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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Jul 18. 2019

유리천장을 말하는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얼마 전 KBS스페셜 작가에게 쪽지를 하나 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는데 네이버 카페 어딘가에 남긴 내 글을 보고 쪽지를 보내왔다. ‘유리천장’과 관련한 내용을 기획 중인데 여성이 직장생활에 내에서 겪는 고충이나 어려움, 겪는 상황들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고 질문지를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질문 항목이 좀 당황스러웠다. 질문의 내용이 너무나 평면적이었달까. ‘일하는 여성’이라는 워딩에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을 집단화 해 질문 안에 구겨 넣은 느낌이었달까. 사람들은 ‘일하는 여성’이라고 하면 특정한 이미지나 고정관념을 가진 것 같다. 사실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들이라 각자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다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경영컨설팅 회사 미디어팀에서 10여년 근무했다. 매거진 기획/제작/취재 등을 주요 업무로 담당했고, 연구보고서라든가 단행본 등의 에디팅 업무를 오랫동안 맡았다.

목표지향적인데다 조직적응력이 좀 높은 편이라 근무 내내 인사고과 점수도 꽤 높았다. 29살 때 팀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조직 내에서 최연소였고 팀장 직책으로 여성은 처음이었다. 발령을 하루 앞두고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발령 당일 날 당시 본부장이었던 상사로부터 팀장 승진이 누락됐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다.

이유는 ‘그동안 조직 내에서 29살의 최연소 여성 팀장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인사고과가 좋아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 이사회에서 긴급 회의 끝에 반려했다는 소식이었다.

나 대신 팀장 발령을 받은 사람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나보다 5살 많은 남자 직원이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사고과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부지리로 팀장 자리에 올랐다.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억울한 생각이 컸다. 사표를 냈다. 하지만 수리되지 않았다. 상사들 눈에서는 내가 일 잘하는 머슴 같은 직원이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생각으로 더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 후 몇 차례 승진도 했었고, 연봉도 꽤 높았다. 하지만 결국 회사를 나왔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조직에서의 불이익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육아’ 문제였다.



결혼 후 첫째를 낳은 후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맡아 주셨다. 아이가 돌이 지나자 친정어머니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맡길 수 없게 됐다.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으나 양가 가족들의 반대, 남편의 반대가 컸다. 모두들 아이의 육아에 관해서라면 나만 바라보는 느낌이었달까.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갖게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갔다. 말 못하는 아이였지만 분리불안 증세도 약간 보였다.

‘엄.마.로.서.....’라는 생각에 스스로 갇혀 고민하게 됐다. 결국 남편보다 연봉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책임지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여성들이 일을 포기하는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조직의 유리천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유리천장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보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다. 제도나 환경 등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 일하는 ‘전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다른 것이다. 그건 유리천장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공기’의 문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꾸기 힘들뿐만 아니라 바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다면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 공기는 무엇일까?



첫째, 여성, 즉 엄마로서 응당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희생’, ‘돌봄’ 등에 관한 문제다. 그것의 출발점은 바로 ‘가정’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심플한 이유 중 하나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결혼 후 임신과 육아를 거치면서 많은 여성들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피폐해진다. 아이에 대한 ‘돌봄노동’의 주체는 부부 공동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90% 이상이 여성에게 쏠림현상이 일어난다.

퇴근 후 저녁상을 위해 장을 보고, 저녁을 차리고, 아이를 씻기고 함께 놀고 재우는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은 주체가 된다. 대신 남편은 조력자에 머물 뿐이다.

어찌됐든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견디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에 대해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한다. ‘수.퍼.우.먼’이라고.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추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엄마로서도, 커리어우먼으로서도 성공했다고 말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다뤄지고, 그들의 삶이 마치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포장되어 나간다. 그걸 지켜보는 나 같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 허탈감 등의 감정을 가진다(물론 나는 그런 수퍼우먼들을 보면 그 뒤에 돌봄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남편이 아니라 아이의 조모일 확률이 높다. 조모... 그들 또한 여성이다).



소위 말하는 유리천장을 깨는 일은 여성이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유리천장을 깨는 주체는 남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남편들이다. 남편들이 돌봄노동에 참여하게 되면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조직 내 유리천장을 깰 수밖에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그러한 공기가 환기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편들, 남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기 싫어할테니까 말이다. 돌봄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에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 남성들이 많으니 말이다. 물론 최근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두 번째 공기는 ‘여성 자신’이다.

나의 가족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나에게는 오빠가 하나 있다. 나와 동갑인 새언니는 잘 나가는 직장에서 16년 간 근무했다. 팀장이었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지만 두 사람은 신혼처럼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새언니가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 뒀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빠의 연봉이 좀 높다보니 외벌이어도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 내가 뭐라고 참견할 권리는 없다만, ‘새언니’라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일하는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여간 아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새언니에게 일이란 결혼 후 ‘옵션’으로 전락한 것이니까.

남성들에게 ‘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들, 특히 벌이가 좋은 남편을 둔 여성에게 일은 ‘할까 말까’ 하는 옵션의 문제로 전락해 버린다. 아무리 석박사 등의 좋은 스펙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흔히 ‘취집한다’라는 말이 있다. 결혼과 동시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동네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꽂이를 배우고 쇼핑을 하며 여유롭게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삶.... 많은 여성들이 바라고 꿈꾸는 삶이다. 아무리 좋은 학력과 스펙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여성들을 가리켜 우리는 말하곤 한다. “너 시집 잘 갔구나!”

대한민국뿐 아니라 가정 또한 작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힘이 균형은 돈을 버는 쪽으로 기울여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여성은 월급을 가져다주는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고,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나아가 잘난 아들을 둔 시댁의 눈치를 보게 된다. 평등한 부부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할 만큼 일했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은 결혼한 여성들이 흔히 갖는 생각이다. 물론 아닌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주변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여성들은 ‘남편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며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편의 능력과 벌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

주변 사람들도 ‘남편 잘못 만나 ‘고생’ 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어느 순간 ‘남편복, 시댁복 없는 여자’가 된다. 여자는 능력 없는 남편, 재산 없는 시댁을 자기도 모르게 무시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넋두리하기 시작한다.

최악은 그런 여성들이 ‘엄마’일 경우인데,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생각한다. ‘아... 역시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KBS 스페셜이 기획하고자 하는 내용에 개인적으로 공감하고 있으며, 그 의도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러나 나는 유리천장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이러한 ‘공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유리천장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을 그리는 미디어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단편적으로 일일드라마만 보더라도 여성들의 역할은 무척 한정되어 있다. 가정집을 그린 세트장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식사하는 장면에서도 여성이 ‘보스석(boss)'에 앉는 경우는 없다. 100% 집안의 가장 대장(?)인 남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 세세한 것들부터 조금씩 변화하지 않는다면 ‘공기’가 바뀌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최근 들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 남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뚜렷하다. 어쩌면 나조차도 오랫동안 ‘습득’되어 온 ‘교육적 효과’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고정관념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리할 때는 lady first, 불리할 때는 남녀평등(여남평등이라고 왜 쓰지 않는지..)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작가에게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보낸 후 KBS 스페셜팀이 어떤 기획을 내놓을지 궁금해졌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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