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규슈올레_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신이 머무는 대숲이 있는

by 배정철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11.5km, 난이도: 중


하치라쿠카이→우부메다니수문(0.6km)→야마우치고분군(1.3km)→야마사적삼림공원(1.6km)→조야마고고이시(1.7km)→구로이와저수지(2.6km)→메가네바시다리(4.1km)→혼보정원(4.7km)→오백나한(5.0km)→기요미즈데라절(5.5km)→기요미즈데라절 삼중탑(5.6km)→제2전망소(5.8km)→오오다니저수지(6.8km)→스와신사(7.4km)→미치노에키 미야마(11.5km)


오늘은 규수올레 1차 트레킹 중 마지막 날(5일 차)이다. 어제 비 속 우중 트레킹을 했는데, 오늘은 흐리지만 비는 뿌리지 않는다. 어제 묵은 야메시에서 오늘 갈 코스,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출발점까지 이동하는 것이 애매하다.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지만, 대중교통이 적절치 않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제주 올레길을 걸어 본 한국 트레커들은 몹시 불편하게 생각할 것 같다. 제주올레처럼 코스가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코스의 출발점으로 가는 교통편과 종착점에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거나, 인근 기차역이나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교통편을 마련하고 안내해야 이 코스를 즐겨 찾을 텐데, 아쉽다. 규슈올레 공식 홈페이지에도 후쿠오카 공항이나 기타큐슈공항에서 이동하는 방법만 안내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미야마시 상공관광과에 5일 전에 예약을 하면 택시비 보조권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다녀보니 교통편이 없지는 않았다.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뿐.


친절한 후쿠오카 버스정류장 매표소 여직원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어제 덕분에 야메 코스는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미야마 코스 출발지인 <히치라쿠카이 교단 八楽会教団> 으로 갈려고 합니다. 거기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있나요? 아니면 가까운 곳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번역기를 돌려서 미리 써 놓은 글을 보여줬다. 어제 본 사람인 줄 알아채고는 매표소 밖으로 나와, 쉬고 있는 버스 기사들에게도 물어보며 열심히 방법을 찾는다. 이곳 3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하이누츠카 hainutska역>까지 간 다음, 기차를 타고 <세타카 setaka역>까지 이동한 다음에 택시를 타는 게 좋겠다고 한다. 너무 번거로워 그냥 택시를 타겠다고 했더니 버스 기사들이 손사래를 치며 요금이 4~5천 엔은 나올 거라며 안된다고 말린다. 마침 정류장에서 나가는 버스를 손을 흔들어 세우더니 빨리 타라고 등을 떠민다. 모자를 벗고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여러 번 하고 얼른 버스에 올랐다.


야메시에서 가까운 곳을 다니는 호리카와(horikawa) 버스는 구글 검색에 나오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을 찾아 직원에게 물어보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규슈올레 코스를 심사하고 선정하는 과정에 규슈올레와 제주올레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코스의 전반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코스를 찾아오는 트레커를 위한 대중교통도 고려한 다음에 승인하고 코스를 개통할 텐데, 이런 정보는 왜 없는 걸까? 사람이 찾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늘 있는 법이다.

<하이누츠카역>까지는 버스로(25분, 350엔), 세타카역까지는 기차로(2개 역, 270엔) 이동했다. 세타카역에서 출발지까지는 버스가 없는 줄 알고 출발점까지 3km 정도라 걸어갈 생각이었다. 역에서 나와 버스 안내판을 보다가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길래 ‘한국 사람이고 올레길 걸으려고 <하치라쿠카이 교단>으로 갈 겁니다’ 했다. "그럼 여기서 버스 기다리다 타고 가요. 가는 버스 있어요." 77살 이시라는데 정정하시고, 스마트폰 번역기도 잘 아시는지 한 문장 말하시고 기다리셨다고 다음 말을 하시며 능숙하다. 1호에서 5호까지 다섯 종류의 버스 중에 5호 버스를 탔다. 버스가 아니라 오렌지색 봉고차다. 미야마시의 작은 골목까지 두루두루 순환하는 버스다. 일반 요금은 100엔, 노약자, 학생, 장애인은 50엔, 미취학자는 무료다. 할머니 덕분에 구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싸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20250522_103516_Original.JPG
IMG_0768.JPG

