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아내가 푸념처럼 말합니다.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바로 저란 걸 알기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합니다.
아내는 큰아이 양치질을 능숙하게 하고(전 아이의 잇몸을 문지를 때가 더 많습니다), 아침마다 날씨에 맞는 색깔과 재질의 옷을 골라 입힙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책도 읽어줍니다(저는 딱 다섯 권 약속을 받고 읽습니다). 간밤에 몇 번씩 깨는 둘째 아이를 얼러주고(첫째 아이 땐 자주 깨서 돌봐줬는데 이젠 남 일처럼 푹 잡니다) 이틀에 한 번씩 목욕을 시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도장에서 먹을 저녁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이 안에 저의 모습은 그저 배경처럼 존재합니다. 내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스스로를 헬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 머리를 감기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라도 개는 날이면 아내의 칭찬과 그에 상응한 대우(우쭈쭈쭈 우리 아기 잘했어)를 기다립니다. 생물학용어로 ‘큰 애기’입니다. 지쳐 잠든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양쪽에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라는 커다란 나무에 붙어 있는 여린 나뭇가지 같습니다. 아내보다 근육이 많고 폐활량이 좋고, 뼈가 굵은 저보다 아내라는 나무가 지금껏 이 가정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연애 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하면 수줍게 웃었던 사람인데...5월 5일은 그 거짓된 시간이 5년째 되는 날입니다. 미안합니다...아주 많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