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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24. 2019

내게 무해한 사람

민.원.상.담.실











자신이 제법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그런 자신과 함께 있으면 모두 행복해질 거라 착각했던 시절, 남들처럼 무난하게 결혼을 하고, 무탈하게 아이 둘을 낳고 그렇게 가정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하는 결혼이라서, 또 어릴 때부터 어디 모난 데 없이 자란 터라 누구보다 잘 섞일 거라, 더할 나위 없이 평탄한 가정이 될 거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빠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 예상 못한 화학반응처럼 끓어오르며 맑고 투명한 플라스크 주둥이 밖으로 격한 감정의 거품을 뱉어냈습니다.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사내’라는 해묵어 군내 나는 권위를 버리지 못해서, ‘아들’로 불리던 시절처럼 아내와 자녀에게도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나 잘한다고 생색내는 모습을 무시하는 시선이 싫어서 그렇게도 부글거렸습니다. 

해마다, 노란 지단이 소복이 올라간 떡국을 비워낼수록 그런 자신이 더욱 두려워집니다. 언제쯤이면 나를 둘러싼 사람들 안에서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유명 빵집이 아니라, 문턱이 낮은 빵집. 빵 나오는 시간을 맞춰오면 오븐에서 갓 꺼낸 빵을 줄 수 있는 빵집, 재료 전부를 유기농으로 쓰진 못하지만 팔고 남은 빵을 아이들에게 데워줄 수 있는 무해한 빵을 주고 싶다는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서툴지만 계량을 돕고 설거지를 하고 어깨를 주무르며 결혼 내내 후벼 팠던 생채기를 어루만집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사라진 맑고 투명한 플라스크 같은 1월의 마지막 날, 빵값을 치르던 손님이 조심스럽게 선물이라며 뜨개질한 선인장 모형을 건네주었습니다. 얼마 안 걸렸다고 했지만 만듦새로 보아 엉치뼈가 아플 만큼 쉴 새 없이 코바늘을 움직여야 나올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순간 또 다른 의미지만, 격한 감정의 거품이 흘러넘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무해한 사람’을 눈앞에서 만난 게 부끄러워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영감을 받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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