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호스! "경기나 선거 등에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뜻밖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실력 있는 선수나 후보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원래는 경마 용어였다. 과거 영국에서 경마 기수들은 우승 후보로 널리 알려진 말을 소유한 마주(馬主)의 배당률을 높여주기 위해 해당 말의 털을 염색하는 게 암묵적인 관행이었다. 본래의 털 색깔보다 더 짙게 염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다크호스'라고 불렀다.
'다크호스'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계기는 소설 ≪The Young Duke≫ 출간(1831년) 이후부터다. 영국의 수상까지 역임한 유명 작가인 벤자민 디스라엘리(Benjamin Disraeli)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경마에서 돈을 걸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dark) 말(horse)’이 우승하는 바람에 큰돈을 잃는 장면을 묘사했다.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던 야구선수 강정호도 다크호스로 불린 적이 있다. 2015년 당시 피츠버그 팀에 입단할 때의 일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강정호를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처음 참가하기 때문에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선수이지만, (피츠버그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라고 소개하며 '다크호스'로 평가했다. 그리고 강정호에게 어울리는 곡으로 미국 여가수 케이티 페리가 부른 '다크호스'를 꼽기도 했다.
▲ 이 곡은 빌보드 Hot 100 순위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다.(출처: 유튜브)
다크호스 후보 대통령에 당선되다.
미국의 대선 역사상 최초의 다크호스 후보는 제11대 대통령인 제임스 K. 포크다. 포크는 테네시 출신으로 주 의원, 연방 하원의원과 하원의장, 주지사를 역임했지만 대통령 후보로선 무명에 가까웠다. 184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 하기 직전의 주지사 선거에서 두 번을 연거푸 낙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84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9명이 후보로 나섰다. 대통령을 역임한 마틴 V. 뷰런, 부통령을 지냈던 리처드 M. 존슨, 앤드루 잭슨 정부에서 전쟁장관이었던 루이스 캐스와 같은 쟁쟁한 후보에 비해 포크는 지명도가 한참 떨어졌다. 게다가 대통령을 한 차례 역임했던 뷰런이 무난히 지명될 것으로 모두가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 제임스 K. 포크는 키가 작아(173cm) '그루터기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출처: HeritageGalleries.com)
첫 번째 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마틴 M. 뷰런이 146표, 루이스 캐스는 83표, 리처드 M. 존슨이 24표를 얻었다. 제임스 K. 포크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 지명에 필요한 3분의 2를 아무도 확보하지 못했다. 3분의 2를 확보한 후보가 나올 때까지 투표는 계속되었고, 7번째 투표 때까지 포크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이변은 8번째 투표에서부터 일어났다. 뷰런이 104표, 캐스가 114표, 그리고 포크가 처음으로 표를 얻었는데, 무려 44표를 얻은 것이다.
마침내 9번째 투표에서 다크호스의 신화가 일어났다. 뉴욕 주 대의원단이 뷰런을 버리고 대신에 포크를 지지하자 다른 주의 대의원단들도 덩달아 포크를 지지하면서 다크호스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포크는 전당대회 투표가 이루어지는 동안 전당대회장이 아닌 고향 테네시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사실을 일주일 후에야 알게 되었다. 자신조차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선에서 겨룰 휘그당의 헨리 클레이는 포크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소식을 한동안 믿지 못했다. 휘그당 신문은 “도대체 포크가 누구인가”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조롱할 정도였다. 민주당의 부통령 지명을 목표로 했던 다크호스 후보 제임스 포크는 184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헨리 클레이를 170 : 105로 물리치고 미국의 11번째 대통령이 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참 고>
1844년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민주당의 포크 후보는 두 가지 공약을 내세웠는데, 하나는 텍사스를 병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영토를 북위 54° 40'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포크는 "Fifty-Four Forty or Fight(54도 40분이 아니면 전쟁)"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민주당의 주장은 캐나다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지만, 포크가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영국과의 협상 끝에 밴쿠버 바로 아래인 북위 49°로 미국의 영토를 정하는 것으로 타결되었고, 현재까지 국경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