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이아 레지던시 작가들의 작업 세계 들여다보기
아티스트 레지던시라고 부르는 예술지원 서비스가 있다.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여 창작을 돕는 지원 사업의 한 유형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글은 2023년도 이아 레지던시 공간에 입주하였던 6명의 작가의 이야기이다. 비록 레지던시는 끝났지만,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감사하게도 '문화공간 양'에서 모임 공간을 지원해 주어 한 달에 한 번 <작가 읽기> 만남을 갖고 있다.
네 번째 만남 (8월 23일). 김미기 작가의 이야기
늦은 시각, 비행기를 타고 제주 섬에 가까워지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불빛을 보게 된다. 한치잡이 배에서 나오는 빛은 제주도 입도의 시작을 알리는 풍경이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빛은 제주도의 해안가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일렬로 늘어선 빛으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 불빛에서 또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명멸 明滅’이라는 단어가 그려 낸 풍경이다.
'명멸'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함께 연결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작가는 이 단어에 몰입하게 되었던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다 위로 빛이 부서진다. 반짝반짝한 붓터치들이 바다 위로 쏟아진다. 멀리 화폭을 가로지르는 수평선 위 한 줄로 늘어선 빛 점이 보인다. 세로로 긴 캔버스 상단에 그려진 수평선 때문인가 빛을 내뿜는 배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한다. 그 배들은 분명 같은 위치에 있는 게 아닐 텐데 바닷가에서 보이는 배는 그저 동일하게 멀리 있는 빛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의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지만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다만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을 위치에 있어주면 좋겠다.
<수평면에 뜬 별> 작업에서 작가는 캔버스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한 장면을 두 개의 캔버스로 분할하여 위, 아래 혹은 앞, 뒤로 연결하여 구성했을 때는 한 캔버스로만 만들어 내는 풍경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나뉘어진 캔버스를 다시 연결하면서 생기는 틈, 균열, 어긋남의 공간은 ‘명’과 ‘멸’ 사이의 흥미로운 충돌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된다.
작가의 틈새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세계이다. 작가는 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캔버스의 관계를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한다. 이런 반복에서 새로운 공간, 새로운 틈새 세계가 열리고 이것은 미적 쾌감이 된다. 마치 승강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틈새에서 다른 세계를 여는 차원의 문을 발견하는 것 처럼 말이다.
김미기작가의 차원의 문은 바로 전의 작업 <펄개> 시리즈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펄개는 '펄'(또는 폴, 뻘이라는 의미)과 포구라는 의미의 '개'가 합쳐진 단어다. 화강암 바위들로 이루어진 제주의 해안선에 만들어진 얕은 모래 펄로 제주에서는 드물게 관찰되는 지형이다. 만조 때에는 바다에 잠겨 있다가 물이 빠지면 뭍으로 드러난다. 바다의 모습과 뭍의 모습을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펄개는 작가의 화폭에서는 숨겨진 형태로 처음 마주하게 된다. 일렁이는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물 밑에 가라앉아있는 땅의 모습이 슬쩍 비친다.
바다이면서도 뭍이 되는 장소, 즉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잠겨 있는 비일상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숨겨진 틈새 세상을 발견한 작가적 관점을 볼 수 있는 작업이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일상의 경계에 자신을 위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일상을 살면서도 동시에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를 보기보다는 멀리 한라산 자락에서 허공에 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이다. 나는 김미기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가란 저 명멸의 빛 같은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피드백 대화 기록
• 제주 이주 후에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였는데, 변화되는 지점이 궁금하다.
제주에 와서 '나는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지점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는 지점이 된 것 같다. 내가 직접 관계를 만들어 보자, 살아 나가야 한다. 이런 태도의 변화가 작업의 변화로 연결되는 것 같다.
• 작품 안에서 시점이 도시에서는 올려다보고, 제주에서는 내려다본다. 이런 시선의 변화가 환경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거 같은데, 제주 이주가 작가님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제주에서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자연의 환경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낯선 경험을 즐겨 기꺼이 하려고 한다. 작업의 태도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왜 나는 이거에 꽂혔을까'를 탐구했다면, 지금은 현재의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그림과 대화하려고 한다.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기보다는 나는 변화할 수 있음을 알고 그런 생각을, 변화를 따라가는 중이다. 그리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 나누기를 거부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구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상처럼 볼 수 있는 점에 흥미를 두고 싶다.
• 수평선이 고정적인 일직선이 아닌 부분이 흥미롭다.
설치에 따라 작품의 배치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그림에서의 수평선의 위치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 붓질이 수행적으로 느껴진다. 예전 작품에 비해 붓의 사이즈가 커진 것도 같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형상을 그려내는 행위에서 나를 표현하는 행위로 변했다. 캔버스를 마주하고 '한번 해보자'의 태도가 담겨있다.
• 캔버스와 작가님의 관계성에 집중하게 되면, 이후에는 바다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추상적인 표현으로 연결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바다라는 소재가 없어질 수도 있나?
바다가 중요했다기보다는 바다가 내포하는 생소함이 있다.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바다에 나의 마음속의 이미지가 투영되고 반사된다.
• 작가의 태도와 작품 속 풍경의 시점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깊이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조망하는 부분은 수평적 깊이로 느껴진다. 작가님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깊이는 수직적인 깊이이면서 거리감 나타난다. 여기에서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진다. 수직적인 관점에서는 중첩의 문제가 만들어진다. 바다에 떠 있는 일직선 상의 배로 보이지만 일관적이지 않은 수평선에 떠 있는 배다. 이것은 작가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틈이라고 생각된다.
• 바다를 그리기에 적절하지 않은 세로의 구도의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작가님의 바다가 점점 더 커져, 사람 크기만큼 커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큰 바다의 작업을 보고 싶다.
• 작가님에게는 투명한 작가적인 대상, 관념, 태도가 보이는데, 환경이 바뀌면 어떻게 작업이 바뀔지 궁금하다.
<작가 읽기>는 매달 한번 씩 '문화공간 양'에서 진행됩니다. 참석을 희망하는 시는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김미기 작가님이 더 알고 싶으시면? @migi_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