쿠루메시 내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의 출발지인 듯, 버스 종류가 많다. 야메시까지 가는 버스 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줄이 길어 어디에 서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어느 학생에게 물었더니 따라오라면서 서야 할 자리까지 안내해 주고 다시 제자리로 간다. 잘 배운 학생이다.


출발할 때는 타는 사람이 많았는데, 몇 개 정류장을 지나자 다 내리고 종점인 야메 버스정류장까지는 아내와 나, 둘이만 타고 갔다. 버스를 거의 택시 마냥 이용했으니 요금도 택시비 비슷하게 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구글 검색에서는 야메 버스정류장에서 야마노이 공원까지 가는 노선은 없어,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버스정류장>에서 <가미야마우치 버스정류장>까지 마을버스로 이동하면 야마노이 공원까지 갈 수 있다고, 버스를 기다리던 분이 고맙게도 알려준다. 그는 영어가 안되고 나는 일본어가 안되는데도 말이 통하고 알아듣는 게 신기하다.

후쿠시마 버스정류장에서 매표소 여직원의 안내로 호리카와(Horokawa) 버스를 타고 <야마노이 공원>까지 이동했다. 야메코스의 출발지인 야마노이 공원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니시테츠쿠루메역 버스정류장에서 학생의 도움을 받고, 야메 버스정류장에서는 젊은 청년의 도움을, 후쿠시마 버스정류장에서는 너무도 친절한 매표소 여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왠지 일본인은 한국인에게는 불친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잠시 부끄러웠다.

IMG_0711.JPG
IMG_0713.JPG

여전히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출발지 근처 마트에서 커피를 보온병이 담는데 옆에 서 있던 분이 올레 가냐고 물으며 곧 비가 올 거라고 걱정을 한다. 올레길을 아는 일본인은 처음 본다. 야메시는 경남 거제시와 자매도시이고 야메코스 개통식 때 후쿠오카 총영사가 참석하기도 해서 올레길이 좀 알려진 모양이다. 그래도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마트 뒤에 있는 <야마노이 공원>에서 출발 간세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 마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자 곧장 오르막이다. '오늘 코스는 난이도가 ‘하’인데, 초반부터 오르막이야?' 고분 옆길을 따라 조금 오르자 도난잔(童男山)고분이다. 들어가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한글로 적혀있다. 고분의 내부가 깊지 않아 입구에서 잠깐 들여다보면 될 정도다. 사람 키 높이의 바위 두 개를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그보다 큰 바위를 얹어 입구를 삼았다. 안내 표시판에는 진시황의 신하들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었다는 오래전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곳 야메시에는 일본 역사에서 소위 고분 시대라고 하는 3~7세기에 조성된 300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다고 한다. 경주에서 볼 수 있는 고분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야메코스에서 보이는 고분은 그렇게 크지 않다.


고분을 지나서는 숲길이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에 숲 속이라 공기가 차고 습하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그대로 쌓여 있다. 사람이 지나 다니지 않아 가을의 흔적이 여전히 숲에 머물고 있다. 가을을 보듬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숲의 생명은 마른 가지에 새잎을 피워내며 봄을 맞이하는 중이다. 봄을 향해 높게 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간간이 빛이 들어와 곧 여름이 올 것임을 알린다. 숲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하면서도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를 예비하고 맞아들인다. 숲은 사람 사는 세상 일에는 무관심한 듯 무심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변화 앞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머지않은 여름에 이 숲은 생명의 활기로 소란스러우리라.


이누오 성터는 긴 풀로 덮여 있어 이곳에 한때 마을을 지키는 성이 있었다는 걸 짐작하기도 힘들다. 숲길을 걸어 나가자 차밭이다. 저 멀리 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초록물결이 장관이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세심하게 닿아 단아한 차림이다. 그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보슬보슬 내리던 것이 점점 굵어져 비를 맞고 걷기가 힘들 다. 다행히 <야매 중앙대다원 전망소>가 가까이 있어 바삐 걸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차를 내다 파는 자판이 처마 아래 펼쳐져 있어 비를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간간히 승용차가 와서 서고,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비 내리는 차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간다. 차밭에 비가 내리는 광경은 어쩐지 경이로워 보인다.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몸과 마음에 작은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도파민 분비를 이끌어낸다. 작은 기쁨과 행복감이 온 몸의 세포를 일깨워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는 여행이 그래서 좋다.

20250521_141327.jpg
IMG_0744.JPG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한참을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판초우의를 챙겨 입고 다시 걸었다. 지난가을, 포르투갈 포르투(Porto)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oago de Compostella)까지의 해안 코스를 걸을 때, 여러 날 비를 맞은 경험이 있어 비 맞으며 걷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하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머리와 몸에 바로 닿는 비의 느낌은 판초우의를 입고 걷는 자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다. 차밭을 돌아 나가 마을 어귀에 닿았을 때 저 멀리 <이치넨지절, 一念寺>이 보인다. 절은 규모가 크고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절 입구에는 수십 개의 부처석상이 기와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우리의 사찰에는 불상을 모시는 본당을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약사전 등으로 구분하여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일본의 사찰에는 그런 현판을 볼 수가 없다. 현판이 없는 본당의 지붕은 팔작지붕과 비슷하나, 지붕의 정점인 용마루에서 처마까지가 높고 길어 우리의 사찰 지붕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사찰은 주변의 산과 잘 어우러지고, 지면에 가까워 너그럽게 사람을 품어 주는데, 일본의 사찰은 땅에서 우뚝하니 솟아 다소 위압적이다. 본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스님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치넨지절>을 지난 후의 올레길은 밋밋하다. 마을을 지나고 도로를 돌아 작은 풀밭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찾은 이가 많지 않은지 길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의 흔적이 흐릿하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이곳의 풀도 소란스러워 길은 그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비가 많이 온다. 종착지 <이와토야마 고분> 뒤 사무소 앞 처마 밑에서 한참이나 비구경을 했다.



<쓴 책>

#책의이끌림

#뇌가섹시한중년

#산티아고내생애가장아름다운33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규슈올레_구루메·고라산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