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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Oct 06. 2022

실패한 결혼에 대한 단상

그들의 결혼은 실패했다. 그가 세상을 떴을 때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사람이 늙으면 죽는거야”라는 게 그녀가 한 유일한 말이었다.

그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서서히, 조용히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가 살아온 시간과 추억은 신기루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그에게 그녀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식들을 잘 건사했으며, 젊어 고생한 덕에 노후는 안정적이었다. 검은머리 팥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았고,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인생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결여된 것이 하나 있었다. ‘교감’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와 단절된 채 꽤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사랑이라는 낯간지러운 감정은 아니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눈치 챌 수 있는’ 교감이라는 게 그들 사이에는 흐르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들은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렸다.

만혼이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도 그녀도 결혼이 늦었다. 마침 선 자리가 들어왔고, 나이 꽉 찬 남자와 여자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적.당.히’.

그들은 ‘적당히’ 집안 사정이 맞았고, ‘적당히’ 교육 수준도 맞았으며, ‘적당히’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시점에 결혼식을 올렸고, ‘적당한’ 시점에 첫 아이를 낳았고, 또 ‘적당한’ 시점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 시절이 다 그랬듯 그들도 살아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감내했다. 손가락뼈가 휘어지도록 일을 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그도 그녀도 생각했다. 그러나 서로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고난을 서로의 탓으로 돌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들은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혼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용기가 없었다. 이혼은 인생의 실패라고 단정 지었다. 저주와 같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남자는 일에 매달렸고, 여자는 혼자만의 시간에 머물렀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과 마음 간의 거리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어느덧 죽음을 눈앞에 둔 나이가 되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를 서서히 밟아가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에 나는 없었다”. 그는 자식들이 적당히 편하게 살 만큼의 부를 일궜지만 그게 다였다. 자식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부모를 가졌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약간의 유산이 다였다. 자식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이나 즐거웠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의 결혼은, 그녀의 결혼은 불행히도 명백한 실패로 끝났다. 적어도 제3자인 내가 보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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