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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23. 2024

진정한 땅끝마을 완도

완도 명사십리와 창해일성소

땅끝마을 완도

이번 모임 장소가 우리나라 땅끝마을 해남이었다면, 내가 참여하기 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성남시에서 그곳까지 내려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직접 몰기에는 까마득하고, 수서역에서 SRT 탄다고 하여도 광주역에서 해남으로 내려가는 교통편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남쪽 완도군이라고 해서 땅끝 해남은 아닌가 보다 하고 일정을 잡아놨다. 

하지만, 지도를 찬찬히 흩어봤더니 세상에  해남보다 더 아래 있는 시군이 바로 완도군이었다. 아니 다리로 연결되어 버스가 다니면 이미 내지화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땅끝마을은 엄연히 완도군일 텐데, 왜 아직도 해남을 땅끝마을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완도 방파제에 있는 고깃배들


일정을 마치고 저녁 무렵 완도 방파제로 나왔다. 해조류 박람회관이 있는 드넓은 광장에 서서 항구에 오가는 배를 봤다. 옆의 문화해설사는 전복을 실어 나르는 어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항구 방파제 앞의 섬 이름은 주도로 일병 하트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상록수림 137종이 빼곡히 있는 섬으로 천연기념물 제28호라고 한다. 

완도 앞 바닷가

놀랍다. 그저 평범한 무인도가 Heart 모양을 닮아 연인들이 이 섬을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고, 게다가 원시림 상태로 보존되어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니... 휴대폰을 꺼내 검색했더니 항공뷰로 보면 영락없이 하트모양이다. 

하트섬 본 이름은 주도(珠島)다. 섬모양이 둥글어 구슬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래에 이르러 섬 위쪽이 파도에 침식되어 섬 모양이 오목해졌다. 이 모양이 언뜻 하트모양을 닮아 하트섬으로 더 많이 불린다. 

배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길래 그 섬에 갈 수 있는지 물었지만, 천연기념물이라 일반인 출입은 못하고 단지 학술연구용으로 입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도 이 섬은 봉산으로 지정되어 벌목을 금지했고 일반 백성은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주도 [출처 아시아경제]




명사십리

남쪽으로 돌아가면 신지면에 소재한 길이 3.8km의 모래사장이 나온다. 대략 십리다. 모래도 깨끗하여 햇살에 밝게 빛난다. 사람들은 여기가 명사십리라고 한다. 속으로 해변이 넓고 모래가 깨끗하면 그냥 명사십리라고 이름 붙이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가 남한에 있는 유일한 명사십리라고 한다. 

'그럼 내가 갔던 동해안 명사십리는 뭐지?'

사실대로 말하면 동해안에 있는 명사십리는 내가 가본 적이 없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명사십리는 고유명사로 함경남도 원산시에 있는 모래사장 이름이 명사십리다. 해변 길이가 4km로 십리이며, 바닷가 모래도 밝고 깨끗하다. 진정한 명사십리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해변 길이가 제법 길고 백사장이 깨끗하면 북한에 있는 명사십리에 비유하여 명사십리라고 할 뿐이다.

완도군 신지면 명사십리. 멀리 제주도를 볼 수 있다.


완도군의 해변 또한 길고 모래는 깨끗하여 명사십리라고 부를 수 있다. 바닷물도 깨끗하여 우리나라 다른 해수욕장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적하고 쓸쓸하다. 하기야, 날이 개면 바다 건너 제주도가 보인다고 한다. 여기는 땅끝에서 다리를 건너 완도를 와야 하고 다시 다리를 건너 신지도에 와야 볼 수 있는 해변이다. 타지의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을 곳이 못된다. 그래서일까? 백사장에는 유럽 지중해식 등대 건물과 야자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관청에서 여기를 관광지로 만들려는 갸륵한 정성으로 세운 것이겠지만, 정말 생뚱맞다. 

그래서 명사십리란 이름도 완도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관광산업 부흥의 일환으로 작명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원래 조선시대부터 명사십리로 붙여진 이름이고, 북쪽의 명사십리와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가이드는 명사십리가 우리가 아는 그 명사십리와 다른 의미라고 한다. 한자가 다른데, 완도의 명사십리는 앞 글자 명자의 한자가 밝을 명(明)이 아닌 울 명(鳴)을 쓴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완도 명사십리 밝고 깨끗한 모래. 파도소리가 울음소리 같아 명사십리로 불린다.


