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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pr 10. 2024

태안 신두리 사구

우리나라에서 사막의 풍경을 잠깐이나마 맛볼 수 있는 곳

사막.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


불모(不毛). 아무 식물도 자라지 않는 땅. 비가 내리지 않아 아무런 초목도 땅 위에서 움틀 수 없는 죽음의 땅. 비가 오지 않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 사막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지구에서 가장 넓은 사막은 남극이고, 다음 북극,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하라사막이다.

우리야 농경민족이니까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는 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이동 없이 정주하는 우리 민족에게 풀이 나지 않는 불모의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일 뿐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사막이 없다. 좁은 한반도에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광활한 지평선과 끝없이 단조로운 모래밭은 때론 동경과 신비의 대상이다. 그래서 한 때는 나도 사막을 찾아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지난 시절 낙타와 사막 여행 중 한 컷. 곳곳에 모래 사구가 보인다.


태안 신두리 사구

우연히 우리나라에 사막이 있다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한반도의 사막 태안 신두리 사구가 모래사막과 비슷한 풍경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봤지만, 결국 신문 지면 한 단락을 채우려는 욕심에 해변 백사장을 사막으로 비유하며 어그로 끌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 태안에 사막이 있다는 관심은 호기심에 잠깐 들춰보고 금세 잊혔다.

그리고 몇 년 후 태안군청을 찾아갈 일이 생겼다. 그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조건 태안 신두리 사막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막은 아직도 가슴속에 미지의 동경으로 남아있다. 

비록 백사장이라 하여도...


태안 신두리 사구 초입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반도 신두리 해안에 길이 약 3.4㎞, 폭 0.5∼1.3㎞의 모래언덕이다. 태안군청을 지나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 사구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정비되어 있었다. 

사전에 신두리 사구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았다. 

태안의 해안사구는 수만 년에 걸쳐 대지가 침식과 퇴적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류에 의하여 바닷가에서 운반된 모래가 파랑과 밀물에 밀려 올라와 바람의 작용으로 위로 운반되어 퇴적되기를 반복하여 만들어졌다. 이지형이 한반도에는 매우 드물어 해양 생태계 관광자원으로 지정되었다. 워낙 희귀한 사례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국 관광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해안 사구를 관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목재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된 모래벌판은 곳곳에 목책을 설치하여 해안 사구 같은 지형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행여나 관광객이 어렵게 만들어진 사구를 발로 부숴버릴까 울타리를 설치하고 산책길에는 데크를 설치했다. 솔직히 로프를 쳐놨다고 하지만, 그 사구를 보기 위해 해안에서 벗어나 발길을 옮길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그런 모래 둔덕이었을 뿐이니까. 

사구란 사막에서 모래 폭풍이 일 때 하루 만에 생겼다가 하루 만에 없어지기도 하는 지형이다. 바르한(초승달 모양의 모래언덕)은 아예 바람에 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렇게 허무하고 무성한 존재가 사구다. 

바르한이 거대한 산처럼 높이 쌓였다 한들 하룻밤새 없어지고 마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헛되고 덧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여기 태안반도에서는 목책을 두르며 보호하려 한다. 



데크로드는 사구를 크게 한 바퀴 돈다. 인적이 드물지만, 간혹 둘이 온 연인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쁘다. 홀로 온 나는 그들 사진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우리나라에 어디 황량하고 쓸쓸한 땅이 있을까! 한결같이 포근하고 사람을 안아주는 같이 벗하는 그런 넉넉함이 있다. 자연스럽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말도 없다. 설령 태안의 사구가 사막의 거친 자연을 닮았다고 하나, 내 눈에는 그저 평화롭고 홀로 걷기 딱 좋은 모래벌일 뿐이다.



길이 안내하는 쪽으로 가니 서해가 보인다. 백사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제법 바닷바람이 거세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어느 연인이 나란히 걸었는지 모래에 두 발자국만 선명하다. 가까워지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고 그저 나란히 걷는 것을 보니 이제 갓 가까워지기 시작했나 보다.



문득 궁금하다.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은 바닷가와 맞닿는가? 모래사장이 내륙으로 끝없이 펼쳐지는가? 아니면 야자수라도 해변가를 따라 자라났을까? 

비록 바닷물이라 하여도 사막이 물과 닿았는데 불모로 남아있다는 것이 생각하기 어렵다. 

태안의 갯벌은 생명의 보고. 그래서 여기 사구는 여러 생명을 품고 있다. 물론 여러 풀도 잘 자란다. 

그래서 태안의 사구는 불모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해안사구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서해 갯벌까지 이르렀다. 물이 많이 빠져서 인지 한참을 걸었다. 달은 이곳 반대편에 있나 보다. 바닷물을 이리도 많이 당겼으니 말이다.

차가운 바닷물 포말을 만져본다. 거품은 금세 부서지고 손끝에서 말라갔다.



바다를 실컷 보았다. 언제 또 서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철석거리는 소리에 뒤돌아섰다. 바다는 저 멀리 일렁였다. 뒤돌아보니 내 발자국이 이리저리 정처 없다. 뒷날 오는 사람이 볼 때 이 발자국을 보고 참 쓸쓸한 사람이 다녀왔겠구나 생각할 것을 생각하니 더욱 쓸쓸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신두리 해안사구센터를 들렸다. 입장료가 무료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안생태계 교육을 하기 위한 건물이었다. 홀로 온 내게 굳이 둘러볼 것이 없어 서둘러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다 포스트잇으로 한 벽면을 다닥다닥 붙은 것이 보였다. 

문득 포스트잇을 하나 집어서 글을 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볼 일 없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벽면에 붙이고 돌아섰다.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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