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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Feb 23. 2024

1913 송정역시장

광주광역시 재래시장 1913 송정역시장

어느 도시에 대한 단상.


나름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가 은근히 많다. 물론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시도가 17개, 시군구가 226개나 된다. 이중 서울과 광역시를 도시 하나로 친다고 하여도(천만 인구 서울시를 1만 명이 안 되는 울릉군과 같이 하나의 도시로 간주한다는 것이 거시기도 하지만,) 대략 162개나 되는 도시 이름이 나온다. 그래도 역마살 꼈냐는 이야기도 들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이번 출장지 "광주"에 대하여 그동안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무척 의아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무안~광주 간 고속도로 설계당시 출장을 다녔지만, 무안과 함평 언저리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실제로 광주 시내로 들어온 기억이 없다.

살면서 어찌 그랬을까 하는 무안함. 그래서 이번 출장 갔을 때 예정시간보다 최대한 일찍 광주에 도착해서 도시를 훑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의욕만 있을 뿐 그저 SRT 종착역인 광주 송정역 언저리만 다녔다.

광주 송정역


짧은 시간에 의미 있는 곳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송정역 근처를 검색했더니, 바로 역전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개장일자가 1913년이라 장장 100년의 역사가 있다. 옛 전통이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져 신구가 어울리는 명소란다. 역에서 나와 송정역시장을 가기 위해 바삐 횡단보도를 건넜다.


송정역시장 초입


송정역시장은 역 앞에서 바로 횡단보도만 건너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몇 집 지나 첫 골목 이면도로에 200m에 걸쳐 시장이 들어섰다. 


송정역시장 내부 휴게쉼터


송정역시장을 소개하는 글을 옮겨보면, 

1913년에 송정역이 개통이 되면서 ‘매일송정역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손님들로 북적거렸던 시장도 도심이 발전함에 따라 여느 전통시장처럼 쇠퇴했는데, 시장 사람들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새 단장을 했다. 지금은 어르신들도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장분위기가 유지되면서 젊은 층을 끌어당길 독특하고 특이한 가게도 속속 들어와 나름 신구가 조화되는 시장이다.

라고 한다.


바닥 보도블록도 새 단장했다.

상가 거리는 광주시가 현대카드와 함께 창조적 전통시장 육성지원 시범장으로 단장했다. 서울이나 경기 근교 거리의 보도블록은 모두 이 패턴으로 설치했다. 여기 광주도 현대화 사업하면서 보도블록을 수도권 양식으로 바꾼 것인가 의문이 갔다. 서울을 따라가는 것이 표준화이고 현대화인가? 하기야 표준어 정의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니까...

    

가게 설립 연도를 동판으로 바닥에 새겼는데, 어떤 가게는 1920년이다.


어느 시대나 신구세대를 자연스럽게 조화하는 과정이 지난하다.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다는 것은 시설이 노후화하여 이용에 불편이 있다는 것이다. 가게도 오래되면 왠지 물건도 남루할 것 같고 위생이나 품질도 미심쩍스럽다. 요즘 가게마다 비대면으로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고 결재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상점 주인이 와서 사근 하게 말 거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현대화 한다고 하면 옛것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운다. 그래서 각 지역을 다니다 보면 전통시장의 모습은 모두 평준화되어 오히려 굳이 대형마트대신 찾기 힘들다. 현대화 보다 더 첨단화된 시설이 있으니까. 


지키기 위한 변화.


광주송정역시장 상인들은 옛것을 포기할 수 없단다. 그래도 그냥 이대로 있으면 소멸하는 것은 시간문제.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키기 위한 변화를 한단다. 오래된 포근함을 잊지 않고 대신 청년상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그리고 1913년 개장이라는 스토리를 가미하여 '100년 이야기로 엮어가는 문화역세권' 프로젝트를 1년여 기간 동안 시장을 새 단장하면서 진행했다. 


어느 가게 길모둥이 그려진 벽화


가게 안 내부는 어떨까! 찬 비가 간간이 내리길래 젊은 사장이 운영할 것 같은 사거리 코너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한 카페라테를 기다릴 동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 가게 안을 찬찬이 둘러보았다. 가게 입구가 독특한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나름 젊은이들이 운영할 거라 생각했지만, 가게주인은 풍만한 풍채를 가진 중년여성이다. 내부도 예스러움이 가득 베인 한지 공예품으로 가득하다. 이런 것을 신구가 조화롭게 공존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외 부조화라고 해야 할까?


송정역 시장 어느 카페가 들어간 내부 풍경. 한지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숙소는 송정역시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한옥스테이에서 머물렀다. 분과 회의가 길어져 밤중에나 돼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한옥은 100년이 넘은 전통가옥으로 대감집이었다고 한다. 돌아보니 구들장과 탑, 서까래 등 전통 한옥 구조가 그대로 보였다. 



내부는 대들보와 서까래가 니스칠하여 번들거리고 벽도 깔끔하게 도배되었다. 바닥은 온돌로 한지로 여러 장 바르고 기름을 칠했다고 하는데 바닥이 너무 뜨거워 난방을 잠시 끈다는 것이 다시 키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보통 옛 집은 웃풍이 심하여 열 손실이 크다. 더구나 이 집은 창과 문이 한지로 만든 지라 웃풍이 더더욱 심했다. 그 덕에 아침에 일어났더니 바로 몸살이 걸렸다. 

 

한옥스테이 내부


한옥 한쪽 뜰에는 황칠나무와 석류나무, 감나무가 있다.

쿨럭거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옥 스테이를 한 바퀴 돌았다. 그 작은 뜰에 제법 많은 나무가 보였다. 2월 20일 겨울이지만, 황칠나무 잎이 푸르다. 옆의 사철나무야 그렇다 치지만 푸른 황칠나무를 보니 반갑다. 

한옥 침실 안에는 나전칠기로 장식된 서랍장이 있는데, 그 칠기가 바로 이 황칠나무 진액으로 칠했다. 일반적으로 옻나무 수액으로 옻칠이라 하여 나전칠기를 장식하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가구에는 바로 이 황칠나무 수액으로 칠한다. 이름 자체가 금빛나는 칠나무라는 뜻으로 노란옻나무로 불리며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다. 오래전부터 심고 가꿨지만, 관료들의 백성들을 닦달하며 수탈하다 보니 사람들이 심기를 꺼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겨울에 보는 매화


한옥스테이에서 황칠나무를 본 것도 기분 좋았는데, 아직 차가운 비가 내리는 겨울에 매화가 작은 가지에서 피었다. 다음 달이 3월이지만 도저히 봄이 도래할 것이라 느끼지 못했는데 매화를 보게 되니 다음 달이 3월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그렇게 봄을 앞두고 한 겨울에도 멀쩡했건만, 감기몸살이 걸려버렸으니 허탈하다. 


하루하루가 당신의 첫날입니다.




광주 송정역에서 신구가 조화된다고 하는 송정역시장에서 커피도 마시고 시장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근처 한옥스테이에서 머물렀으니, 떠나는 마지막 날은 송정역 앞 스타벅스에 들려도 무방하겠다. 

따뜻한 라테 한잔을 마지막으로 광주를 떠난다. 

송정역 앞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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