조선 철종시대 한 왕족이 죄 없이 이곳 완도까지 유배를 왔다. 당시 안동김 씨 세도가가 조정을 주무르고 있던 시기라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땅끝에서 바닷배를 타고 이 섬에 갇혔다. 졸지에 고향을 떠나 지인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이 선비는 날마다 여기 해변가에 주저앉아 그저 손가락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써 내리며 울았다고 한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고 말았는데, 그 한으로 백사장의 모래가 밤마다 십리까지 울었다고 하여 명사십리라고 한다. 

그런 사연을 들었더니 모래를 철썩이며 오가는 파도소리가 울음소리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도 사람 없고 모래와 바다뿐이라면 그 적적함을 어찌 감당할까! 서러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청해진 한옥스테이

숙소는 청해진 한옥스테이에 머물렀다. 이름을 보고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장군을 떠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장보고 장군이 세운 청해진이 완도에 있다고 한다. 실제 군사기지로 쓰였던 곳이 유적지가 완도와 인근 장도에서 발굴되어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히 장도는 군사기지 중심으로 섬에는 토기와 기와조각 등의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닷가에는 통나무로 만든 목책이 발굴되기도 했는데, 탄소연대 측정결과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바다를 주름잡던 시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 섬 주변 바다의 수심이 얕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목책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청해진 한옥 스테이

한옥스테이는 마을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전통 기와집을 멋들어지게 짓고 손님을 맞이한다. 널따란 마당에 서면 멀리 바닷가와 그 배경으로 잠든 강아지 모양의 산줄기도 볼 수 있다.


청해진 한옥스테이 앞 버드나무. 분재모양으로 집주인이 정성스레 가꾼 모습이다.


한옥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바닷가와 산줄기. 우측 산의 모습은 잠든 불독 강아지의 모습 같다.
한옥스테이 내부 뜰 전경
한옥스테이 여러 기와집 전경


비파나무

한옥 뜰마다 비파나무가 자라고 있다. 완도를 보면서 가로수든 공원의 정원수든 비파나무가 많다고 느꼈다. 한 겨울인데도 중국에서 넘어온 비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 완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땅끝마을이라 비파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자라는 가 싶었다. 

비파나무

여기 한옥스테이는 집집마다 비파나무를 가꾸고 있다. 

비파나무를 보니 한겨울에 꽃이 한창 피었다. 비파나무 꽃은 10월 말에서 12월까지 피고, 다음 해 여름에 자두모양의 노란색 열매가 열린다. 비파나무 열매는 매우 달며 설사에도 효능이 좋다. 그래서 비파나무 과일은 예전부터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내년 여름에 오면 비파나무 열매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파나무 잎사귀

비파나무 이름은 나무 열매가 중국의 비파라는 악기 모양과 닮았다고 비파나무라고 한다. 또는 악기 모양이 비파나무 열매와 닮았다고 하여 악기 이름을 비파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옛날에는 비파를 우리나라에서 많이 연주했는데, 지금은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참고로 거문고와 비파 악기를 연주하면 서로 조화가 잘되어 이 두 악기를 금슬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사이좋은 부부를 금슬이 좋다고 하는데 그 금슬의 유래가 여기서 왔다.


엇나가는 이야기지만, 비파 연주곡을 들으면 이연걸과 임청하가 나왔던 중국 무협영화 동방불패가 항상 생각난다. 임청하와 이연걸이 서로 얽히고 싸우고 그리워하는 장면이 비파소리와 함께 잔상으로 남는다. 

열매가 악기 비파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비파나무 


영화 중에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란 노랫말도 기억에 남는다. 

문득, 권력싸움에 애꿎게 완도 명사십리로 귀양온 이세보가 비파나무 아래서 비파를 연주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면, 조정에 대한 원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릴없이 슬퍼하다가 죽지 않을 것이다.  


소오강호(笑傲江湖)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물결 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이긴 자는 누구이며 진자는 누구인지 새벽하늘은 알까. 

강산에 웃음으로 물안개를 맞는다. 

파도와 풍랑이 다하고 인생은 늙어가니 세상사 알려고 않네.

맑은 바람에 속세의 찌든 먼지를 모두 털어 버리니, 

호걸의 마음에 다시 지는 노을이 머문다. 

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영예를 싫어하니,  

사나이도 그렇게 어리석고 어리석어 껄껄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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