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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Jul 09. 2023

한여름밤의 온도차

딩크 부부의 밤

01. 남편의 에어컨 사랑


"띠리링~"


사르르 잠이 들려는 순간, 갑자기 작동하는 에어컨 소리에 깜짝 놀라 깬다. 머리맡 위 서늘한 기운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솔솔 불던 선풍기 바람을 순식간에 밀어낸다. 살짝 짜증 나는 마음을 누르며 한쪽 발을 침대 바깥으로 최대한 뻗어 선풍기를 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린 후 느릿느릿한 속도로 몸을 일으킨다. 한껏 열어젖힌 창문을 닫는다.


회사에서 철야당직 중인 남편이 내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 맞춰 에어컨을 켰다. 스마트폰으로 집 방 안 에어컨의 원격 조정이 가능한 시대를 한껏 누리고 있다. 자는 내가 혹여 덥지 않을까 걱정돼 켠 것이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한숨이 먼저 터져 나온다. 창문을 통해 잔잔히 들어오는 살짝 더운 기운의 바람과 그보다는 조금 시원하고 일정하게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에 적응해 막 잠이 들려하던 때다.


잔잔한 바람을 순식간에 무력하게 만들고 서늘한 기운을 강하게 몰고 오는 에어컨의 바람은 익숙해진 온도를 교란시다. 인위적인 냉방은 잠시 뒤 닭살을 돋게 할 정도로 강렬해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다. 감기 기운처럼 코가 막히고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에어컨을 끄고 다시 창문을 열고 누웠다. 내가 선호하는 온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이,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에어컨 왜 껐어?"

"추워서. 난 선풍기 바람이 좋아. "

"왜?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지. "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남편이다.




02. 너와 나의 온도차


우리는 연애시절부터 서로의 체감온도차를 감지했다. 하지만 온도차는 불편하긴커녕, 두꺼운 콩깍지 덕에 로맨스를 증폭시키는 소재로 활용했을 뿐이다.  


"추워"라며 오들오들 떨면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은 주저 없이 자신의 옷을 벗어 내 몸을 감싸줬다. "자기 감기 걸리겠다"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하면 남자친구는 "난 안 추워"라며 큰소리쳤다. 추위를 참으면서 나를 배려해 주는 그 마음에 다시 한번 더 반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진짜 안 추운 거였다.


결혼 후 맞은 첫여름부터 서로가 느끼는 온도차를 직시하게 됐다. 남편은 더위에 민감하고 추위에 둔했다. 나는 추위에 예민하고 더위에 둔했다.


남편은 에어컨을 켜고 잠들기를 원했지만, 내게 에어컨 바람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차고 감기 기운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취침모드로 켜놓고 잠들면 하루종일 콧물이 나고 몸살기가 있는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 덕에 그 덥기로 유명한 대구, 일명 대프리카에 살면서도 에어컨은 1년에 한두 번 켤까 말까 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바람에 익숙했다. 그마저도 더운 기운이 느껴지면 선풍기 정도의 바람이면 만족했다. 그럼에도 더운 건 참아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에어컨이 있는데 켜지 않고 더위를 참아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름 내내 냉방병을 달고 살자 남편도 결국 선풍기를 켜고 자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이 잠을 설쳤다. 밤새 자다 깨다, 바닥에 누웠다가 침대로 올라왔다가를 반복했다. 옆에서 자는 나도 덩달아 선잠을 잤고 하루종일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침대에서 지냈다. 신혼의 열정이 온도차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03. 현실적인 해법은


어느덧 세월에 흘러 12년 차 부부가 됐고, 지구는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올여름은 엘니뇨까지 더해 역대 가장 더울 거라고 경고한다.


당장 올여름 열대야를 어떻게 버틸까 덜컥 겁이 난다. 벌써부터 자기 맘대로 안방 에어컨을 켜대는 남편을 보면 냉방병을 달고 살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을 피할 수 없다. 냉방병부터 겁 나는 걸 보면 온도차를 극복하게 만들었던 부부 열정은 어느새 사그라들었나 보다.  


온도차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본다. 생각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부부들이 많다는 점에 놀랐다. 그리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비법도 있었다.


바로 '각방'.


자녀가 생기면서 부부는 자연스럽게 각방을 고 온도차를 극복했다는 글들이 상당수였다. 온도차로 잠을 설칠 일도 없고, 서로 만족스러운 온도에서 기분 좋고 개운하고 잘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각방을 쓰는 부부가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여성 포털 사이트 이지데이가 성인 남녀 4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각방을 쓰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2%였다. 10~29년 차 부부의 각방 비율이 높았다.


출처 : 여성조선(http://woman.chosun.com)



부부 각방은 체감온도가 다른 우리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답이라는데 나도 동의했다.



04. 아직은 이르다


사흘 연속 장마와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반복되던 날, 남편에게 각방을 슬쩍 제안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에어컨 바람을 내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켤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각 방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다시 합치기가 힘들다는 이유다. 거기다 자녀가 없고 가족 구성원이 달랑 2명인 우리가 싸운 후 각 방 쓰면 화해하기도 어렵다는 논리도 폈다.


각 방이 부부 사이에 좋지 않다는 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사실 나도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각방은 절대 쓰지 마라. 서로 살을 붙이며 살아야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는 등의 속담, 조언들 때문이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으로 침대에 누워 남편과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장난도 주고받는 ‘베개 토크’ 시간도 사라지는 건 싫다.


가족이 단 둘이라 싸우고 난 뒤 각 방을 쓰면 대화할 일도, 화해할 계기도 없어질 수 있다는 남편의 걱정에도 동의한다. 자녀가 있다면 아이가 화해의 계기를 만들어주거나 아이 문제로 불가피하게 의논할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딩크 부부에게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30년째 부부 문제를 연구해 온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장클로드 카우프만 교수는 <각방 예찬>이란 책에서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자느냐 각방을 쓰느냐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은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욕망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욕망 간의 갈등”이라고 밝혔다.


각방을 선뜻 실행하기에는 걸리는 점이 많은 걸 보니 아직까지는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큰가 보다. 남편은 에어컨을 자제하기로 하고, 나는 성능 좋고 바람이 강한 선풍기를 사서 여름밤을 버텨보기로 했다. 올해 여름밤은 또 이렇게 지나간다.


유튜브 정반대부부: 부부싸움보다 무서운 한여름밤 온도차


정반대부부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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