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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드라마 Oct 06. 2023

러시아, 판단중지*(epoche)!

- 러시아 바로 보기-


글을 시작하며...


                                                                     우린 길을 잃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푸쉬킨 <악령>-


하나, 우린 길을 잃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 이래 30 수년 동안 진보, 보수 정권의 부침 속에서도 중단 없이 진행되어 온 “북방”의 길이 사라졌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던 러시아는 우리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하였고, 우린 북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고 있다. 


무시는 적대의 씨앗이다. 


전쟁이 원인이었다.[1]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 서구의 러시아에 대한 오래된 혐오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이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구와 러시아의 반목은 동, 서 교회 분열 이후 10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우리가 무슨 상관인가? 


둘,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다! 


대전환이란 기존의 가치, 질서의 변경을 의미한다. 미-중의 전략 경쟁과 러-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세계는 신 냉전체제로 가는 양상이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영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언제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서방과 러시아가 친구라고 부둥켜안을지 모를 일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는 어떠한가? 

외교는 균형을 요구하지 않는가? 

균형은 물리적 중간이 아니라 유연한 위치이동이다. 그것이 외교의 핵심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의 “북방”은 안녕한가? 


셋, 문제는 판단 프레임이다! 


우린 누구의 눈으로 러시아를 바라보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온전히 서구와 미국의 시각으로만 러시아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레이몬드 타라스가 지적한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시력 상실과, 공포, 의심, 불안”이 진정 우리의 입장인가? 


1000년이 넘는 서구의 소위 “루소포비아”(Russophobia; 러시아 공포 혹은 혐오)가 우리의 판단 기반을 마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정부도, 언론도, 학계를 돌아봐도 ...

대답은 “그렇다”이다.


만일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가 외부의 벽으로 둘러져 있다면, 그 편견의 벽을 무너트릴 일이다. 만일 서구의 시각으로 만 러시아를 보아 왔다면, 이제 우리의 관점을 가질 때다. 객관적인 시각을 위해서는 정확한 안경이 필요하다. 우선 모든 편견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균형감 있게 사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불합리한 거짓 이성의 시대는 가고, 진정한 의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여기, 우리에게 러시아는 누구인가? 


대한제국시절 일본을 견제하던 러시아에서, 해방 후 남북분단의 가해자로서, 냉전시대 공포대상에서, 급기야 지난 30여 년간 아름다운 예술의 나라, 대전환의 관문이자 기회의 땅이었던 러시아가 오늘은 갑자기 악마의 성이 되어 서서히 닫혀간다. 


그리로 가는 통로엔 가시덤불만 자라난다. 우리 언론은 그곳에 외래종자인 “루소포비아”의 씨앗을 뿌리고, 정부는 “무지”라는 물을 대고, 학계에선 “무책임”의 비료를 주고 있다. 


문제는 그 열매를 앞으로 이 땅의 우리 후세들이 먹어야 한다는데 있다. 


여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먼저 러시아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이 말은 두나라가 지정학적 운명 속에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에서 러시아는 언제나 지렛대의 역할을 하게 될 상수라는 점이다. 세 번째로 러시아는 소련이 아니다.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러시아=소련은 1991년 영원히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 한 가지는 대륙을 향한 길이 우리 미래라는 점이다. 이는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통일로 가는 정치의 길이며, 시베리아와 북극항로를 통해 번영으로 가는 우리의 경제 동맥이다. 

더불어 유라시아의 신 실크로드를 개척하고자 하는 우리 문화 영토의 관문이 러시아라는 사실도 잊지 말자.  


무엇을 할 것인가? 


언젠가 독일의 철학자 마틴 부버가 “현대인에겐 스침만 있고 만남이 없다”라고 갈파한 말은 그동안 한-러간의 현상이기도 하다. 진정한 만남을 위해선 상대를 2인칭 “그대”라고 불러주어야 한다. 3인칭 “그것”으로 불렀을 때 그건 스침이 된다. 


이제 우리의 대화는 러시아를 “그대”라는 2인칭으로 불러주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잃어버린 길을 찾고, 새로운 통로를 여는 첫 과제일 것이다. 


이 만남을 이끌어 가는 것은 문화이다. 


문화야 말로 러시아라는 관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이다. 

언젠가 처칠이 “러시아는 수수께끼 속에 든 수수께끼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수께끼는 신비가 아니라 풀어야 할 과제이다. 러시아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마법의 열쇠는 “우리 스스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길에서 만나는 위대한 러시아인들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의 예술을 만날 것이고, 러시아의 정신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고통스럽지만 예언적인 삶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수수께끼에서 벗어난 러시아가 대 전환기에 우리와 왜,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할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도 외로운 길에서 부르는 슬픔의 노래이기도 하다.


PS: 드라마 <미생>에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길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여러분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나아가고 싶다. 그리고 이 길에서 우리와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사람이 많으면 길이 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 판단중지 – 에포케 (epoche)는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되어 후설의 현상학에서 주용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에포케는 사물에 대한 기존의 관점, 선입견, 습관적 이해를 배제하고 잠시 멈춰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러시아에 대한 시선이 그러하다는 판단에서 이 제목을 붙인다. 


[1]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우리가 앞으로 상세히 다뤄 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시작’과 ‘기원’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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