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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14. 2024

용산 남영동 서울남산타워

우리나라 랜드마크 서울남산타워

남산 산기슭 용산동에서

용산은 요즘 우리나라 중심 지역이 되었다. 처음 용산 하면 국방부와 미군기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장소쯤 생각했다. 이후 20대 대통령께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고부터는 용산은 우리나라 중심이 되었다. 게다가 용산철도기지 중심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과 용산미군기지의 용산공원 조성 계획 등, 여러 개발소식으로 용산은 말 그대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업무차 용산을 들릴 기회가 있었다. 사무실은 용산미군기지 근처라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미군기지 기다란 담장 따라 걷다가 철조망 위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하! 티브이에서나 보던 서울남산타워가 저리 가까운데 있다니.. 

남산서울타워를 보니 문득 예전 파리 에펠탑을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용산미군기지 담장 철조망 너머 남산타워가 보인다.


그때 에펠탑을 지나치는 파리지앵들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파리 사람들이 에펠탑과 가까이 살아서 매일 본다고 해도,
저 멋진 에펠탑을 그냥 무덤덤히 지나칠 수 있을까?'


용산 숙대입구역에서 나와 서울남산타워를 보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 용산사람들은 저 남산타워를 매일 볼 때마다 어떤 의미를 갖고 하루를 시작할까 하는 생각... 어쩌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랜드마크인 남산타워를 보고 뿌듯하게 여기며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은 한자로 龍山, 마을에 용이 오르는 山이던데, 남산타워가 우뚝 솟은 모습은 마치 용의 승천을 기념한 거대한 작품 같다. 산 정상에서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 얼마나 웅장한가!

용산 주민들에게는 나의 반응이 쉽게 이해하지 않겠지만, 나에게 이런 과몰입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감동으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 사실 글은 감동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  남산타워를 보고도 맹맹한 느낌이었다면 애초 글도 쓰지 않았다.

다행히 휴대폰을 켜보니 회의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다. 뭔가에 끌리듯 남산타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대입구역에서 남영동주민센터 지나며 가는 길.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는 에펠탑이 있고, 일본 도쿄에는 도쿄타워가 있다. 우리나라 서울에는 남산타워가 있다.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당연히 머릿속에 명제로 박혀 있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서울남산타워를 보러 갑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숙대입구역에서 용산중고를 지나 남산타워로 걸어가면서 한 나라의 랜드마크를 향해 간다는 설렘은 금세 지워졌다. 그냥 성남시 본시가지 내가 사는 동네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주택가에 파묻혔을 때 여기 서울 남영동이 성남 태평동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마을이 위치한 대지는 가팔랐고, 골목길은 구불구불 험했으며, 집들은 산기슭 최대한 올라가 나무를 밀어내고 녹지를 잠식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성남시 태평동 어느 한 골목이었다. 


남영동 가파른 골목길


영장산 산기슭 성남시 태평동

태평동이 위치한 성남시의 도시 태생은 서울시 인구 분산이 목적이었다. 광주시 넓은 땅 중 서울에 붙은 중부면 포함한 몇 개 면을 뭉텅 잘라내 성남이라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성남으로 이주시켰다. 싫다는 사람 데려다 놓으면서도 도시 하나를 뚝딱 급하게 만드느라 상·하수도나 공원, 심지어 도로 그런 사회기반이 되는 기본시설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집을 지을 수 있는 택지도 지반조성 없이 산 하나를 민둥산으로 만들고 산 능선 따라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다.

1973년 성남시 전경. 멀리 영장산 기슭아래 집들이 들어찼다.


세월이 흘러 성남 시대 대로변에 접한 주택은 도로 구역별로 묶여 재개발되어 도시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영장산 산기슭에 지어진 수정구 태평동은 재개발되지 않고 낡은 주택 그대로 남았다. 주민들과 시에서 재개발을 몇 번 시도했지만, 여러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개발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본도심의 문화와 정서가 고스란히 지켜졌다고 생각했다.


둘의 생각에서 접점은 찾기 힘들다. 시에서는 절충점을 도시재생활성화에 찾았었다. 노후 단독주택을 사들여 리모델링해 공공시설로 만들고, 곳곳에 공원이나 주차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태생의 한계 때문에 사람 사는 편리함이나 안전함이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산동네로 불리며 요즘도 나이 많은 어르신이 동네 가파른 급경사 언덕길을 불안불안 걷는다.


