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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Apr 06. 2018

너의 이름은

민.원.상.담.실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질문을 큰 딸에게 던집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딸아이는 주저 없이 엄마라고 답합니다. 베란다 창을 넘어온 가을바람에 혈액순환이 안 되는지, 저녁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어 속앓이 하는지 명치끝이 아팠습니다. 아이 앞에 마주 앉아 초코 맛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주며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엄마가 더 좋다니까!

여섯 살 된 막내는 이 질문에 항상 둘 다 좋아 라고 했는데, 아홉 살 된 큰 아이는 재래시장에서 무딘 칼날로 생선 대가리와 내장을 툭툭 썰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주는 아주머니처럼 좀처럼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렇게 단박에 아빠의 이름을 쳐내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주사를 부리거나 외박을 하지도 않았고, 딸아이의 돼지 저금통을 털어 도박 미천을 삼지도 않았습니다. 금요일 밤에 야식으로 맛탕을 만들어 주고, 토요일 점심에 까르보나라를 짜파게티만큼 쉽게 만들어주는 아빠였습니다.

아빠는 힘들면 화내잖아. 엄마는 안 그래….

그거였습니다. 감정을 통제 못해 터져 나온 울화에 아홉 해 동안 고스란히 피폭을 당한 아이는 원자력 발전소 같은 아빠의 몸짓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던 모양입니다. 

큰 아이가 일곱 살 무렵, 아내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고 자동차 열쇠를 챙겨 나가는 저를 향해, 아빠 가지 마 하는 딸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습니다. 그 눈을 마주하기 힘들어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서 베란다를 바라보니 빨래 건조대 옆에서 덜 마른빨래처럼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성난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멈추었어야 했습니다. 그때 발걸음을 돌려 투게더를 사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머리를 맞대고 아이스크림을 퍼 먹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아빠와 엄마가 똑같이 좋았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맨발로 베란다에 앉아 긴 시선으로 아빠를 붙잡아 주었던 그때가 말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많은 아이들과 만으로 육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열어준 것은 아닐까, 상처 준 것은 아닐까 매일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이 기뻐하면 덩달아 좋았고, 아이들이 시무룩해하면 제 버릇 개 줄까 싶어 좌불안석했습니다. 불안한 저의 모습이 행여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싶어 도장에 가기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이들이 빡쌤!, 빡쌤! 하며 손을 흔듭니다. 운동장에서, 삼 층 창가에서, 아이들이 저의 이름을 부릅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도 불안했던 그 존재를 여러 아이들이 신뢰해주며, 주저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 갈길을 갈 수 있도록 그 이름을 불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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