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독서 - 기형도
- 만년필 잉크를 새로 채웠다. 종이에 잉크가 넘치듯 번져가서 펜을 빨리 움직여 글씨를 빨리 쓸 수 밖에 없었다. 빠른 호흡으로, 들리듯 받아적었다.
휴일의 대부분은 산자와 죽은자의 추억을 읽는다. 그 중 죽은자에게 자기를 빌려주고 싶다던 기형도의 시집과 산문집은 손이 더 간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로부터 양분을 취하면서. 빌려가기만 해서 고맙고 미안하고, 이내 나를 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미안해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이여.
당신을 매번 빌리오. 이제 나를 빌려가오.