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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13. 2024

남한산성 지화문

한겨울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지화문까지

눈이 내린 아침에...


2월 22일. 3월을 며칠 앞두고 폭설이 내렸다. 직감적으로 이 눈이 올해 마지막 눈이겠다 싶었다. 설경을 볼 수 있으려면 오늘 아침밖에 기회가 없다. 안 그러면 적어도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생각에 이른 아침,  만사 제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그래봐야 대원공원 내 미조성된 야산이지만)에 올랐다. 낮만 되어도 햇살에 눈송이들이 사르르 녹아들 테니까. 


아파트 앞 대원근린공원 초입. 간 밤에 내린 눈으로 순백의 장광을 이루었다.


세상이 은빛 설경으로 변했지만, 보고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황홀한 광경이라 만약 더 깊은 숲 속에 들어갔더라 이 느낌 어떻게 더 강렬할까 싶었었다. 무작정 버스를 탔다. 버스가 다니는 중앙 대로는 제설작업이 이미 완료되어 교통은 지장이 없었다. 차량이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은 둘째 치고, 도심에는 이미 눈이 치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버스 종점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하얀 세상이 된 산속으로 바삐 들어갔다.


양지동 남한산성 유원지 등산로 초입. 은빛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한산성 산기슭은 하얀 겨울왕국이 되었으며, 모든 나무는 설광을 뿜어내는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되었다. 무거운 눈무게에 머리까지 늘어진 파란 소나무 줄기를 걸으며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나니아연대기의 네 자매가 옷장에서 파란 옷을 걷으며 걸었더니 겨울왕국이 펼쳐진 장면과 오버랩되었다. 신비한 세상은 영화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원지 산책로 입구 좌우로 설치된 운동기구가 눈으로 덮여 있다.


이른 아침 남한산성 유원지는 늘 운동하러 나온 사람, 약수 담기 위해 나온 사람, 아니면 마실 나온 사람들로 늘 북적였지만, 오늘 폭설로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오늘 산책은 도심지 위치한 도립공원을 마실 나왔다기보다는 어느 깊은 산 국립공원을 탐방하러 나온 것과 같다. 

여기가 어디 근교 산야이던가! 심산유곡 한겨울의 설경이다. 메마른 가지마다 제 한계를 넘는 눈더미를 지고 있어 찰랑찰랑 거린다. 자칫 나뭇가지가 부러지겠다.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많다. 서울 마천역에서 오르면 남한산성 서문에 닿는다. 하남 상사창동에서 오르면 북문에 닿는다. 광주 불당리에서 오르면 동문에 닿고, 성남에서 오르면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뒤편 산성유원지에 오르면 남문에 오를 수 있다. 성남에서 오르는 길이 남한산성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래서 병자호란 여진족의 침입에 인조와 대신들은 급하게 몽진을 떠나며 남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때도 지금처럼 눈이 쌓인 겨울이었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눈으로 얼어붙은 길을 당신들은 짚신을 싶고 어이 올랐을꼬...


백련사 경내의 사찰과 탑


산성유원지에서 남문으로 오르는 코스는 최단이라고 하여도 오르는 길은 돌탑 공원과 맨발지압장, 체육시설이 곳곳에 있어 이것저것 보다 보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칠보사나 약사사, 영도사와 벽련사 사찰이 곳곳에 있어 이곳들을 들리기라도 한다면 오르는 길은 더욱 길어진다.

유년시절 남한산성에 오르면 백련사를 목표로 올랐다. 약수 중 가장 물맛이 좋았다. 물론 꾀가 나서 산 중턱에서 물을 받고 하산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백련사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었다. 여기까지 오르면 호흡도 가팔라 반드시 쉬고 가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와보니 백련사는 산 나지막한 곳에 위치한 작은 암자 같은 사찰이었다. 그리 큰 사람이 되지도 못했는데, 고산의 사찰이 야트막한 산기슭 암자로 보이다니... 

여기를 지나면 바로 가파른 된비알이 나온다. 


남한산성 지화문


드디어 멀리서 남한산성 남문이 보였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청나라와 치열하게 싸운 성곽이었고, 광해를 몰아낸 조선 인조는 청나라의 침입을 대비하여 남한산성을 재정비하였다. 산성은 조선 이전에 고려 때는 몽골의 침입을 막아냈던 천혜의 요새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를 막아낸 주장성이었다. 최초 성을 쌓은 시기는 백제가 한성을 서울로 삼았던 시대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성곽으로 북한산성과 함께 서울을 지키는 산성이었다.


지화문 누각에서 수어장대 오르는 성곽길


남한산성에는 사대문이 있다. 임금이 머무는 행궁터를 중심으로 남쪽을 바라보며 왼쪽은 동문으로 좌익문이라 부르고 오른쪽 서문은 우익문이라고 부른다. 남문은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정조가 지은 성문 이름 지화문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북문은 전승문으로 불린다.


남문에서 동문 방향 성곽길


남한산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통일신라시대 최대 규모의 건물이다.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은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중국의 산성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됐으며,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고'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성곽을 한 바퀴 돌고 오감이 만족하여 오늘 하루 자족감을 만끽하며 내려가려다가 아찔한 광격을 본다. 오를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아름드리 낙랑장송이 잔가지에 쌓인 눈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지끈 부러지고 말았다. 감담을 쓸어내리며 행여 부러진 나무가 정수리에 내리 꽂힐라 얼른 지나갔다. 그러다가 눈에 미끄러지길 여러 번.. 이러다간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면서 제대로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뒤돌아 부러진 소나무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를 만들었다. 설경을 봐야 한다는 급한 마음으로 산에 올라왔지만, 행색은 청바지에 구멍이 숭숭 뚫린 메쉬소재 운동화를 신었다. 산에 오르느라 이미 양말까지 눈에 젖었다.


눈 무게에 못 이겨 부러진 소나무


부러진 소나무를 이용해 지팡이를 만들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의지해 스키 타듯 뛰어가듯 엉거주춤하며 간신히 하산했다. 옷에 묻은 잔설은 유원지 입구에 설치된 에어브러시로 날려버리고 목숨을 구해준 소나무 막대기는 다시 산으로 돌려줬다. 

한가로운 마음에 유원지를 나설 때 여러 시조비 준 한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조견선생이 지은 시였다. 청계산 국사봉이나 망경대의 유래가 되었던 선비였고, 이 선비의 묘소는 성남시청 근처에 있길래 여러 차례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문 앞의 푸른 솔 몇백 년 지나온 지 
봄바람 가을비 그 몸 늙어 용이로다.
간밤에 쌓인 눈 산도 골짜기도 덮였는데
우뚝이 섰는 모습 홀로 서서 장부런가! 
남한산성 유원지 앞 시조비

시조와 달리 몇 백 년을 우뚝이 홀로 섰다는 푸른 솔이 결국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시를 지은 고려의 충신이었다는 조견선생도 결국은 이성계로부터 개국공신으로 봉해졌다. 

모든 것은 그 앞날을 모른다. 그래서 사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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