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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Oct 06. 2022

다시 솔로, 다른 홀로

다섯살 무렵 외할머니가 나에게 지어준 별명은 '울보'였다.

나는 잘 우는 아이였다. 목소리도 겁나게 커서 한 번 울면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고 전해진다(전혀 기억에 없다).

그렇게 잘 울던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감과 동시에 울음을 뚝 그쳤다. 남자아이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하고 난 뒤에도 씩씩거리기만 할뿐, 눈물 한 방울 흘린 기억이 없다. 


사춘기 때는 소설 책을 읽으며 눈물을 찔끔 훔쳤던 기억이 난다. 친구가 '이 책 정말 슬퍼. 펑펑 울게 될거야'라고 말했는데, 울긴 울었으나 펑펑은커녕 눈물을 찔금 흘린 정도였다. 책의 제목은 '잃어버린 너'였다(최루성 자전소설로 꽤 유명하다).


'어떤 경우라도 징징대지 않는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매사에 징징대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탓인지 머리가 굵어지자 반골기질이 발동되어 '나는 징징대지 말아야지! 어떤 경우라도!' 수없이 다짐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며 힘든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인생에 어디 하나 쉽지 않은 일이 어디 있는가 생각하며 꿋꿋이 헤쳐나갔다. 

상사에게 깨지고 화장실에서 훌쩍거리는 모습은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울 일이 있을 때는 오히려 전투력이 상승했다. 

"본부장님께서 지적하시는 부분은 ~~이러한 면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저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본부장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라고 굉장히 싸가지 없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이십대 사회초년생이 그런 말을 하다니.... 훗날 매우매우 반성했다).

하지만 그 덕에 나의 별명은 '쌈닭'이 되어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십여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솔로가 되기를, 홀로 살기를 선택했다. 


그는 알콜중독을 앓고 있다. 그를 '알콜중독자'로 정의하지 않는 것은 알콜중독도 일종의 병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체력으로 가려졌던 알콜중독 성향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지만 중독은 사람의 본래 모습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알콜중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을 때, 나는 그것이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참 많이도 다퉜다. 1년 동안 맥주 500cc 한 잔도 겨우 마실까 말까 하는 '본투비 금주가'인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전 남편(엑스남편)은 좋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알콜로 인한 그의 전두엽의 변화까지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나의 생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연이어 아이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리라 판단했다. 

아이들에게는 멀쩡하고 건강한 어른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 명의 어른이 병들어 있다면 다른 한 명의 어른이라도 건강하게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시 솔로' 선택은 절대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징징대지 않겠다는 오랜 신념은 밤마다 박살이 났다. 엄한 일기장이 그 대상이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과 하소연이 장황한 문장이 되어 종이 위에 흘러넘쳤다.

부모형제, 친구들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징징대기 싫었다. 알콜에 취해 있는 엑스남편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스트레스는 몸으로 나타났고 위와 장이 고장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의 신체에서 뇌는 머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위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무게가 8kg 가까이 빠졌다. 덕분에 결혼 전 입었던 옷들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기적을 경험했다. 


수도 없이 다퉜고, 수도 없이 애원했고, 수도 없이 설득했고, 수도 없이 포기했다. 

슬픈 것은 엑스남편도 알콜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가장 원하고 있었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엑스남편의 뇌는 알콜이 체내에 있을 때를 '정상'으로 인식했다. 알콜이 없다는 것은 체내에 뭔가 '버그'가 들어온 상태이므로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신호를 보냈다. '너의 신체를 정상으로 만들어! 어서! 알콜을 집어 넣어~!!!!'


마침내 그는 섬망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누군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있고, 그 말대로 따라야 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매우 비정상적인 행동과 말을 하고 있지만,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징징대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가족들과 형제들에게 엑스남편의 상태에 대한 '알밍아웃'을 했다. 

그후의 일들은 신속하게 흘러갔다. 

남편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아이들을 홀로 키우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다행이 몇 년 간 엑스남편과 같은 집에 살아도 홀로육아를 철저히 강제당하고 있었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물리적인 일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기저귀를 떼자마자 아이들과 2주간 라오스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 속 근육이 생긴 것 같다. 


엑스남편과의 협의이혼도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와 나의 행복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에 포커스를 맞췄다. 엑스남편은 다행이 메타인지가 살아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펼쳐지게 될 지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오래 전 금주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가족 중 알콜중독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 경우,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생생한 사례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우리의 상황과 아빠의 상태는 모를거야. 내가 지켜줄게. 당신은 회복에만 신경 써'


서류 접수를 하러 법원에 갔을 때도 우리는 사이좋은 여느 부부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판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알콜에 정복 당한 그가 원망스럽고 미울 때도 많았지만 엑스남편이 어린시절 자라온 이야기를 들은 후 그가 중독 성향에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모두가 알콜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엑스남편은 단지 그러한 경험들을 대차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그릇이 없었을 뿐이다(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평화롭고 조용하고 평온하게 나는 '다시 솔로'가 되었다. 

그러나 엑스남편과의 의리는 여전히 있기에 '다른 홀로'라고 해야 솔직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를 부를 때 '여보'라고 부른다. 그도 마찬가지다. 입에 익은 호칭이라 바꾸기 어려운데다 아이들이 보고 있을 때면 쓰던 호칭을 그대로 쓴다. 

평온하게 다시 솔로가 됐지만, 그가 짐을 챙겨 본가로 가던 날, 주방에서 조용히 한참을 울었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슬퍼서 한 잔, 후회로 한 잔, 원망으로 한 잔, 또 슬퍼서 한 잔... 그렇게 또 알콜을 마셨을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때가 있었다.

이혼가정의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이 붙겠구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너무 아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생각을 전환했다.

나의 아이들은 '불행한 아이들'이 아니라 '되물림 될 뻔한 불행으로부터 보호된 아이들'이라는 것을... 

엑스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해해 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나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크고 단단한 그릇을 가진 아이들로 키울 자신은 있다. 


다시 솔로, 다른 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하루하루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엑스남편은 오늘도 알콜과의 전쟁으로 고군분투 중이겠지만

적어도 나와 아이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일단, 오늘은 괜찮다. 

그것 하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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