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자라온 것,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예쁘다. 어쩌면 나도 TV에서나 보는 웃음 가득한, 아이와 함께여서 더욱 하루하루가 꽉 차는 듯한 그런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좀 바빠지겠지만, 아이란 존재는 우리 부부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건강치 못한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 덮어두고 싶어진다. 그것에 건강치 못한 부모의 영향이 있음을 알 때면 특히 더.
꼭 유별난 아이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 '사람'에게, 나보다 약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걸 아는 한 사람에게 들쑥날쑥한 내 감정으로 공격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우선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존중할만큼, 최소한 그렇게 키워낼 정도로 내가 어른인가?
남편이 언젠가 낳게 될 아이에 대해 얘기할 때면, '내 공장은 이렇게나 좁아. 나 하나 감당하기도 무지 바빠' 하고 속을 꺼내 보여주고싶었다. 단순히 내 시간이 없어지고, 돈이 들고, 희생이란 키워드가 생기는 것 때문에 엄마가 되는게 무서운 건 아니었다. 그것때문에 짜증스위치, 분노스위치, 원망스위치, 불안스위치를 누를만큼 경보 스위치를 시도때도 없이 발령할 나를 못 믿겠다는 거지.
중요한 건 내가 몸집만 큰 어린 아이란 것이다.
그럭저럭 내가 남들 하는만큼은 따라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내가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구나'하고 깨달았을 때 적지 않은 현타가 왔다. 오늘도 무엇때문에 경보스위치를 울렸는지 모를만큼 스스로에 대해 까막눈이며, 뭔가 원하는만큼 수용받지 못 하면 심술도 난다. 그냥 사랑받고 싶고 삐지고 싶은, 몇 십년 전 예민보스 7살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는듯 하다. 그 상태로 이제까지 자라오면서 뭐가 잘 안 될 때마다 해결은 못한 채 스위치만 만들어왔고, 지금은 너무 많은 상황들에 작동하게 됐다. 그 모습이 나도 마음에 안 든다.
자기에 대해 만족하지 않으면 늘 남들 시선에 불안하고,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거나 또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며 깔아내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엄마도 눈앞에 있는 가장 만만한 존재인 나에게 그 많은 스위치들을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엄마의 스위치들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
무결점, 무결핍으로 키워야 되는게 아니지만, '나랑은 다른, 혹은 누구와 같은' 아이로 키우고싶은 마음이라면 나는 스탑하고 싶었다. 그것에서 엇나갈 때면 나는 또 스위치를 울릴 것이고, 아이는 그걸 피할 수 없으므로 오롯이 자기 것도 아닌 타인의 감정을 받아내야할 것이다. 7살 엄마가 키운 아이는 7살까지밖에 자랄 수 없다.
앞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내 아이가, 자기 감정과 생각만 해결하기에도 복잡할텐데, 엄마아빠의 불필요한 불안까지 먹고 살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 낳기를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우리 부부 먼저 다듬고싶다.
내 생각과 네 생각이 건강한지, 왜 평소에 그런 상황과 그 말에 기분이 나쁜지, 남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어릴 때로부터 기인한 우리의 예민함은 아니었는지, 마치 민낯같은 스위치를 꺼내보여서 결국 편해졌는지.
아이에게도 투영될 수 있는 예민한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야겠다. 최소한 부부간에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시작해야겠다.
숨기고 싶었던 신체결함을 까보이는 것 마냥 그 과정이 불편하지만 '나'부터 내가 편해지고 좋아지고, 내 안의 응어리를 이해하고 안아줘야, 타인을 있는그대로 바라봐준다는 다음 단계도 어쩌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부부가 각자의 예쁜모습 이면까지도 서로 수용하고, 서로의 경보스위치도 어디 달렸는지 왠만큼 파악하고, 스위치보다 내가 원하는걸 말함으로써 원만히 갈등을 다루는 경지가 되면, 아이도 보다 건강한 모습을 답습할 수 있지 않을까.
크게 물려줄 것은 없다. 그저, 최소한 엄마아빠의 눈빛으로부터 '나는 나 자체로 괜찮아'하는 느낌을 먹고 자라게 해주고싶다. 생각만 하면 답답한 부모, 답답해하는 부모가 아니라, 힘들 땐 안식처처럼 마음에 떠오를 수 있는 그런 부모로만 남을 수 있다면, 나는 엄마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좀 긴장되고 멀어보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