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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ishin Jun 09. 2022

그림책은 어떤 꿈을 꾸는가 2.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한 소년이 반짝이는 빛을 한 몸에 받으며 넘실대는 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소년이 서 있는 물은 거칠게 흘러가고 있는 듯 물보라가 치고 있지만 오히려 소년은 휘감기는 물살을 집중해서 감각하고 있는 표정이다. 흐르는 물살 위로 책의 제목이 비뚤비뚤 쓰여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책 표지를 넘기면 더욱 거친 강물이 수많은 질감을 남기며 흘러가고 있다. 하나의 강줄기 안에 수많은 소용돌이들이 휘몰아쳐 가고 있다. 강물의 세찬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연한 빛이 들어오는 벽에 스케치북이 붙어있다. 거칠게 지나간 붓 자국 위로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말해 주고 책은 본 내용으로 들어간다.


   하얀 햇살이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비추며 지나간다. 소년은 아침마다 이 물건들이 내는 소리에 둘러싸여 눈을 뜬다. 하지만 물건들은 온전히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한 체 입을 닫아버린다.


    책의 주인공은 말더듬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입안에 달라붙어 뒤엉켜 버린 소리들이 결국 웅얼거림으로 끝나고 마는 자신의 세상에 대해 그 어떤 표현보다 세밀하고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그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은 섬세한 질감으로 소년의 집을 그리고 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표정이 흐려져있다. 


   학교에 간 소년은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맨 뒷자리에 앉는다. 하기만 선생님은 소년에게 질문을 하신다. 모든 아이들이 소년을 돌아다보면 소년의 언어는 입안에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입안에서 소나무 가지가 튀어나오고 목구멍 안쪽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운다. 입을 열면 달빛이 스며나올 뿐이다.”


   소리들이 어그러져 말이 되지 못하고 제각각의 형상으로 흩어져 버린 것처럼 그림 또한 물감이 번지고, 형태가 흐믈흐믈 흩어져 버리며 제각각의 얼굴로 변해버린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소년은 친구들처럼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겁이 나고, 집에 가고 싶다.

   그날 소년의 세상은 어느 때보다 더 흐려져버려 점점 공기 중으로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 소년을 알아봐 준 것은 소년의 아빠였다. 소년의 아빠는 집으로 가는 길에 강에 들린다. 조용한 강을 거닐며 소년은 다시 한번 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의 말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보고 키득키득하던 친구들의 비웃음에 소년의 세상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소년을 보며 소년의 아빠는 강을 가리킨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혀요”


   소년의 아빠는 소년에게 “너는 강물처럼 말한다”라고 말해준다.


   검푸르게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 위로 쏟아진 햇빛이 강을 따라 흩어지며 반짝거린다. 소년은 흐르는 강줄기 속에서 서서 물살을 느낀다. 한 번에 쏟아져 밀려오며 몸이 흔들리기도 하고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부딪히며 간지럽히기도 한다. 조각조각 흩어진 물살이 하나로 모여 하나의 강줄기로 다시 흘러간다. 소년이 더듬더듬 소리를 내는 것처럼 제각각의 흐름으로 강물이 흐른다. 


  이후로 소년은 울고 싶을 때마다, 말하기 싫을 때마다 아빠가 해주신 말을 떠올린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그리고 소년은 강처럼 당당하게 학교 발표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강에 대해 말한다. 소년의 강은 어른어른 흐릿해 보이지만 깊은 시간과 호흡이 담겨 있어 우주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간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담았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묘사에 정말 감탄을 했습니다. 


실제 말을 더듬는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강에 데리고 가 강이 흐르는 모습과 말을 더듬는 모습이 닮아 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강이 흐르면서 다양한 지형을 만나 흩어지고 세기와 방향이 바뀌지만 다시 합쳐져 큰 강줄기를 이루는 것처럼 작가의 말도 스스로의 흐름을 찾아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더 큰 세상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더 많은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요. 작가는 몸에서 소리가 만들어지고 그 소리들이 언어가 되어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오는 순간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며 말을 더듬는 사람들의 세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다시 오롯이 경험하고 긍정하게 된 힘 덕분인지 작가는 시인으로 성장하여 이렇게 우리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하나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하며 만나게 된 한 아이였습니다. 말수가 적었고 무언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듣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수업에 별로 관심이 없고 대답하기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 아이에게는 너무나 세밀하고 섬세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을 하기 힘들어하는 이유가 자신이 느낀 것을 다 담아내기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어려워서 말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을 우리가 다 알기에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너무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겨준 그림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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