성남시 본도심 전경


남산 산기슭 서울시 남영동

남영동 가파란 골목길을 걸으면서 태평동 고바위길을 걷고 있는 느낌 말고도 뭔가 익숙했던 것이 또 있었다. 처음 와본 곳이었지만, 어디선가 남영동 이름은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남영동 대공분실. 머릿속에 민주열사를 잔인하게 고문하던 남영동 고문실. 한동안 잊었던 국가폭력의 장소가 떠올랐다. 미군기지 철조망과 남영동 고문공장. 

암울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 지금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미군기지는 용산공원으로 조만간 바뀔 것이다. 치욕이든 비극이든 한 페이지가 채워지면 그 페이지는 넘어간다. 그렇게 역사는 조금씩 진보한다.


골목길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골목길 오르는 동안 계단으로 된 보도에서 한 어르신이 눈길에 미끄러질까 봐 오도 가도 못한다. 나는 보도를 놔두고 차도를 따라 올랐다. 제설작업이 이루어져 차도는 눈이 녹았기 때문에 쉽게 걸을 수 있었다. 물론 뒤에서 차가 빵빵 거리는 성가심은 있지만. 그 어르신이 내가 차도를 따라 성큼성큼 오르는 것을 보고 그 어르신도 잔설이 있는 인도에서 벗어났다. 그러더니 눈 녹은 차도를 따라 편하게 걷기 시작했다. 

서로 머쓱하다. 어르신은 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얼어붙은 인도에서 끙끙댔던 것이 멋쩍었고, 나는 나대로 사람은 인도, 차는 차도라는 당연한 규칙을 철칙같이 지키는 어르신을 보고 무단횡단 하는 내가 멋쩍었다.

둘은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황급히 자기 길을 갔다. 왜 우리는 미안해하면서 세상을 사는 것일까?


주택가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그렇게 바삐 오르리 주택가가 끝나고 남산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주택가와 남산을 구분하는 차도에는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이 도로가 소월길이란다. 유래는 남산도서관 앞에 있는 소월비에서 왔다. 남산을 감싸는 소월길은 봄꽃이 필 때 그렇게 좋다고 한다. 낙엽 지는 가을에 와도 좋고, 한밤에 와도 좋다고 한다. 

물론, 잔설이 녹지 않는 늦겨울에도 좋다. 삼십 분 조금 걸으면 남산타워에 드디어 당도할 것 같다.


남산 위 남산서울타워


주변을 둘러보니 소월길 바깥쪽으로 등산로가 있었다. 그 길 따라 올라가면 남산서울타워다. 다시 휴대폰 시각을 보니 얼추 회의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았다. 갈등.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남산서울타워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업무 시간 짬을 내서 온 것인데,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이성이 감성을 간신히 눌렀다. 별수 없이 훗날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불현듯 예전 서울성곽길 돌다가 남산 아래서 멈춘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나머지 길 마저 돌아야지 했는데 그때가 벌써 수년 전이다. 아마 앞으로 수년이 지나도 서울성곽길은 오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소월길 따라 남산타워로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못하면 내일도 못한다.

그래도 소월길에서 도심지를 내려다보니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물론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와 비교할 바는 안 되겠지만...


소월길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경


소월길에서 내려다본 서울 용산 전경



오늘 회의장소로 용산기지 담벼락 따라 걷는다. 시멘트블록을 허물고 철조망을 걷어내면 탁 트인 이 넓은 땅에 갖가지 나무들이 자라는 공원이다. 서울 중심지 답지 않은 이 퇴락한 골목길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걷고 싶은 거리가 되겠다. 


용산미군기지 옆 골목길. 한산하여 조용하다.


조금 걸었더니 이색건물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이미 변화될 도시의 앞날을 예상하고 예쁘게 단장한 카페가 생겨났다. 골목길에 카페 같은 커뮤니티 공간이 들어서는 것은 이미 도시 재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기존 주택을 허물지 않고 외관을 리모델링하고 소규모 정원으로 앞마당을 꾸미니 걷는 행인의 시선을 잡는다.


용산 어느 카페


관에서 주도하여 주택가 한 모퉁이에 녹음이 드리워진 놀이터나 소공원을 조성하는 것도 도시 재생에 큰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지역 주민들이 주택의 앞뜰 뒤뜰에 작은 정원을 조성하는 것도 도시에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 집 앞에 작은 화분을 놔둔 것만으로도 처음 군사기지 철조망 담벼락을 따라 걷는 것이 이제는 어느 동네 마을 정원사가 화초로 코디네이트 한 주택을 보는 재미가 되었다. 


용산 어느 카페


용산 어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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