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ngmong Jul 08. 2019

똘아이 상사 때문에 회사 생활이 괴로운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겠죠?”


예쁘장한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빛을 가진 당신은 햄버거를 씹으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사람이 뭔가 답답한 게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털어놓고 싶은 법. 아마도 당신은 그 ‘아무나’로 나를 선택한 모양이다. 


대학원에서 알게 된 당신은 깍쟁이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반전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당신은 혼자 자취 생활을 하며 서울 살이 중이다. 겉으로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듯 하지만 당신은 무척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 살았더라면 좀 더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굳이 서울로 올라와 고생을 자처하고 있다. 서른 넘어서까지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살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싹싹해 어딜 가나 환영 받는 당신은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당신 말에 따르면 한 명의 또라이 상사 때문이다. 당신은 또라이 상사의 만행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 또라이 상사가 딱 그런 유형이에요. 제 앞에서는 온갖 상사 갑질을 하면서 다른 직원 분들 앞에서는 되게 연약한 척 해요. 저는 얼떨결에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아요. 자신의 실수를 제 탓으로 돌리지를 않나, 자기가 처리하지 못한 일을 저에게 떠맡기질 않나, 일이 힘들다고 사람들 앞에서 훌쩍거리다가도 제 앞에서는 온갖 막말을 늘어놓고…. 정말 열거하자면 수도 없어요.”


회사의 초창기 멤버라는 그 또라이 상사 앞에서 당신은 찍소리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가만히 듣기만 하는데도 고구마 열 댓 개가 목구멍에 막혀 있는 기분이다. 햄버거를 우적거리며 나는 한 마디 툭 던졌다.


“미친X네요.”


뭐가 통쾌했는지 당신은 햄버거가 입 밖으로 폭발하듯 미친 듯이 웃었다. 역성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 했던 건지, 대신 욕을 해준 게 시원했던 건지 당신은 또라이 상사의 만행을 줄줄이 고하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 외에 서울에는 친구가 몇 없어 시원하게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했었나 보다. 




DDoray is Everywhere

당신의 말을 듣다보니 나도 어느새 빙의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겪었던 또라이 상사들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단언컨대 ‘DDoray is Everywhere', 즉 또라이 상사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만났던 또라이 상사는 크게 네 부류였다. 


첫 번째가 허허실실형 상사다. 능력 없는 상사가 대표적이다. 일을 제대로 지시하지도 못하고, 후배들이 해놓은 일마저 망쳐놓기 일쑤다. 무슨 일이든 허허실실 대는 경우가 많아 대체적으로 사람은 좋아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며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두 번째가 CCTV형 상사다. 후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감시한다. 심지어 자기가 먼저 퇴근할 경우 그 다음날 일찍 출근해 후배의 컴퓨터 로그아웃 시간을 체크하기도 한다. 점심시간 때 누구와 밥을 먹는지, 회의실에서 누구와 차를 마시는 지 일일이 보고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세 번째가 갱년기형 상사다. 아침에는 기분 좋게 하이파이브를 했다가 오후가 되면 갑자기 ‘누가 건드리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겠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럴 때 재수 없게 걸리면 회의실에 불려가 족히 2∼3시간은 의미 없는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네 번째가 미투(Me too) 촉발형 상사다. 보수적인 마인드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으며 군대 이야기를 즐겨하는 반면, 가끔씩 시를 읊거나 문학소년의 기질을 보이려고 애써 노력하기도 한다. 회식 후 가끔 노래방에 가면 은근슬쩍 여자 후배의 몸을 터치하기도 하고, 농담이라고 건네는 말은 성희롱에 가깝다.




받아들이든가, 받아치든가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별의별 상사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물론 운 좋게 당신의 성장을 도와주는 상사를 만나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있다. 

내 후배 중 하나는 여상을 졸업하고 이렇다 할 꿈도 없이 취직을 했는데, 그 회사에서 만난 상사가 후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야간대학 입학을 추천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믿어주는 한 명의 상사 덕분에 후배는 현재 잘 나가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인복(人福)이 상사복(福)과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상사복(福)은 랜덤이라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과감히 이렇게 말한다. 


“받아들이든가, 받아치든가 둘 중 하나를 하세요!”


합리적이지 않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복잡한 인간관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거나  상사에게 찍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참을 인’을 가슴에 새기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 난 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내 경험상 참는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거나 나아진 적은 거의 없었다. 부당한 대우나 상황을 냉철하게 받아들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다음 밖으로 드러내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입장이다. 단 누가 들어도 설득력이 있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상황을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당신이 상사가 아니라 부하라는 사실이다. 이게 뭔 말인고 하니, 부하는 상사에 대해 마음껏 뒷담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가 되면 마음에 안 드는 부하에 대해 마음껏 뒷담화를 할 수 없다. 누워서 침뱉기가 되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 뒷담화를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부하직원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뒷담화나 하고 있을까.’


중이 절을 떠나는 것은 절이 싫어서가 아니다. 중이 싫어서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해보는데까지 해보고 도저히 답이 안나온다 싶으면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 말하고 싶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람이 힘든 것은 정말 못할 짓 아니던가.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이 가는 곳이 어디든 또라이는 언제나 출몰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자 당신의 표정은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마음이 진정됐다는 당신은 좀 더 강인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나 또한 당신이 냉철한 마음으로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점을 믿는 당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