출발지 <히치라쿠카이 교단>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올레 시작 안내판이 있다. 여기는 제주올레의 간세와 같이 간세 몸통에 스탬프가 들어 있다. 교단의 본당은 오사카성의 축소판인 듯 작지만 높게 솟아 있다. 불상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사찰 분위기이면서도 뭔가 다른 종교 시설인 듯한 교단 마당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선다. 골목을 지나자 오늘 코스의 두 개의 산 중에서 첫 번째 산길 초입이다. 초입에서 일본 토종견인 시바견을 만났다. 사람을 보아 반가운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처음에는 짖지 않더니 가까이 가니 짖는다. 며칠 동안 작은 도시의 골목길과 마을을 다녀도 반려견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똘똘한 녀석을 보니 무지 반갑다. 한국의 반려견 양육가구 수는 거의 30%에 육박하는데 비해 일본은 1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라고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반려견 양육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기는 하다.


산길을 오르자 바로 대나무 숲이다. 이곳은 <조야마 사적삼림공원 女山史跡森林公園>으로 오늘 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진초록의 굵은 대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대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댓닢이 길에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대나무 숲 속을 걸어 오르면 걷는 사람도 대나무의 마디를 따라 하늘로 오를 것만 같다. 이곳 대나무의 초록은 단순히 초록이라는 색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싱싱하고 강건한 생명을 담고 있다. 인간의 숨이 닿지 않는 시원의 숲, 그 깊은 땅 속에서 길러낸 초록이다. 몸통은 얼마나 굵은지 두 손으로 감싸도 반이 남을 정도다. 그래서 이곳을 ‘신이 머무는 대나무 숲’이라고 하는가?

20250522_130142_Original.JPG
IMG_0798.JPG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삼림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미야마시는 네모 반듯한 논이 넓게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올랐던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와 도로가를 잠시 걷다가 두 번째 산을 오른다. 트레킹 닷새 만에 처음 한국사람을 만났다. 두 쌍의 중년부부로 하루 전에 쿠루메에 도착해서 오늘 첫 트레킹이라고 한다. 등산 스틱도 없고, 여자분들은 배낭도 메지 않은 걸 보니 가볍게 산책 겸 다니는 모양이다. 큰 배낭을 메고 등산 스틱까지 중무장을 한 우리를 보더니, '이게 바로 여행이지~'하며 부러운 눈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청수사 淸水寺>에서 헤어졌다.

청수사로 오르기 전, 길가 계곡에 석가의 제자 오백 나한이 있고, 청수사 누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보던 순례자의 흔적처럼 해진 짚신, 운동화, 슬리퍼, 등산화 등이 매달려 있다. 반듯하지 않고 이끼가 잔뜩 낀 청수사로 향하는 돌계단은 이 절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케 한다. 806년에 창건된 청수사에는 그 오랜 역사에 어울리는 나데(어루만짐) 불상이 있다. 몸이 아픈 곳이나 나쁜 곳이 있으면 쓰다듬고, 부처를 어루만진 손으로 아픈 곳, 나쁜 곳을 쓰다듬으면 좋아진다는 말이 전해진다는 불상이다. 그래서인지 불상의 온몸이 반들반들하다. 온몸을 보시하여 중생의 안위를 보살피는 불상이다.

산을 내려와 종착지 미치노에키 미야마(지역 특산물 판매점)까지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지쿠고 평아를 걷는다. 넓은 들에서 바람이 모여 뒤쪽 대숲으로 마구 달려간다.



<쓴 책>

#산티아고내생애가장아름다운33일

#뇌가섹시한중년

#책의이끌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규슈올레_야메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