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고등학교 다닐 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자 두 분은 남자는 기술이다, 기술을 배워야 자식새끼 굶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공대에 들어가서도 강의실 구석에서 소설을 쓰며 활활 타오르는 창작 욕구를 삭이지 못하자 두 분은 문예지에 등단한 후에 보자 하시며 은근슬쩍 공무원 시험을 권하십니다. 군에서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제대하면 문예창작학과로 편입하고 싶다고 하자, 국방일보에 글 한 번 싣고서나 그런 말 하라며 단칼에 말꼬리를 잘라 버리십니다. 어찌 인연이 닿아 평론을 전공하는 분이 아드님은 글을 써야 한다고 하자, 부모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설가들이란 소위 예술한답시고 술이나 마시고 여자들과 노닥거리는 문란한 삶을 살 거라며 다시 공무원을 권하십니다. 문인과 한량을 동의어로 보시는 두 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독립하여 이제 아무런 방해 없이 원하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새하얀 백지를 마주하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정표 하나 없는 텅 빈 벌판에 홀로 서 있는 황망함에 얼른 전원을 꺼버립니다. 내일 쓰자. 그리고 또 다음 날이 되면 아이들 재우고 쓰자. 또 다음 날에는 주말에 쓰자....
두려움과 게으름을 혼동해 버리고 형태 없이 재단된 글들은 헐겁고 성긴 모양으로 흩어져 짜깁기 하기도 어려운 모양새입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쓸 테니 노트북이 필요하다며 마트에서 제일 고가의 노트북을 호기롭게 집어 들었던 남편의 모습을 아내는 기억합니다. 뻘쭘(?)한 마음에 아내에게 말합니다.
누가 그러더라. 소설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된다고. 나는 좀 아닌가 봐.
지난 칠 년 동안 게으른 남편의 작심삼일 선언을 하루 단위로 목격한 아내는 조용히 대꾸합니다.
그게 바로 끈기라는 거지. 타고난 운동 신경보다 끈기를 천성으로 지닌 사람이 더 복 받은 건 지도 몰라.
선수 시절부터 은퇴 후 코치 시절까지, 숱하게 보았던 승리와 패배의 순간 속에 모든 장식과 변명들을 걷어내고 오롯이 남는 건 끈기 하나라는 말에 가슴 한편이 뜨끔합니다.
어린 시절,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현관에서 들리는 부모님의 언쟁이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군복 벗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긴 한숨과, 당장 집하고 아이들 학자금은 어떻게 할 거냐며 다 큰 어른을 얼러 부대로 내보내는 어머니의 목소리. 부모님은 그렇게 원치 않았던 길을 자식 때문에 삼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꾸역꾸역 견디고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못난 아들은 또다시 그런 부모님을 탓합니다.
왜 당신의 아들을 이렇게 끈기 없는 사내로 기르셨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