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일 아침거리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이웃보다 더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중에서
태권도장에서 아이들과 흔히 하는 운동 중의 하나가 미니 축구입니다. 상처 입기 쉬운 얇고 여린 육체들이 양은냄비처럼 순식간에 달아올라 고성을 주고받다 급기야 주먹다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사무실에 불려 온 녀석들은 흥분과 억울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쉽니다. 눈초리가 사납기 그지없습니다. 그럴 땐 외려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왜 싸웠어? 그 한 마디에 땀에 찌든 도복 위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굽니다.
반대로 품새나 기록경기는 조용히 흘러갑니다. 못내 지루하다는 표정도 가끔 엿보입니다. 예전보다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고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경기인데 경쟁이 없어서인지 심드렁합니다.
가끔 아이와 소아과에 가거나 아이 또래가 많이 모이는 모임에서 흔히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키가 크네, 몸무게가 많이 나가네, 벌써 영어를 하네, 한글을 떼었네….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지만 마치 격렬하게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 축구선수처럼 서서히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뒤척이다 일어난 새벽녘, 엄마 품에 곤히 잠든 두 딸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여느 명상음악보다 안정감을 줍니다. 냉장고에는 아침에 끓여준다던 눈 맑은 대구 한 마리가 잘 손질되어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로 얻는 만족이 진정 내 것이 아님에도 그 신기루를 좇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는 건 아닌지...친구와의 전화에 “난 별일 없이 산다”라고 자족의 한 마디 툭 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