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선 때 일이다.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폭로된 적이 있었다. 자신의 딸 이방카마저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였지만,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한 내용은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다.
힐러리 클린턴은 곧바로 트럼프를 공격했다.
"끔찍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 트위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하는 힐러리 클린턴(출처: 트위터 캡처)
원로 배우인 로버트 드니로도영상을 통해 트럼프를 맹렬히 꾸짖었다.
"그는 날라리, 개, 돼지, 사기꾼, 협잡꾼, 똥개, 머저리다. 자기가 하는 말에 신경도 안 쓰고, 숙제도 안 하고, 사회를 상대로 게임이나 하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국가적 재앙 그 자체다. 이 나라가 이 시점에서 이런 바보, 멍청이에게 놀아나서, 그가 현 위치까지 올라섰다는 게 실망스럽다. 트럼프는 사람들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데, 나야말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 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미래가 정말 걱정스럽다."
▲ 도널드 트럼프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로버트 드니로(출처: 유튜브)
공화당 안에서조차 트럼프의 후보직 사퇴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화당의 일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역겹다(sickened)"라며 트럼프와의 공동유세를 취소했고, 공화당의 마이크 코프먼 하원의원과 마크 커크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후보직 사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마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트럼프 후보를 교체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론 가능하다. 공화당 규약 제9조에 따르면, "사망, 사퇴또는 그 밖의 사유로 대통령 후보가 공석이 됐을 때"에는 전국위원회(RNC)가 후보자를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트럼프 후보가 음담패설로 인해 후보직 사퇴 요구를 받는 상황은 "사망, 사퇴 또는 그 밖의 사유"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내 인생에 물러난 적이 없다"라고 후보직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그 밖의 사유"를 활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밖의 사유"란 후보자가 생존해 있지만 "혼수상태, 뇌졸증 등의 질병으로 후보자가 사퇴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맘에 들지 않은 후보를 교체하는 근거로 "그 밖의 사유"를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공화당 규약을 개정하는 방안도 있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산하 법규위원회의 과반 찬성을 얻은 후, 전국위윈회 전체 회의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개정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새로운 규약은 개정 후 30일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선거를 한 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이 방안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후보 교체의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대통령 후보가 전당대회 이후 사퇴하거나 교체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부통령 후보는 그렇지 않다. 미국 역사상 부통령 후보가 전당대회 이후 바뀌는 일이 두 번이나 발생했다.
첫 번째는 19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윌리엄 H. 태프트의 러닝메이트였던 후보 제임스 셔먼이 그 주인공이다. 제임스 셔먼은 선거일을 불과 6일 앞두고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했다. 이에 공화당은 콜럼비아 대학 총장인 니컬러스 버틀러로 부통령 후보를 교체했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했다.
▲ 민주당 조지 맥거번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토머스 이글턴 후보(왼쪽)가 실린 <TIME>지 표지(1972. 7. 24)
두 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의 러닝메이트였던 토머스 이글턴이다. 3선 의원이었던 이글턴은 선거 기간 동안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전기충격 치료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결국, 부통령 후보 교체 여파로 조지 맥거번은 리처드 닉슨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CNN>은 미국 역대 최악의 부통령 후보 1위로 토머스 이글턴을 선정하기도 했다.
<참 고>
로버트 드니로의 영상은 본래 유명 인사들의 투표 독려 메시지인 '당신의 내일을 위해 투표하세요'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촬영됐다고 한다. 이 영상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최종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는데, <FOX News>가 삭제된 영상을 입수해 방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