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밤 Jul 28. 2018

왜 그 사람이랑 결혼했어?

나 혼자서 사는 것, 그 사람과 사는 것의 가치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결혼 추진을 리드하고, 정말 결혼이란 것이 눈 앞에 다가와버렸던 시점에...나 역시 바라던 바였지만 뭔지 모르는 불안함도 한참 겪었다.

   나에게 '메리지 블루'란 우울이라기보단, 그동안 뭐 하나 빠짐없이 잘 살았는가를 돌아보고 체크하고 싶은 것. 살아온 날 동안 수많은 선택을 했고 후회도 할만큼 해봤기로,  쌓여온 연차도 있으니 어리숙한 선택은 피하고 싶은 것. '나 지금 잘 하는거 맞지?한다?' 에 대한 확답을 누구한테 서명이라도 받고 싶은 그런 기간이었다. 당시에는 뒤죽박죽인 그런 마음을 정리할 새가 없어 '결혼준비=때로는 우울'이라고 표현하니 남자친구가 참 서운해하기도 했더랬다. 어쨌든 정리해보자면 잘 살고싶어서 그랬던 거다.  또, 결혼으로 인해 속박되거나 내 관계들이 소원해지는 건 아닌가 우려되는...내 결혼식 전날에도 펑펑 울었다는 절친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다행히도, 내 신혼기의 삶은 결혼 전의 삶과 비슷했고, 오히려 훨씬 유익하고 좋은 것도 많다.


   


   하지만 '결혼' 자체가 유익함을 갖다주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 내가 아줌마처럼 즐겨보는 부부상담, 결혼생활 토크쇼 예능같은 것도 이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을테니.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싶었던 이유가 뭐야?" 친구들이나 결혼적령기 지인들 중 꼭 묻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나도 먼저 결혼한 지인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고. 나같은 경우는, 결혼에 대해 불안하고 미심쩍은 마음을 좀 좋은 쪽으로 전환해보고 싶어서 물어봤던 거다.


   하지만 막상 질문을 들으니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이어서 인데,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말 해주고 싶었는데. 그 사람한테 장점이 많아서? 나랑 닮은 구석 많아서? 순간순간 스치며 나만이 체감하고 알아가는 그 사람의 좋은 느낌들을 구구절절 나열하면 전달이 될까? 내가 느낀 것처럼, 상대방이 "아~ 나도 느껴져~그 사람이랑 오래 지내보면 알 수 있는 느낌이 그거구나!"  할 수 있는 어휘를 찾지 못 해서, 대충 '다정해서'라는 단어로 넘겼던 것 같다. 오롯이 사람을 알아가고 연결된다는 건 10문 10답처럼 몇 단어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다정한' 사람 중 하나여서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한 거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혼 직전, '이렇게 뒤척뒤척 혼자 자고, 쌩얼로 좀 편하게 다니고, 씻기 싫으면 근질거려도 버티고,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게 좋은데. 아무도 날 안 보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건데, 어떻게 누군가와 같이 살지?' 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자취메이트 공고를 낸 직후 '아?'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혼 상대는 내 룸메이트 구하는 거다. 평생보장 연애상대 찾는 게 아니라. 내 얘기 잘 들어주고 따뜻한 말 해주는 사람이랑 50년 룸메로 살면, 그동안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고.  서로의 요구가 다를 때, '그래도 너랑 화목하게 잘 살고싶어'라는 마음으로 함께 노력해주는 사람이랑 50년 살면 굳이 룸메 바꿀 일이 없는 거다. 내가 어떤 부모/가족을 만나, 20~30년간 어떻게 대해지느냐에 따라 인격체가 극명하게 달라지듯이. 나의 부모형제는 선택할 수 없어도, 죽는 날까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게 할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


   결혼해서 좋다고 느끼는 건, 배우자의 주변 사람들까지 더해서, 좀더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이 생겼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날 진정  존중해주는 사람인가를 배우자를 통해 많이 배웠고. 그래서 내가 소중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나도 그렇게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살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내게는 결혼의 좋은 점이었다. 결혼으로 인해 더 해야할 일과, 내 몸처럼 챙겨야 할 사람은 늘어난다. 하지만, 나를 대해주는 느낌이 좋고, 방식은 다르더라도 결국 원하는 목적지가 잘 통하는 메이트와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 메이트와 사는 것보다 행복할 거다.

 

   제일 친한 친구가 "어떻게 한 사람이랑 50년 이상을 살아?"라고 물었을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해줬는데, 뭔가 알았다는 표정의 띵한 얼굴을 보였다. 연애 초만큼 뜨겁고 사로잡고 싶은 정열적인 것이 결혼 후 행복이랑 관련되진 않는다. 내가 배우자를 사랑하고 여전히 사랑받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고,  평생 살 자신이 있다는 건, 너무너무 매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를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주는 룸메이고 가족이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혼은 선택. 나 또한 콩깎지 때문이기도 하고, 이 사람이랑 있으면 그래도 내 자신이 좀더 예쁘고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결국은 '에라모르겠다' 하고 고른 선택이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룸메가 되었을 때란, 무수히 많은 조합과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기에. 그래서 '이 사람이 맞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겐, 단순히 친한친구에게 해줬던 '그럴 사람을 만나' 딱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