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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bj Dec 27. 2023

비행기 안 미중년 신사의 아찔한 이중생활

12.19 치앙마이행 비행기 안에서

  지난주 늦은 밤 혼자 오른 치앙마이행 비행기 안. 먼저 자리를 찾아 앉아 있던 내 앞에 웬 멀끔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이내 안쪽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저가항공에는 바깥쪽 좌석 사람이 몸을 비틀어 공간을 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능숙하게 다리를 복도 쪽으로 뻗어 길을 만들었다.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목례를 건네 자리로 향하는 그의 스타일링에 언뜻 눈이 갔다.

사진은 그냥 내가 아는 최고의 미중년 톰 크루즈. 물론 저정도는 아녔다.

  몸에 꼭 맞는 검은 목폴라에 짙은 색 청바지, 그 위로는 단정하게 매무새를 다듬어 고정한 적당히 정갈한 머리스타일까지 풍기는 분위기가 참 깔끔했다. 얼굴에서 추정 가능한 연령대에 비해 한층 젊고 이국적인 느낌이랄까. 착석을 마치고서도 허리를 꼭 편 채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아니고 홍콩  대만 이런 쪽 신사분이신 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흘끗 보인 그의 휴대폰 속 언어는 한글이었다.


  '한국인이시구나, 정말 스타일이 좋으시네' '미중년이란 저런 것일까,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속으로 감탄하며 밑도 끝도 없이 나도 저분처럼 멋있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가 온전히 자리에 착석해 본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통상 비행기는 승객들이 모두 착석하고도 꽤 시간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이륙한다. 그 사이에는 승무원의 비상시 탈출 요령 안내가 이어지고 승객들은 그냥 멀뚱히 앉아있기 마련인 시간이 찾아온다. 탈출시 마스크는 저렇게 쓰는구나 힐끗 구경도 하고, '혼자 치앙마이라니' 스스로의 감회를 곱씹으며.  나의 경우에는 별 영혼 없이 멍 때렸다.  어차피 비행기 타면 데이터 못쓰는데, 저 말 마치면 비행기야 뭐 곧 뜨겠지. 전자기기는 모두 비행기모드 설정 후  잠시 일찍 손을 떼고 pre-디지털 디톡스 중이었다.


  그는 달랐다. 좌석 간 간격이 너무 가깝고 그의 전자기기 화면의 조도가 너무나 선명해 내가 의도적으로 훔쳐본 게 아님을 밝히고 말하자면,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손가락은 달랐다. 그의 엄지는 앞에서 산소마스크 착용 요령을 설명중인 승무원의 그것보다 100배는 분주했다. 쉴 틈 없이 스크롤을 내리느라. 그리고 손가락에 장단맞춰 끝없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건, 그의 인스타그램 뉴스피드였다.


  자극적인 썸네일의 릴스엔 몇 초 시선을 주다가 이내 또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무한 수직하강. 마치 그 맨 아래에 그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궁극의 가치가 그를 목놓아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타는 목마름으로 무언갈 바삐 찾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오랫동안 매크로 설정해놓은 듯 피드만 구경할 수 있을까 싶었다. 본의 아니게 시야에 계속 그 손가락질이 비친 게 약 10분째, 비행기는 아직 뜨지 않았고 그의 질주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전 닮고 싶던 멋있는 정돈된 어른 같던 그는.. 뒤졌다.


  진짜로 뭔가를 찾고 잇던 게 아니었겠느냐는 의심이 들기엔 그는 너무나 많은 어그로성 썸네일의 릴스들에 멈춰섰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웠다 거두었고, 그를 반복했다. 나는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고, 그가 언제까지 그 의식을 반복했는지까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비행기가 이륙을 온전히 마친 후 데이터 제공이 물리적으로  끊기기 직전까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보면 그가 특별한 중독 증세를 앓고 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그건 사실 나의 일상이기도 하다. 매일 퇴근하고 운동도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내 의지로 채울 수 있는 여가시간. '씻어야지' '책 읽어야지' '빨래 널어야지' 마음만 먹으며 침대에서 뒹굴던 내 모습 속 손가락이 저것과 무엇이 달랐던가. 그 부질없는 공허한 즐거움...


  내 의사라고는 담기지 않은 채 수동적인 시청자로서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온갖 자극적이고 올곧지 못한 정보들. 건강하지 못한 재미들. 다보고 나면 텅빈 것 같던 기분. 다만 당신은 그 보잘것없던 스스로의 모습을 제3자로 객관화해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줬을 뿐이다. 투리시간 온전히 무기력하게 인스타 스크롤 내려대 어른은 아무리 멀쑥한 헤어스타일에 멋진 옷차림이라도 좀 촌스러운 것만 같아. 뉴스피드를 끝없궁금해 하는 일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의 내면에 진짜 멋이 들어설 공간 충분치 않을 것이다.


  아저씨 고마워요. 덕분에 이번 여행 중 포함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옆자리의 그를 바라보던  심을 가만히 곱씹다.  나 혼자 선정한 이번 여행의 귀인. 그 덕분에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종이책 두 권을 샀다.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과 알베르 까뮈의 결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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